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가 ‘축제의 장’ IFC-Asia를 가다 [2편]
매년, 전 세계 모금가들을 사로잡는 ‘축제의 장’이 있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국제펀드레이징 컨퍼런스(International Fundraising Congress·IFC)가 바로 그것. 모금가·비영리단체 네트워크 조직이자 지식공유 플랫폼인 영국 비영리단체 리소스 얼라이언스(Resource Alliance)에서 여는 행사로, 매년 전 세계 60여개국 모금가 1000여명이 모여 트렌드를 나누고 ‘모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올해는 범위가 보다 넓어졌다. 그간 IFC가 주로 유럽과 미주대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장이 마련된 것. 지난 6월, 태국 방콕에서는 ‘제 1회 국제펀드레이징 컨퍼런스-아시아(IFC-Asia’가 열렸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3일에 걸쳐 열린 행사에는 40여개 국 400여명의 모금가들의 한데 모였다. 한국에서는 아름다운재단, 국경없는의사회, 엠네스티, 해비타트 아시아 사무소 등에서 참여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아름다운재단 전현경 기부문화연구소 전문위원이 ‘모금가의 축제’ 현장을 세 차례에 걸쳐 전한다. 2편은 ‘기부자의 경험을 설계하라: 그가 기부하지 않은 이유’다. /편집자 ☞[모금가 ‘축제의 장’ IFC-Asia를 가다①편] 기부자를 사로잡는 디지털 모금 전략이 궁금하다면?
◇그는 왜 기부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왜 기부하지 않았을까요?”
전문 펀드레이징 기관 ‘HJC’와 ‘엑스트라오디너리 펀드레이징(Xtraordinary Fundraising)’의 공동창립자인 마이크 존슨(Mike Johnston·사진)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 IFC에서 그가 진행한 워크숍 제목은 ‘기부자 경험 설계(Journey Mapping)를 통해, 좀더 ‘세련된’ 커뮤니케이션과 펀드레이징 하기’. 그가 말하는 ‘기부자 경험 설계’란 무엇일까.
“영리 기업에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은 당연하게 통용되는 개념입니다. 우리 제품을 쓰거나 구매하는 고객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지를 들여다보면서 경험을 설계하고, 수정하는 것이죠. 비영리에서도 ‘기부자 경험(Donor Experience)’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기부를 요청했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워크샵에서 나왔던 상황극 하나. 당신은 동물보호단체의 활동가다. 잠재 기부자인 이진주씨는 올해 35세, 두 아이의 엄마인 싱글맘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환경보호에 관심도 많다. 어느 날, 이씨는 친구 트위터에서, 당신이 종사하는 단체에서 특정 기업이 동물실험을 중단하게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흥미가 생겨 단체 사이트에도 들어갔다. 기부를 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뒀다. 기부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확인하는 게 번거로웠기 때문. 며칠 후, 당신 단체에서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부를 요청했다. 이씨가 홈페이지를 방문했을 때 남긴 기본 정보를 통해서다. 이씨는 “어머니와 상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기부하지 않았다.
“이씨는 왜 기부하지 않았을까요? 어떤 과정을 개선하면, 이씨와 같은 잠재 기부자의 기부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 기부자의 관점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를 따라가봐야 합니다.” (마이크 존슨)
◇인물을 설정하고, 각 단계별 경험을 구체적으로 펼칠 것
실제적인 ‘경험 설계’는 어떻게 하면 될까. 여기, 그가 제시한 두 번째 상황을 따라가보자.
어린이 MRI검사에선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상황. 검사 시간도 길어지고, 비용도 높아진다. 진정제를 처방하거나 주사를 놓아야 하기 때문. 무엇보다도, 병원을 방문하고 검사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을 확률이 높다. 어린이 환자가 검사에 반감을 가졌을 확률이 크기 때문.
“경험설계는 ‘구체적인 인물’을 설정하고, 그 사람이 겪을 경험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경우엔 6살 민지죠. 검사하는 날 아침부터 MRI검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민지가 겪는 일을 시간대 별로 나열합니다. 그리고 각 사건별로 민지가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마주치게 될 지, 어떤 감정을 가질 지를 각기 다른 색의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면 됩니다.”
포스트잇으로 나열된 ‘플로우 차트(흐름도)’의 핵심은, 소비자가 가장 안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찾고,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어떤 지점에서 개입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 그가 말하는 “경험설계”의 핵심이다. 민지의 경우, 기계 앞으로 끌려가면서 오열하는 것이 가장 부정적인 경험. 이를 바꾸기 위해선 검사실에 들어서면서부터 긴장감을 풀고, MRI 기계 앞에서 느낄 공포를 안전감으로 바꿔야 한다.
“실제로 ‘경험설계’를 진행했던 이 병원 경험설계 팀에선, 어린이가 어떤 환경에서 안전하게 느낄지 별도로 조사했습니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캠프장’ 아이디어를 골랐죠. 캠프에선 낯선 환경을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후 MRI검사실을 캠프장 인테리어로 바꾼 다음, 실제 캠프장처럼 느껴지도록 준비물을 담을 수 있는 캠프배낭을 제공하고, 병원 접수를 캠프장 입소처럼 변경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MRI검사에 대한 반감이 낮아져 진정제를 투약하지 않고도 검사가 가능해졌고요. 결과적으로 병원은 시간과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어린이들이 병원을 거부하게 되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죠.”
◇잠재적 기부자를 기부자로 돌리기 위해
그럼 다시 앞의 이씨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워크숍에선 이씨의 경험을 ‘플로우 차트’로 만들었다. 워크숍을 진행한 마이크 존슨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 구체적인 상황으로 나열해보는 게 좋다”며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할수록 깊이있는 솔루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주씨가 경험한 상황을 한 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경험을 나열한 뒤엔, 각 단계에서 이씨가 만나게 될 사물이나 사람을 아래에 붙인다. 제일 위에는 이씨의 ‘태도와 감정’을 적어 넣는다. 이후엔 이씨의 태도, 혹은 감정이 가장 좋은 지점과 가장 나쁜 지점을 각각 체크한다.
“기부를 결정하도록 촉진하기 위해선, 가장 나쁜 지점을 개선할 수도 있고, 가장 좋은 지점에서 바로 기부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다 고려해보는 것이죠.”
워크숍에선 4개의 조마다 각기 다른 개선안, 개입지점을 내왔다.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단 하나의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것. 기관에 따라 해석이나 해결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는 기부자의 경험을 설계할 때에 유념해야 할 9가지 원칙도 함께 소개했다.
#2. 기부자의 데이터와 행동, 인적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며 분석할 수 있어야 함
#3. 기부자를 세대별로 구분하는 데 열려있어야 함
#4. 기부자에게 서비스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적 기반을 갖추어야 함
#5. 기부자 평생의 기부여정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함
#6. 인내심을 갖고 투자하고, 장기간 효과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함.
#7. 기부자 경험이 온라인, 오프라인, 관계망 등 채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함
#8. 데이터를 활용하여 기부자 개개인에 맞춰진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함
#9. 기관의 전략기획에 걸맞은 기부자경험 설계방법을 찾아야 함.
이번 기회에, 우리 기관을 스쳐간 이들을 떠올리며 기부자 경험을 설계해보는 건 어떨까.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름다운재단 IFC-Asia 참관기 블로그 바로가기
아름다운재단 입사 14년차. 한국 나눔문화의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뒷받침 하는 차가운 머리가 되려고 합니다. 나눔에 대한 철학과 지식, 정책과 제도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