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은 ‘국제 빈곤 퇴치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radication of Poverty)’이었다. UN이 1992년, 난민들과 함께 빈곤 퇴치 모임을 결성한 프랑스 레신스키 신부의 뜻을 받아 매년 ‘빈곤 퇴치의 날’을 기념한지 26년째. 전세계 빈곤문제는 얼만큼 해결됐을까.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하루 평균 1.9달러(한화 약 2420원)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을 빈곤층으로 규정한다. IBRD가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빈곤 인구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해 1993년 인류의 33.5%인 18억5500만명에서 2013년 7억6700만명(10.7%)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세계아동의 날(6월 1일)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는, 5세 미만 아동의 25%인 1억5600만명이 영양실조로 신체적 성장과 정서 발달이 저해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아동노동 인구는 1억6800만명으로 유럽 전체 아동 수보다 많으며, 7초마다 15세 이하 여아 한 명이 결혼한다. 이뿐만 아니다. 전 세계 23억 명의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를 매일 경험하고 있다. 태평양 키리바시 어린이들은 지구온난화로 해안 침식과 수몰 위기를 겪고 있고, 몽골 어린이들은 더욱 혹독해진 겨울 추위와 물 부족을 겪고 있다.
혁신적인 해결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의 포용적 성장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임팩트 투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임팩트 투자는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가치를 따져 투자하는 방법을 말한다. 지난달 22일, 재단법인 한국사회투자는 사회혁신가들의 코워킹 스페이스 헤이그라운드에서 ‘국제개발협력과 임팩트 투자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탐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핵심 이야기를 세가지 꼭지로 정리했다.
#1. 공적개발원조(ODA) 및 국제기구 자금, 투자 초기단계 최초손실자본 역할해야
루트캐피털(root capital)은 농촌개발 영역에 임팩트 투자를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무담보 소액 대출을 받기에는 규모가 크고, 은행 대출을 받기에는 규모가 작은 기업과 농부에게 대출을 지원한다. 루트캐피털은 2010년 부르키나파소의 유기농·공정무역 망고 유통사인 푸르테크(Fruiteq)에 18만1000달러를 투자했다. 푸르테크는 중간단계의 농촌협동조합 농부들에게 이 자금을 선수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덕분에 농민들은 좋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평균 소득도 43% 가량 증가했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농민들의 삶이 질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초기부터 민간의 자금이 유입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ODA 자금을 임팩트 투자 자금과 혼합하면 리스크가 분산될 수 있다. 2012년, 영국의 국제개발부(DFID)는 7500만 파운드의 임팩트 투자 펀드인 DFID Impact Fund를 조성했다. 개발금융전문조직인 CDC group은 이 기금을 위탁해 운용하면서 국제개발 분야의 다양한 조직에 대출, 지분, 보증 등의 형태로 투자했다. 2014년에는 JP모건 체이스사와 매칭펀드를 조성해 동아프리카 빈곤 지역에 의료, 에너지, 주택, 위생과 같은 필수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에 지원을 하고 있다.
GIIN(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 2017 Annual Impact Investor Survey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는 특히 소액대출(40%)과 금융서비스(17%) 등 ‘자금 지원’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주택사업이 22%로 가장 많은 투자 수요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결과다. 즉, 개발도상국 전반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재원이 필요하다는 것.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정부의 ODA와 국제기구 자금은 투자 초기 단계에서 촉매적 최초손실자본의 역할을 하면서 위험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다”면서 “주로 민간 자본을 투자에 유인해 투자규모를 키울 때 사용된다”고 조언했다.
#2. ‘기후변화’와 ‘다양성’, 개발도상국 임팩트 투자의 핵심 키워드
임팩트 투자 대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싱가포르 임팩트 투자 기관 IIX의 투자 기금인 IGF 펀드의 주요 테마는 기후변화(Climate Action)와 여성의 역량강화(Women Empowerment), 지역사회 발전(Community Development)다. 로버트 크레이빌(Robert Kraybill) IIX 운영 디렉터는 “기후변화 완화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면서 “지리적으로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미얀마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저지대가 많고, 인도네시아는 도서국가라 기후변화 위험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환경적 가치만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탄소배출을 줄여야하는 의무가 당연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할 수 없다는 것. 로버트 크레이빌(Robert Kraybill) IIX 운영 디렉터는 “온실가스나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까지 가져다 주는 모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간의 사회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는 “공산주의(베트남), 군부정권과 왕권의 혼합 체계(태국), 이슬람 문화(인도네시아) 등 정치 체제와 문화적 관습을 잘 고려해야 한다”면서 “4년 전 태국에서 임팩트 펀드를 조성하고자 시도하는데 다음해 쿠데타가 일어나 사업이 백지화된 적이 있다”고 경험을 풀어냈다. 개발도상국에서 임팩트 투자를 할 때는 다양한 위험요소와 예측불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한다.
#3. 국제개발 영역에서의 한국 임팩트 투자 정책의 방향은?
내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처음으로 3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ODA 예산 요구액은 3조 1895억원으로, 올해 ODA 예산은 2조 5359억원보다 많다. 한국의 ODA 기관인 코이카(KOICA)도 2015년부터 국제개발 영역에 임팩트 투자를 혼합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혁신기술기반의 창의적 가치창출 프로그램(Creative Technology Solution, 이하 CTS)이다. CTS는 혁신기술 및 기술창업 분야 기업을 발굴해 개발도상국에서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초소형 검안기를 개발한 ‘오비츠’,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전자의수를 만드는 ‘만드로’ 등 다양한 기술기반 기업가들이 CTS 자금을 바탕으로 개도국에 진출하고 있다. ☞오비츠처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기술벤처가 궁금하시다면?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대표는 “정부 자금은 국제개발 영역에서 인내자본으로서 역할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아직 투자 규모가 작기 때문에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재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통 회사가 성장하려면 10억 이상 이상 안정적인 투자금을 갖고 기술 개발과 인력 투입을 하면서 시장을 개척해야하는데, 현재 상황으로는 운영비를 조달하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대표는 “영국에서는 임팩트 투자 수익의 30%에 대한 법인세는 감면된다”면서 “임팩트 투자는 세금을 절약하는 지름길이기에, 투자자를 끌어당길 유인책을 정부에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제개발에서의 임팩트투자 활성화 기반 방안 Q&A (답변은 김재현 크레비스 파트너스 대표)
Q. 국제개발협력 필드에서 사업하는 단체들도, 임팩트 투자가 도입되면 투자금으로 사업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수익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비영리단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익률을 우려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임팩트를 목표보다 낮추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제개발인지 의문이 든다.
A. 성과를 측정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보신주의가 작동할 것을 우려하셨는데, 인센티브와 패널티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다. 영리 기업들도 투자금이 확 들어오면 긴장감이 풀리기 때문에, 보상 시스템을 작동해 붐업시키는 방법들이 필요하다. 국제개발협력 영역에서도 임팩트 측정과 성과 배분 문제를 통합시키면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한국 사회적기업 또는 임팩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어떤 수준이라고 보며,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A.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한국의 소셜벤처들이 샌프란시스코 진출은 어렵지만, 마켓은 다양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다만,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현지화를 잘할 수 있는가가 큰 과제다.
Q. 임팩트 측정 및 보고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가?
A. 엄격하게 하지는 않는다. 과연 측정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업을 잘할까? 학교에서 시험을 많이 본다고 실력이 오른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 목표로 한 주요 지표들은 확인한다. 직접 창출한 매출은 1배, 간접 창출한 매출은 0.5배 이런 식으로 지표마다 가중치를 준다. 앞으로 노하우가 쌓이면 더욱 간결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