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비영리 투명성 평가,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가이드스타 투명성 평가… 별점 공개 이후 6人 ‘긴급 좌담회’

통일된 국세청 공시 기준도 없어 비영리단체마다 공시 양식이 제각각인데, 그 데이터를 갖고 어떻게 별점 평가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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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자료가 제대로 갖춰지기만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비영리단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가 불가피했다

지난 22일 한국가이드스타가 공익법인의 ‘별점’ 결과를 발표하자, 비영리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가이드스타는 국세청에 의무 공시한 공익법인 중 평가가 가능한 2553곳의 ‘정보 공개 투명성 및 재무 안정성’ 별점을 매기고, 이 중 만점(별 5개) 기관만을 공개했다. 162곳이 만점을 받았다. 

투명성 평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단계 나아간 시도”라는 시각에서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비영리 투명성 평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박란희 편집장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국장,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여수동 삼일회계법인 이사, 정무성 숭실사이버대 총장,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이사(가나다순) 등이 참석, 2시간 남짓 열띤 토론을 펼쳤다.

가이드스타 사진

◇가이드스타 평가 첫 시도, ‘긍정적 vs. 성급해’

사회=가이드스타의 비영리 공익법인 별점 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투명성 평가인데,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박태규=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민간단체를 평가함으로써 자정 작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번 평가는 평가기관이나 공익법인을 위한 게 아니라, 한국 사회와 기부자를 위한 것이다. 공익법인은 면세 혜택을 받기 때문에 모든 납세자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 책무가 있다.

김희정=현재 국세청 공시 양식에 문제가 많다. 통일 기준이 없다. 가령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 학대 상담원이 상담하는 게 목적 사업인데, 이게 사업비인지 인건비인지 단체별로 제각각이다.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도 목적 사업인지, 광고인지, 모금인지 규정이 없다. 10개 대형 비영리단체가 함께 모여 협의하다 국세청에 문의하니까 ‘모두 다 광고비로 넣으라’고 했다. 단체들의 반대로, 캠페인과 동영상은 사업비로, 언론사 노출은 광고비로 공시하겠다고 국세청에 말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큰 단체들은 모여서 회의라도 하지, 작은 비영리단체는 물어볼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공시자료로 평가부터 하는 건 성급했다.

강철희=비영리 투명성을 높이는 시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정확한 평가로 비영리단체에 미칠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작년, 재작년 연말에 몇몇 언론사에서 가이드스타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평가 결과는 체계도 미흡했고 기부자 인식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적어도 비영리단체가 재무 평가 점수를 자체적으로 알고난 후,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3년 정도 유예 기간을 주고 평가로 넘어갔어야 했다. 같은 생태계 내에서 서로 역량을 키우며 윈윈(win-win)해야 하는데, 비영리단체와 가이드스타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

여수동=세세한 기준을 떠나 평가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이드스타에서 단체들과 협의하고 미뤄뒀다 몇 년 후에 평가한다고 해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개선이 필요하면 고쳐나가면 된다. 누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NPO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숙제다. 평가 결과가 갖는 영향력도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 많은 분이 기부 시장 혼란을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이드스타의 평가는 ‘재무적인 자료’에 기반한 평가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기부자들에게 명확하게 소통하면 된다.

정무성=‘재정 투명성’은 건전한 조직이 갖춰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그게 이 단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나타내는 건 아니다. 최근에도 어린이집·유치원 국고 보조금 횡령 사건이 터졌는데, 재무제표상으로는 투명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확률이 크다. 공시 자료로 알 수 있는 정보는 피상적이다. 장기적으로는 각기 다른 평가 기준을 가진 여러 평가 조직이 등장해야 한다.

