문자메시지로 누구에게나 공부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프리카 케냐 시골, 자원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났다. 교사 한 명이 맡는 학생은 70명도 훌쩍 넘었다. 교육 자재도, 공간도, 기회도 부족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 10여 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미국에서 건너온 교육자가 손을 잡았다. 201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작한 사회적기업 에네자 에듀케이션(Eneza Education)의 이야기다. 모두가 사용하는 핸드폰을 활용해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구석진 시골에도 핸드폰은 있었다. 웹 기반이 아닌 문자 서비스 위주라면 저가 핸드폰에서도 이용이 가능했다. 공교육 체계에 기반을 둬 ‘문자 교육 과정’이 구성됐다. 수학, 영어, 케냐의 모국어인 ‘키스와힐리’ 등 교과도 다양하다. 한 주에 10 케냐 실링, 약 100원 정도면 ‘1대 1 과외교사’가 핸드폰으로 찾아온다. 이용자들은 적은 돈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고, 기업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며 수익을 내는 셈.  설립한 지 올해로 5년, 안드로이드와 웹 기반 서비스도 개발했지만, 여전히 문자를 활용해 교육 서비스를 듣는 이들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다. 지금까지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들이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거쳐갔다. 이제는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9개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골 외지에서부터 난민 캠프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던 이들도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요긴하게 쓰는 주요 고객이다.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설립한 창립자 카고 가기치리는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Top 30 사회적기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무적 수익에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하는 ‘임팩트 투자’도 이어졌다.    오는 11월 3일, 에네자 에듀케이션 설립자 카고 가기치리씨가 한국을 찾는다.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대한민국 마당극의 산 역사 ‘마당극패 우금치’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이 장(場), 저 장 만 장 중에 으뜸이라 ‘대전장’.” 지난달 21일 오후, 대전시 중구 중앙로에 위치한 ‘별별마당’ 1층에 들어서자 신나고 경쾌한 우리 가락 소리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북과 꽹과리 소리에 맞춰 15년 차 배우들이 우렁차면서도 한(恨)이 느껴질 정도로 깊이 있게 소리를 내니 건물 전체가 울렸다. 연습실은 실제 마당극이 펼쳐지는 장터 한복판처럼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날 연습한 마당극 ‘별을 먹는 장돌뱅이’는 ‘마당극패, 우금치(이하 우금치)’가 만든 창작극으로, 오늘날 대형마트와 대비해 정겨웠던 재래시장을 재연하며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우금치가 풍물 소리와 전통 춤 등에 사회문제를 담아 만든 마당극은 지난 26년 간 100여 편이 넘는다. 대한민국 마당극에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10년 간 산 속 연습, 마당극 쇠퇴 위기 속 발휘된 단합의 힘 우금치가 처음 결성된 건 1990년, 충남대‧배재대 등 대전 지역 대학 내 탈춤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학생들 7명이 졸업 후 다시 뭉친 것이다. 창단 멤버인 이주행 우금치 운영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마당극은 농민 등 소외된 계층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사회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떠올렸다. “같이 모여 문제를 고민하고, 춤추고 소리 내면서 땀 흘려 연습하다보니 벌써 30년지기가 됐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식구’죠(웃음).” 하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번 연습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악기를 두드리고 큰소리를 내는 것이 시끄럽다며 민원이 빗발쳤고, 결국 산속에 들어가 기숙사 등 연습촌(村)을 만들어 10여

장애 극복하고 기술력으로 지역 명물 빵 만드는 사회적기업 ‘한터’

