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는 서른살 자취생의 한끼는 생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직장인이라면 아침은 굶고 점심은 회사 근처의 단골식당을 찾는다. 저녁은 술자리에서 먹는 술 안주가 한끼 식사다. 물론 한달에 몇 번 정시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오거나 휴일에는 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존을 뛰어 넘진 않는다.
집에서는 자취생의 양식인 라면을 필두로 계란 3종 요리(계란후라이, 계란말이, 계란간장볶음밥)와 김치 3종 요리(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참치김치볶음) 등 기타 10분내 조리가 가능한 요리를 하곤 했다. 물론 그조차 게을러 근처 식당에서 홀로 음식을 주문해 먹거나 편의점도시락, 떡볶이나 김밥 등으로 식사를 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한끼, 한끼의 식사를 고민해야함을 말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식재료는 협동조합을 통해 구매해야했으며, 편의점이나 근처 식당을 찾아 갈 수 없었다. 협동조합을 통해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힘든 상황을 무사히 버텨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 불편함 없이 한달을 살 수 있었다. 이번편은 생협과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협동조합과 생협은 무엇인가요?
소비자협동조합은 재화 및 서비스의 소비와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이다. 소비자협동조합은 크게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거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소비자협동조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생협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다. 친환경 물품을 소비로 하는 생협이 현재 가장 규모가 크다. 하지만, 소비자협동조합 모두가 친환경 식품과 건강한 소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학 내에 존재하는 대학생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친환경식품의 소비가 아닌 학생을 주축으로 한 대학 구성원들이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품질의 식당, 문구, 매점 등의 이용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증가할 수록 경쟁력을 갖는데 흔히 공동구매나 소셜커머스 방식의 경우 많은 소비자가 참여할 수록 더욱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협동조합 역시 재화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조합원이 증가할 수록 가격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더욱 큰 혜택이 돌아간다. 이는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쟁력이 된다. 생협하면 친환경이 떠오르는 높은 인식만큼, 현재 국내 소비자협동조합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친환경 물품과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설립된 생협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이용한 협동조합은 이러한 친환경 물품을 판매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용어보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물품을 판매하고 소비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생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생협에 대한 오해와 실제
한달살기를 하기 전까지 오히려 필자는 생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더 컸다. 필자가 생협을 처음 알게된 것은 15년전이었다. 생협이 설립된 초창기부터 생협 활동을 하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중학생 시절부터 생협 식재료를 소비하며 살아왔다. 당시 생협은 매장 없이 일주일에 한번씩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고 배달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필자가 집에서 먹는 식품이 생협으로 바뀌면서 일상의 큰 변화가 시작됐다. 누구보다 자식의 건강에 걱정이 많으셨던 부모님은 MSG가 들어간 모든 식품의 반입을 금지시켰고, 과자나 간식에서부터 식재료까지 모두 생협에서 생산한 물품으로 교체하였다. 그 당시 생협 식재료의 종류는 많지 않았고 MSG에 익숙한 필자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완강한 부모님의 밑에서 저항은 쉽지 않았고, 덕분에 필자는 생협 식품이 건강에 좋을지 몰라도 맛은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사실 필자의 이런 생각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협동조합에 관한 업무를 하는 중에도, 생협은 몸에 좋고 참 가치가 있지만 결코 맛과 멋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협동조합 한달살기를 하며 매일 생협의 식품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은 큰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정작 한달 간 협동조합으로 살며 느낀 생협은 내가 알던 생협과는 전혀 다른 생협이었다. 편견 속에 사로잡혀있던 필자의 생각과 달리 생협은 수십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성장만큼 생협의 상품과 먹거리는 충분히 훌륭했다.
어쩌면 필자와 같이 생협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생협에 대한 오해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생협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오해를 깨트린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오해와 진실 1 :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생협
동네마트만큼 생협이 많진 않다. 생협 매장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본다면 우리는 생협 매장을 쉽게 찾 을 수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네 개의 주요 생협을 살펴보면 전국적으로 한살림(205곳),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193곳), 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110곳), 행복중심소비자생활협동조합(24곳)으로 생각보다 많은 매장이 존재한다. 전국 시, 군, 구 지방자치단체 수는 243곳으로 단순 계산하면 지자체 한 곳 당 2.19개의 생협매장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지역 자치구의 경우 생협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서울 및 수도권 혹은 인구가 많은 광역 자치구에서는 쉽게 생협 매장을 만날 수 있다. 필자의 집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도보 10분 거리 내에 아이쿱생협과 한살림생협의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만약, 매장이 없다면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면 된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 어디에서든 신선한 생협 식품을 배달 받을 수 있다.