최호윤=우리나라 공시 제도는 2007년 도입됐지만, 체계화된 건 2014년이고 지난해 한 번 더 개선됐다. 미국 비영리 평가기관 ‘채러티 네비게이터’는 공시한 지 10년 남짓 지나서 평가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평가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현재의 투명성 평가 잣대로 보면, ‘간접비’가 적은 단체만 좋은 곳으로 부각된다. 비영리단체 ‘빈곤 사이클’이라는 용어가 있다. 간접비나 모금 비용이 너무 적으면, 비영리단체가 목적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악순환이 생긴다는 뜻이다. 단체별 특성에 대한 고려없이, 간접비 사용 비율만 부각되면 직접 사업만 수행하는 단체나 작은 단체는 존립이 어려울 수도 있다.

◇재정적인 평가의 한계 vs. 평가 단체 많아져야

사회=가이드스타 자료를 보니, 평가가 유보된 단체 상당수가 목적 사업 인건비를 0원으로 기록했더라. 그동안 비영리단체가 공시 자체에 너무 무관심했고, 간접비의 필요성을 기부자들에게 설득하기보다 무조건 기부자 눈높이에만 맞추려했던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비영리 투명성을 높이면서도 우리 기부 시장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임팩트를 높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희정=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배분단체나 월드비전·굿네이버스 같은 모금·사업단체를 같은 선상에 올려 평가하면 안 된다. 미국의 경우 단체 성격마다 분류가 되고 각기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대부분 기부자는 단체 간 성격 차이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왜곡된 인상을 줄 여지가 상당하다.

최호윤=국세청에 공시된 비영리 정보를 가이드스타에만 줄 게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호주나 미국에선 누구나 공시 자료 전체 데이터를 다운받을 수 있다. 현재 국세청 고시에는 ‘전체 데이터를 제3자에게 줄 수 없다’고 돼 있다. 가이드스타를 제외하곤, 8000곳이 공시 자료를 받지 못하다 보니 아예 다른 관점으로 분석하거나 평가해볼 여지가 없다.

박태규=가이드스타에서 비영리단체들이 제대로 공시하도록 교육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지만, 모든 걸 가이드스타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공시 양식 개선이나 공시 자료 공개 등은 오히려 한국NPO공동회의와 비영리학회 등을 비롯, 비영리 전체가 함께 국세청에 요구해야 한다.

여수동=삼일회계법인에서도 2009년부터 투명한 비영리를 선정해 상을 드린다. 기초 공시 자료, 홈페이지 내용, 인사 제도, 비전과 전략, 운영 정보 등을 갖고 평가한다. 자원하는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하는데, 평가를 거치고 나면 정보 공개나 투명성 등이 개선된다. 어떤 평가든 평가 대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다양한 평가가 필요하다. 국세청 공시 자료만 공개돼도 불필요한 논란이 해결될 것이다.

정무성=궁극적으로는 비영리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정부 부처가 단일화돼야 한다. 각 부처에 따라 요구 기준이 다른 상황에서 한 잣대로 평가하는 게 불가능하다. ‘비영리조직(NPO) 청’ 같은 기구가 차기 정부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박태규=이번 평가를 계기로 모금단체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많은 단체가 양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제는 외형 성장을 넘어서, 다음으로 넘어갈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런데 여전히 단체를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이라면 자본시장에서 어느 정도 제어될 텐데 비영리는 그런 게 없다. 이제는 모금액이나 양적인 성장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김희정=미국, 영국, 호주나 싱가포르 등 지난 몇 년간 해외 비영리 생태계를 둘러보며 부러웠다. 투명성은 너무 당연해 논의거리가 아니더라.정부와 기부자는 비영리단체를 신뢰하고, 비영리단체는 지역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임팩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유나이티드웨이에는 ‘임팩트과’가 있어서, 척도를 개발해 그 척도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앞으로 투명성을 넘어 효율성과 임팩트 평가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비영리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 우리는 1000개 중 한 단체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진다. 외국에선 잘하는 999개 단체는 두고 한 단체를 강력하게 처벌하더라. 비영리 영역을 키우려면 제도 전반이 이런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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