“빵 만드는 게 정말 재밌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지난달 22일, 이른 아침부터 고소하고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던 사회적기업 ‘한터’의 베이커리 작업장. 그곳에서 만난 장인미(30‧지적장애 2급)씨는 아침에 만든 크로와상, 단팥빵 등을 빠른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포장하며 밝게 말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3시간가량 인미씨를 포함해 9명의 중증 장애인들과 두 명의 전문 제빵사가 만든 빵은 무려 20여종. 5년 이상 함께 손발을 맞춰온 덕분에 반죽하고 오븐에 굽는 것부터 포장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미씨 역시 올해 10년차 제빵사. “일을 하면서 동생에게 용돈 주는 재미도 알고, 꿈도 생겼죠. 부모님 해외여행도 보내드릴 거에요(웃음).” 장애인 직원들에게 제과제빵 교육을 하며 함께 일하는 제빵사 박선미씨는 “장애인들이 일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하나씩 천천히 가르쳐주면 충분히 자기의 몫을 다한다”고 말했다.  ◇10년 노하우와 정성 쌓여 재활시설에서 기업으로 탈바꿈 한 ‘한터’ 중증 장애인들이 빵과 참기름 등을 생산하는 ‘한터’는 2000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엔 수익보다 장애인들의 직업 적응 훈련과, 취업 상담 등을 돕는 재활시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후 10년 간 전날 주문된 제품만 우리 밀과 당일 배달된 우유 등 신선한 재료로 생산‧배송하며 제품 신뢰도를 높였다. 장애인들도 한 달 간 손 씻기나 위생복 입기 같은 기초 교육부터 빵 반죽 등 기술적 부분은 물론 심리 치료까지 적응훈련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개별 평가를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이런 노하우들이 쌓이며 본격 사업을 시작,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장애인에게 불편 없는 사회가 곧 비장애인을 위한 겁니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소리 찾아준 사회적기업 ‘터치스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장애를 봅니다. 눈에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 청각장애는 ‘그나마 낫다’고도 생각하고, 장애 1급으로 인정하지도 않죠. 그만큼 지원 속도도 더딥니다.” 장애인재활보조공학기기를 개발‧제작하는 사회적기업 ‘터치스톤’의 조영근 대표가 지난 5년 간 청각장애인을 돕는 기계 발명에 매달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의 6%만 전혀 듣지 못해 수화가 필요할 뿐, 나머진 소음 등 주위 환경을 개선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해결책은 바로 ‘텥레코일 존’이었다. ◇소음 제거하고 필요한 소리만 키워주는 ‘텔레코일 존’ 국내 최초 도입 “전 세계적으로 청각장애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조 대표가 들려주는 청각 장애 세계는 낯설고, 놀라웠다. 그는 “모든 보청기 및 인공 와우(보청기와 같은 원리로 인체에 삽입하는 장치)가 이 주파수만을 받아들이는 ‘텔레코일’을 넣도록 규격화 돼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상업용 등 여러 주파수들에 방해받지 않고, 장애인들이 소음 없이 보다 깨끗한 소리를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일반 소리를 이 청각장애인용 주파수로 바꿔줘야 하는데, 해외에선 이 역할을 하는 기계가 공공장소에 설치 의무화 돼있기도 하고 법원‧극장은 물론 약국‧마트 계산대 등까지 일상적으로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전무했던 거죠.” 이 때문에 국내에선 값비싼 보청기나 인공 와우 속 텔레코일 장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조 대표는 이 문제점에 착안, 국내 최초로 청각장애인용 주파수를 제공하는 시스템(일명 텔레코일 존)을 도입했다.   10여 년 전 IT 관련 벤처 회사를 창업‧운영하며 쌓았던 기술

재봉틀로 꿈과 자립을 짓습니다, 손놀이협동조합

손놀이협동조합 “예전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노력 중입니다. 딸에게 롤모델인 엄마가 되고 싶어요.” 한국에 온지 올해로 20년째인 닛타 게이코(46)씨는 지난해부터 재봉틀로 인형‧가방‧옷 등  다양한 물건들을 만드는 ‘홈패브릭’을 배우며,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반평생 가까이 한국에서 지냈지만 말이 서툴러 매번 할 수 있던 일은 휴게소나 찜질방 청소 등 단순 노동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일주일에 두 번 무료로 재봉틀을 가르쳐준 건 ‘손놀이협동조합’의 조합원들. 게이코씨는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배워도 올 때마다 에너지가 생겨 힘든 줄 모른다”고 밝게 말했다. “조합 선생님들 덕분에 다시 꿈도 갖게 됐고, 어두웠던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에요. 엄마가 적극적으로 변하니 집에도 활기가 넘칩니다(웃음).”  ◇‘협동이 살 길’, 탁월한 손재주로 뭉친 여성 5인방  ‘손놀이협동조합’이 결성된 건 지난해, 강민희 조합 대표 등 홈패브릭 강사로 활동했던 여성 5명이 뭉치면서다. 강민희 대표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빚까지 내 수백만 원 들여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며 ”이후엔 여러 문화센터 등을 뛰며 강의해도 수수료로 수업료의 30~40%를 떼가 월 100만원도 못 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수업 재료도 공동 구매하고 지원사업도 같이 하는 등 어려운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면 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죠. 더 힘든 여성들이 있으면 돕기도 하고요.” 조합 결성 후 첫 활동은 지자체 지원으로 낙후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무료 재봉틀 강의를 해주는 ‘배달강좌’였다. 강 대표는