다만 막상 생협매장을 발견했어도 이용하기를 어려워 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조합원 가입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실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한 생협은 원외이용금지라는 조항이 있다. 즉, 원칙적으로 조합원이 아닌 자는 생협의 물품을 이용할 수 없다. 그러나 식품류와 같이 유통기한이 정해진 상품 혹은 추석 혹은 명절 등의 특정 시기에는 비조합원도 이용이 가능하다. 생협마다 이러한 원외이용 조항을 굳건히 지키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다만 생협 조합원은 할인된 가격에 생협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가입시 낸 출자금은 탈퇴시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생협조합원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반적으로 생협조합원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매장을 방문해 가입신청서 및 개인정보활용 동의서 작성 – 협동조합 조합원 교육 – 출자금 납부 등의 절차를 걸쳐야한다. 가입신청서는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부분이며, 협동조합 조합원 교육은 생협의 상황이나 지침에 따라 다르다. 출자금 납부의 경우 1만원에서 3만원까지 다양하다.
협동조합의 물건을 구매할 경우, 이용금액의 일부는 조합원 출자금으로 적립 된다. 적립된 출자금 역시 가입출자금과 같이 탈퇴 시 수령가능하다. 조합원 출자금 적립제도는 이용한만큼 더 많은 편익을 제공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규칙이다. 이외에도 매월 일정액의 조합비를 납부하는 대신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생협도 있다. 이 경우 역시 많이 이용할 수록 추가 할인을 받고, 협동조합 입장에서도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조합비 수익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다. 협동조합 방식의 규칙을 잘 적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오해와 진실 2 : 생협은 비싸다?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 식자재와 식품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한다. 친환경 물품을 판매하는 생협 물품의 가격은 대형마트와 비교해본다면 비싸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30대 싱글 청년은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자취생물가지수라는 것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취생물가지수라는 말은 필자가 조작된 언어로 정의한 말로, 자취생들이 자취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물품에 대한 물가를 말한다. 보통 자취를 하면 대형마트를 이용하기보다는 동네편의점, 코사마트 등의 소규모의 할인마트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이용물품도 단순하다. 10분 이내에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중심으로 구매하며 그 내용은 라면, 계란, 스팸, 참치, 과자 등이다.
필자는 실제 생협가격이 편의점과 동네할인마트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자취생 필수상품 5종(참치, 라면, 짜장라면, 계란, 스팸, 과자)에 대한 가격 비교를 실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동네할인 마트에 비해선 조금 비쌌지만, 편의점보다는 저렴한 품목들도 있었다. 특히 과자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식품군은 편의점보다 비싸지 않았다.
생협은 중산층 주부층(초등학생 자녀를 둔 30-40대 주부층)을 주요고객으로 한다. 생협에서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유통망을 개선하고 생산 시설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의 연구 및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배추파동이나 최근에 일어났던 계란파동 때에는, 생협에서 적립된 수익금을 가격 안정자금으로 활용해 물품을 안정적인 가격에 공급하도록 했다. 생협이기에 가능한 활동이다.
다만 일부 가공품(반찬류, 과자류, 빙과류)의 경우 재료 단가 자체가 비싼 만큼 다소 비싼 편이었다. 또한 채소나 야채의 경우 소포장으로 구매하기 어려워, 혼자 사는 자취생이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점은 참고하도록 하자.
오해와 진실 3 : 생협 식품은 맛이 떨어진다?
친환경과 건강한 먹거리라는 인식 때문에 생협 식품은 맛이 없을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앞서 말한것처럼 15년전 필자의 기억에서도 생협 식품은 결코 맛있지 않았다. 빵이라고는 단팥빵과 소보루빵 두가지뿐, 심지어 달지도 않았다. 라면도 두가지 종류밖에 없었다. 음료수는 건강 음료즙에 가까웠다. 햄이나 소시지는 색소를 넣지 않았기에, 탁한 색으로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못했고, 고기를 응축한 맛에 가까웠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생협 식품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먼저 판매하는 제품은 다양한 식자재가공품이 존재했다. 생협은 검증된 협력업체로부터 가공품을 공급받거나, 혹은 자회사를 통해 직접 가공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전남 구레군 지역에 구례자연드림파크라는 가공단지를 통해 다양한 품목의 생협식품을 가공하면서 물류비와 생산비를 절감하고 있다. 식품의 포장 및 디자인도 깔끔하다. 라면 종류만 해도 10가지, 냉동식품부터 수산물, 각종 생협 식품을은 일반 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협매장에서는 매일 빵도 구워나온다. 포장도 깔끔하며 맛 역시 훌륭한 편이었다.
