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SK와이번스 감독직 은퇴 후 라오스 ‘아짱’으로 변신
‘밥’ 대신 ‘꿈’…야구 하나가 만든 변화
“10회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만수(60) 전 SK와이번스 감독은 자신의 현재를 이렇게 설명했다. 본게임은 끝났는데, ‘나눔’이라는 연장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롭고, 완벽하게 감사한 삶이란다.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47년 야구 인생을 끝낸 2014년 10월, 그는 아내 깜짝 선물로 동유럽 여행권을 준비했다. 그런데 라오스의 교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좀 와주세요.” 간곡한 부탁이었다. 감독 시절,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이 교민에게 “바쁘니 나중에 가보겠다”고 약속한 후 야구용품을 보내주긴 했지만, 진짜 요청이 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망설이는 그에게 아내가 따끔하게 한마디했다. “동유럽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다음 달, 그는 동유럽 대신 라오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소년 야구단 ‘라오 J브러더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4년 후, 이만수는 더 이상 ‘헐크’가 아닌, 라오스 ‘아짱(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불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 15일, 서울 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야구로 최정상에 섰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꾼 한 통의 전화
-라오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원래 ‘라오 J 브러더스’ 야구단은 2014년에 현지 교민인 제인내 씨가 만든 거예요.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회사 주차장에서 야구를 했는데,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더래요. 몇명을 모아 캐치볼을 하다, 규모가 커져 야구단까지 만든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 야구 지식이 없어 가르치기가 힘들고 야구용품 마련도 어려워,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저에게 연락해온 것이었어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해 차로 10여 분 정도 이동하니, 마을 운동장이 나왔어요. 단원들 모습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14세부터 25세까지 나이대가 달랐는데, 한결같이 왜소하더군요. 단원 대부분이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운동장 상태는 더 심각했어요. 땅 곳곳은 움푹 파여 있고, 잡초가 듬성듬성한 공터일 뿐이었죠. 운동장 옆 허름한 천막 아래가 유일한 휴식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안 좋은데 아이들이 야구를 배우러 오나요. 그들에겐 야구보다 ‘밥’이 우선일 것 같은데요.
“사실 제인내씨가 단원을 모을 때 고생 많이 했어요. 당장 밥 한끼 먹기도 힘든 이들에게 야구 배우러 오라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씨가 단원들에게 야구하러 오면 먹을 것과 깨끗한 물을 주겠다고 했어요. 라오스는 깨끗한 물이 귀한 나라거든요. 그러자 단원들은 물론 야구에 관심 없던 동네 아이들까지 야구를 배우겠다며 몰려왔어요.”
-먹을 걸로 유혹한 셈이네요(웃음).
“그렇죠(웃음). 그런데 아이들한텐 그게 먹혀요. 하지만 우리의 미션이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데만 그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제씨가 저에게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 같아요.”
-거기서 구체적으로 뭘 하셨어요.
“20여 일동안 ‘야구의 기본’을 알려줬어요. 단원들 대부분 야구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어설프게 할 줄 알았거든요. 한국에서 준비해 간 야구 용품을 가지고 투구, 타구 자세부터 야구 룰까지 기본 지식들을 가르쳤죠. 사실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질지 몰랐어요. 직접 아이들 만나고 나니 금방 그만둘 수가 없겠더라고요.
-왜죠?
“야구를 가르치면서 물었어요. ‘야구를 왜 하고 싶니’ ‘야구가 재밌어’라고요. 애들 대답이 뭔지 아세요? ‘야구를 하면 먹을 걸 줘서 한다’였어요. 이 아이들에게 야구는 즐길거리나 스포츠가 아닌, 생계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이 아이들의 꿈과 미래도 아득해지는 거다’라고 마음을 다잡았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 여기까지 온 겁니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5개국에서 유일하게 야구가 없던 나라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이 전 감독의 라오스 야구 전파는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그는 비공식으로 운영되던 라오J브러더스를 공식 창단했다. 2014년 20명이던 단원 규모는 지금 45명으로 늘었고, 초등학교 야구부도 3팀을 창단하는 등 선수 규모는 150여 명으로 늘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여자팀을 포함해 대학 야구부 4~5팀 창단까지 추진 중이다.