우리의 여행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공감만세 “여행이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열댓명 청년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졌다. 문화와 자연을 파괴하는 소비 위주의 ‘관광’ 대신, 새로운 방식의 여행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009년,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시작한 활동이 해를 거듭하며 형태를 갖춰갔다. 올해로 7년, ‘공정여행’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대전 사회적기업 ‘공감만세’의 이야기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여행’이란 무엇일까. 고두환(33·사진) 공감만세 대표는 “지역과 사람, 여행자와 현지인이 소통해,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길을 찾는 여행 방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나 명동 사례를 생각하면 쉬워요. 제주도로 오는 관광객이 급증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이 늘면 자연히 지역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사실 정 반대예요. 관광객으로 돈을 버는 건 면세점이나 렌터카, 쇼핑센터 처럼 관광객을 찾아 따라온 자본 정도예요. 중국 사람들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페리 타고 와서, 중국인이 소유한 호텔에서 머물다 떠나니 세금을 내서 기여하는 것도 없어요. 반면에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에겐 환경 오염, 늘어난 쓰레기, 교통 체증 등 ‘관광’이 남기고 간 부정적인 면이 훨씬 커요. 이런 방식의 관광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공정여행’ 입니다.” ‘여행을 통해 지역사회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자’. 고 대표가 ‘공정여행’이란 방식을 생각하게 된 것도 여행자들로 인해 자연이나 문화가 파괴되는 불편한 모습들을 보고 나서였다. “필리핀 이푸가오 주에는 바이니난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 있는 ‘계단식 논’은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을 만큼 아름다워요. 그런데 계단식 논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려왔어요. 그러자 외부인들이 들어와 관광객 입맛에 맞는 가게나 숙박업체를 지었고, 지역 주민들도 계단식 논 팔기에 나서면서 결국 폐허가 됐어요. 여행자들이 몰려온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푸가오 공동체를 파괴한 거죠. 저희는 현지 청년 단체랑 협력해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참가자들은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논에서 모내기도 하고, 계단식 논 복원에도

책으로 지역 사회를 바꾸는 협동조합이 있다고?

모두의책협동조합 “출판 세계에서 시민들은 소비자일뿐, 주인공에선 완전히 소외돼 있죠. 이들이 일상에서 깨닫고 느낀 것들도 출판된다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의견과 지향점을 가진 책들이 생길지 상상해봤죠.”  ‘생활이 책이 된다’는 슬로건으로 개인과 단체 자서전을 제작해주는 ‘모두의책협동조합’의 김진호 대표. 지난달 22일, 대전시 중구 내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지역의 책과 글에 관심이 많던 시민, 로컬 작가 등 4명과 뭉쳐 조합을 꾸린 배경을 차분히 설명했다. 김 대표 역시 대전 대표 문인 동호회인 ‘대전사랑 문고사랑’에서 4년간 활동했을 정도로 책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처음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 출판 비용을 줄이는 것만 생각했더니 진척이 안 되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우리 조합의 시작인 ‘시민’과 ‘지역’ 안에서 답을 찾자 비로소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그 간의 우여곡절을 회상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책을 만들다   ‘시민 자서전’은 조합원들의 손끝에서 탄생된다. 현재 18명으로 늘어난 조합원들은 대부분 전직 잡지 기자, 등단 시인, 동화 작가 등 글을 업(業)으로 삼았다가 은퇴한 베테랑들. 덕분에  이야기 주인공인 시민을 직접 인터뷰 하고 사진 촬영 하는 것은 물론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써온 경우엔 빠르게 수정‧보완 작업을 진행, 1년 새 벌써 18권의 자서전을 펴냈다. 김 대표는 “아직 수익이 많지 않아 조합원들에게 배당도 없는데, 일의 의미를 공감하고 거의 ‘재능기부’로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만족도도 크다. 그는 “아버지 환갑을 맞아 자식들이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글들을 모아 책 출간을