작년부터 자연드림매장에서는 압착 유채유에 무항생제 국산 닭으로 만든 치킨을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필자가 여의도 봄꽃축제를 맞이하여 방문한 한강에서 뜯은 생협 치킨은 조금 차갑게 식었음에도 아주 맛있었다.
물론 맛과 건강 두마리 토끼를 모두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콜라 맛을 포기하고 제로콜라를 먹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웰빙햄버거가 진정한 웰빙인가라는 등의 논란이 있듯이 생협이 선택해야할 고민거리다.
또한 생협 라면이라고, 하루 세끼를 라면만 먹는다면 건강할 수 없다(필자의 경험담이다). 생협 라면 역시 가격과 맛을 위해 면을 튀기는 팜유를 사용한다. 다만 튀기는 기름의 산도를 측정해 항상 깨끗한 기름을 사용하고, 소화를 돕기 위해 튀기기 전 라면을 삶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생협은 자체적으로 라면을 튀기지 않거나 혹은 스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단다). 시중 제품보다 라면의 맛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건강을 위한 라면이 개발되고 있다.
오해와 진실 4 : 생협 식품은 요리하기 어렵다?
필자도 슬로우푸드가 몸에 좋다는 것은 부모님의 조기교육으로 인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자취를 하며 요리를 배웠던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을 뽑으라면 속도요, 그 다음은 간편함이다.
생협식재료으로 요리를 한다? 필자는 요리를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된장찌개를 만들 때에도 1시간 정도 신선한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 맛을 내고, 유기농 콩으로 만든 된장을 정성스레 풀며, 국산천일염과 공정무역 설탕으로 간을 넣고… 유기농 애호박 및 각종 야채를 다듬고 신선한 손두부를 넣어 끓여서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생협식재료로 생각보다 쉽게 요리를 했다. 적정한 가격에 생협식품만으로 근사한 저녁을 만들 수 있다. 아, 물론 데코레이션의 핵심은 그릇이다.
생협매장에는 다양한 형식의 반조리 식품들이 있다. 무항생제 닭과 만두, 치킨너겟도 있다. 김치나 밑반찬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었다. 치킨뿐 아니라 베이커리나 카페도 있어, 피자나 빵도 즉석에서 구워 판매한다.
우리밀로 만든 갓 구운 빵과 공정무역 커피로 아침을 맞이하고, 우리밀과 유기농 채소와 치즈로 토핑한 피자를 점심을 먹고, 반조리된 간편히 만든 반조리된 파스타와 공정무역 와인과 함께 근사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물론 필자는 김치찌개를 더 좋아한다.
생협은 플러스 알파가 있다.
친환경적인 소비와 건강한 먹거리는 소비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다. 친환경의 가치,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를 믿는 조합원들이 모여 만든 생협 역시 단순히 물품을 소비하는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필자가 한달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방문한 아이쿱 자연드림 매장에서도 집에서 사용했던 일반 식용류를 무료로 생협 유채유로 교체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살림 봉천 매장 역시 생협물품뿐 아니라 지역 내 다양한 사회적경제 제품을 판매한 ‘우리 동네 협동가게’라는 작은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탈핵 반대를 위한 캠페인, 친환경 생산자들과 함께하는 생산지 탐방 등 다양한 활동들도 함께 진행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합 내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커뮤니티에 참여하기도 한다.
생협의 가치는 소비 그 이상이다. 그 모든 것을, 이 글에 다 다룰 순 없다(생협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시리즈를 통해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다만, 생협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하나하나 각자의 일상의 소비를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이 글을 읽는 오늘 저녁은, 생협 식재료로 만든 근사한 저녁 한끼를 제안해본다.
하지만 생협식품을 한달 먹는다고 몸이 어마어마하게 건강해지진 않는다. 조금 건강해진 기분이긴 하지만, 인바디 검사가 무색할 만큼 필자의 몸무게와 건강상태는 전후가 비슷했다. 물론 협동조합으로 10년을 생활해 본다면 다르지 않을까.
▒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프로젝트는 팟캐스트 공존공생에서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한달살기 팟캐스트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연구원으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컨설팅하고 교육하는 쿱비즈협동조합의 이사로 활동하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지난 3월 사표를 던졌습니다. 지금은 쿱비즈협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협동하는 청년에서 협동하는 노년이 되고 싶은, 협동조합과 사랑에 빠진 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