◇ ‘야구’가 만든 ‘변화’들
‘깡-’
힘차게 배트가 공을 때린다. 배트를 집어 던진 한 남자아이가 쏜살같이 1루로 내달린다. 간절한 눈빛으로 공을 쫓던 아이는 1루를 지나 3루 그리고 드디어 홈을 밟는다.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이들은 곧장 야구 펜스를 넘어 이만수 전 감독에게 다가가 그를 헹가래쳤다.
라오 J 브라더스는 지난해 1월 열린 제2회 한-라 국제친선대회에서 3승 2패로 첫 승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치른 친선대회 우승도 라오J브러더스가 차지했다.
이만수는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게 ‘한-라 친선야구대회’라고 했다. 그는 “2015년 첫 대회에선 단원들이 모든 팀에 패배하고 실의에 빠졌다”면서 “지난해 3승2패로 첫 승을 올리고 나니,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첫 승 이후 아이들이 많이 변했나요.
“그럼요. 이전엔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의욕이 없었어요. 먹을 것만 먹고 도망가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런데 꾸준히 야구를 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해, 첫 승을 거두고 나선 야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확 달라졌어요.”
-단원들이 어떻게 변했나요.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에예(17)’라는 남자아이가 있어요. 유독 체격이 왜소하고, 말투도 어눌한 데다 혼잣말까지 하는 아이였어요. 포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에예가 점점 말투와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더군요. 훈련 중인 에예를 관찰해보니, 플레이가 생각보다 빠르고 간결했어요. 이제 에예는 야구장 총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갖고 있어요. 스물여섯 살 청년인 ‘빼’는 라오J브러더스 코치가 됐어요. 막노동 대신 월급 28만원을 받는 직장을 갖게 됐죠. 이 친구들을 라오스의 야구 지도자로 키우고 싶어요. 처음엔 ‘야구 하나로 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는데, 몇 년 만에 생긴 변화를 목격하니 비전을 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예전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세끼 모두 먹는 것’ ‘굶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선생님, 야구 선수, 의사, 정치인 등이라고 하거든요.”
-단원들을 먹이고 재우고 운동시키려면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기적처럼 많은 분이 도와주셨습니다. 우선 교민 사업가인 제인내 씨는 사비를 털어 실내연습장, 기숙사 등이 설치된 야구센터를 지었어요. 덕분에 고아, 이혼 가정, 극빈층 아이들 12명은 아예 라오스 야구센터에서 먹고 잡니다. 특히 고마운 분은 피칭머신(타격 연습할 때 투수 대신 공을 던져주는 기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류승철 사장님이에요. 2015년 라오J브러더스에 피칭머신 5대나 기증해줬어요. 한 대에 1000만원이나 하는 기계예요. 지난해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류 사장은 그런 상황에서도 라오J브러더스 단원들 걱정을 하며, 다른 피칭머신 제조업체 사장이자 친구인 우현권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 사장은 올해 여자 단원 숙소를 지어줬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몇 달 안 남았다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류 사장이 1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창원 SK 구단주는 지난해 12월 26일 1억원을 ‘헐크 파운데이션’에 기증하고, 매달 사비를 기부해줍니다. 데상트, 스켈리도 같은 스포츠 의류회사에서도 용품을 기증해줬고요. 고마운 분이 많습니다.”
-‘헐크 파운데이션’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던데요.
“기부받은 돈을 다 법인에 넣어서 사용해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운동만 해서 경영, 행정 분야에는 문외한이에요. 전문적으로 도와줄 분을 모아 작년 2월 28일에 설립했어요. 정운찬 전 총리가 ‘헐크 파운데이션’이라고 이름을 지어졌어요. 제 현역 시절 별명이 헐크였거든요. 저는 현재 특별한 수입이 없어요. 강연 요청은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강연료로 받은 돈을 아껴 매달 100만원씩 헐크 파운데이션에 기부합니다. 지난해 8월에는 병원 광고를 계약해 2억원을 벌었는데, 전액 기부했어요. 와이프에게 “2억원을 전부 기부하고 싶다”고 하니 처음엔 망설이다 ‘오케이’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