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변이 사는 法] “환경 소송과 함께 한 15년…세상이 조금씩 바뀌더라”

[공변이 사는 法] 정남순 변호사


환경 전문 변호사에게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지는 소송을 하는 사람’. 실제 환경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환경법률센터의 정남순(49) 변호사는 15년째 지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매번 패소해도 그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는 그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지난 12일 정 변호사가 일하는 환경법률센터를 찾았다.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사무실 앞 잔디밭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배경 삼아 정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환경법률센터에서 만난 정남순 변호사는 패소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유쾌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피해 입증 어려운 ‘환경 소송’…”쉬운 사건 없지만 놓을 수도 없다”

“입증 책임은 문제를 제기한 원고에게 있습니다. 특히 환경 소송에서는 원고가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죠. 문제는 환경 영향으로 입은 피해는 증상이 즉각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과학적인 연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에요.”

정남순 변호사가 환경 소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피고가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피해를 입증할 방법이 마땅찮은 경우도 많다”면서 “건건이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멘트 공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을 맡고 있다. 원고는 시멘트 공장에만 40년 근무했다. 폐암이 발병하자 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다. 정 변호사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난해까지 4년이라는 긴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졌습니다. 그분은 산재 인정을 못 받은 채 사망했고요. 지금은 아버지의 싸움을 유훈처럼 이어받은 유족들을 대리해서 다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질병과 원인의 인과관계에서 ‘특이적 질환’과 ‘비특이적 질환’을 구분한다. 특이적 질환은 질병 발생 원인으로 특정 요소를 지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이다. 석면에 노출되면 여러 폐질환이 발생할 수 있지만, 악성중피종의 경우 석면에 의해서만 발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환은 발병 요인을 특정할 수 없는 비특이적 질환이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정 변호사는 “재판은 말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에서 어떤 물질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한 자료가 아예 없으면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면서 “이 부분은 행정의 사각지대를 줄여나가야 해결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소수력발전소 건설 막아낸 홍천강 지날 때는 뿌듯

환경 소송이라고 해서 패소만 하는 건 아니다. 정남순 변호사는 “피해 입증이 어려운 손해배상 소송보단 행정소송이 그나마 승소율이 높다”고 말했다. 그가 주로 맡는 사건도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인데, 대체로 공장이 들어서거나, 개발 사업이 벌어질 때 주민을 대리해 행정기관을 상대로 사업 반대 소송을 거는 식이다.

“10여 년 전, 홍천강에서 소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던 때가 있었어요. 발전소 지으려면 강을 막아야 했는데, 홍천강 하천 풍광을 지키고 생태를 보존하려는 지역 주민들이 소송을 냈죠. 그때 사건을 대리하면서 지자체가 사전영향평가를 건너뛴 점을 문제 삼아서 진행 중이던 사업을 무산시킬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 근처를 지날 때면 보람을 느끼죠.”

홍천강은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좌우를 휘돌아 나가는 대표적인 사행하천으로, 강 생태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론 행정기관 편에서 변론하는 경우도 있다.

“드문 경우이긴 한데, 매립장이나 소각장 같은 폐기물 처리 시설 관련 소송에서 몇 번 경험했어요.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지으려면 행정기관에서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해요.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이걸 반대하죠. 행정기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경우 사업자 측에서 행정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할때가 있어요. 행정기관이 소송에서 지면 사실상 시설을 지어야 하는건데, 이럴 때 주민들과 함께 행정기관의 편에서 싸우게 되는 거죠.”

정남순 변호사는 첫 사건이었던 새만금 소송부터 4대강 소송,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 소송까지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그는 “연이어 떨어지는 패소 판결에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에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패소 판결이 하나 나오면 비슷한 다른 피해 사례는 구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환경 소송의 경우에는 피해 당사자의 상황이 다르고, 오염물질이나 주거 지역, 생활패턴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다툼의 여지는 있습니다. 제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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