장애인의 ‘두 발’이 되어드립니다

헬프카 협동조합 장애인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2007년, 부인을 따라 시작했던 중증장애 활동 보조가 그의 삶을 바꿨다. 2014년,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헬프카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득우(63·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중증장애를 지닌 분들을 보조하면서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휠체어 타는 분들에게는 이동하는 일이 여간 큰 일이 아니더라고요. 전동 휠체어는 일반 자동차에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보통 일반 휠체어로 옮겨서 차에 태워서 학교나 사무실로 이동한 다음에 그곳에 비치해 둔 전동휠체어로 다시 옮겨드려야 했고요. 번거로운데다 쉽사리 이동하기 힘들었죠.”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여러 대안이 있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장애인 분들 위해서 저상버스가 많이 보급됐지만 당사자들은 거의 쓰지 않아요. 장애인 한 분 타려면 버스가 멈춘 다음에, 리프트가 내려오고 기사가 안전벨트까지 채워드려야 하는데, 다른 승객들이 기다리면서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이 불편한 거죠. 노선이나 운영 대수가 많지도 않고요.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도 한계가 많아요. 하루 전날, 오전 8시에 다음날 타고 싶은 시간을 미리 예약 해야 하는데, 급한 경우엔 쓸 수도 없어요. 예약 하기도 거의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요. 차량 보유 수 자체가 제한적이다 보니, 몇 분 안에 마감이 되거든요.” 크기가 큰 전동휠체어는 일반 택시나 버스에 실을 수도 없었다. 사고가 난 이후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나,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들도 사각지대였다.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할 수 없기 때문. 저녁 10시 이후로는

교육 격차 해소? 대학생들이 직접 나섭니다

미담장학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을 일찍 갔어요. 새내기때부터 과외를 많이 해봤는데, 부조리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학비 때문에 과외를 했는데, 저의 돈벌이가 누군가에겐 불평등한 기회를 조장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돈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누구나’요.” 21살 한 청년의 ‘오기’는 매년 5000명의 청소년이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카이스트 전자전자공학과에 재학중이던 장능인(27)씨는 2007년, 모교를 중심으로 대학생 자원봉사 그룹을 구성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만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9년에는 카이스트 미담장학회를 설립, 미담봉사단을 발족했다. 다른 멘토링이나 공부방과의 차별점은 바로 학생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사실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입시 면접 때 처음 가보잖아요. ‘상아탑’이라며 멀게만 느껴지는데, 문턱을 낮추는데 의의가 있었어요.” 미담장학회 대학생 멘토들은 주말을 활용해, 대학교 강의실을 대여해 대전 지역 중·고등학생 멘티들에게 수학, 과학, 영어 수업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미담장학회’. 학생들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2010년에는 대전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면서, 조직으로서의 모습이 점차 정비됐다. 무료 교육 봉사와 동시에, 대전 시내 각 학교와 ‘방과후 학교’ 사업을 벌이면서 조직 운영비를 마련하는 전략을 세웠다. 미담장학회의 이사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장능인씨는 “미담장학회는 인력이 필요한 학교에 대학생 명예교사를 파견하고, 인건비의 20%를 미담장학회에 기부하게 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방과 후 학교, 진로 캠프 등 교육 관련 다양한 공익 사업을 펼치던 미담장학회는 2013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았다. 4년 전만해도 상근 인력 1명으로

‘전기차 택시회사’에서 ‘수제맥주’까지… 네덜란드 사회적기업이 궁금하신가요?

전체 인구 1600만명, 1인당 GDP 세계 13위. ‘작지만 강한’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들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 ‘하이브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사회적기업 알아보기’ 행사에서 만난 스테판(Stefan Panhuijsen·사진)에게 네덜란드 사회적기업의 현주소를 물었다. 스테판은 네덜란드 사회적기업 협의체 조직인 ‘소셜 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Social Enterprise NL)‘의 정책 및 리서치 담당자다. (하이브아레나는 ‘기술을 통해 사회 내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다.)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어떤가. “걸음마 단계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 사회적기업 논의의 ‘블랙홀’이라 불렸다. 사회적기업 관련한 제도나 정책이 전무했다. EU에서 수년간 사회적기업에 관한 여러 논의가 이뤄진 것과는 달랐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할 때 법·제도적 장벽도 높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2년 ‘소셜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Social Enterprise NL)’가 만들어졌다. 사회적기업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사회적기업에게는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한다. 동시에 정부를 대상으로 법이나 정책 개정을 요구하고, 사회적기업가와 임팩트 투자자를 연결하고, 생태계 전반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한다. 언론 홍보도 한다. 현재 네덜란드 내 300여곳의 사회적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가입한 사회적기업으로부터 받는 회비나 재단 후원금, 행사 참가비 등으로 운영한다. 정부 지원금은 전혀 받지 않는다.” -‘소셜 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가 설립된 지 올해로 4년째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해 중순, 네덜란드의 사회고용부 산하 사회경제위원회(Social and Economic Council)에서는 지역정부가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EU내  ‘블랙홀’이라 불렸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수도 암스테르담을 비롯, 여러 지역정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