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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국제구호개발NGO ‘세이브더칠드런’ 내부가 뒤숭숭하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한달 간 본부장 2명을 포함해 부장급 이상 4명이 그만둔 상태다. 전 본부장 K씨는 중앙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2010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등을 역임하며, ‘이서현 보고서'(울산 울주군 아동학대 사망사건) 집필 총괄 등 아동학대의 중요한 어드보커시(옹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전 마케팅디렉터 C씨는 세계적인 광고회사 이사를 역임한 마케팅 전문가로, 2008년 세이브더칠드런에 들어와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성공시켰고 최근 3년 아프리카 여아 교육에 집중하는 ‘스쿨미 캠페인’을 이끌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얼굴 역할을 해온 주요 스태프가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정을 잘 아는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부임한 전(前) 사무총장의 불미스러운 언행으로 인해 직원들과 갈등을 빚은 게 발단”이라고 한다. 전 사무총장 S씨는 30년 가까이 금융업에 종사하며, KB국민카드에서 마케팅본부장으로 역임하다 지난해 비영리로 옮긴 인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말 벌어진 회식자리였다. S씨는 한 부장의 다면평가 결과를 공개하며 당사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했고, 동석한 본부장이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오히려 격분하며 도를 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상황을 수습하는 직원들에게 인권 침해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사건 이후 처리 절차였다. 본부장들은 고충 처리 절차를 통해 사무총장의 윤리강령 위반을 신고했으나, 김노보 이사장은 인사위원회에서 ‘화해하고 넘어갈 만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사무총장에 대한 징계는 유야무야 되고, 오히려 이를 신고한 K본부장의 사표가 수리되자 직원들은 1·2차 비상총회를 통해 ‘총장의 해임을 건의하는 성명서에 연임을 받아 이사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김노보 이사장은 본부 직원 전원 및 이사회에 메일을 보내, “S 사무총장이 12월 5일 자로 자진 사임할 것을 결정했다”며 “이사회 이사들과 긴급회의를 가졌고, 우리 기관 집행부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보여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는 점이 명확하기에 사임 의사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이번 사태는 본부장급의 강한 항의에 직원들까지 들고 일어나며 최소한의 견제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비영리단체 이사장이나 이사회에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없다는 점이다. ‘더나은미래’가 지난해 실시한 국내 100대 공익법인 이사회 전수조사에 의하면, 이사회 평균 연령은 61.77세이고, 경제·경영계 출신 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여성 이사는 10명 중 1명에 그쳤다. 글로벌 비영리 이사회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연령·성비·성향 등의 다양성이나 균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익법인 100대 이사회 전수조사 시리즈 기사보기) 최근 사태에 대해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나 새로운 사무총장을 임명할 시에 직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창구를 만들기 위해 노사협의체가 논의 중이며, 견제 장치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 비영리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효율성을 강조하며 양적 성장을 목표로 달려왔다”며 “이제는 질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거버넌스를 갖춰가야 할 시기”라고 했다. 강 교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2011년부터 ‘시민감시위원회’를 만들었고, 일종의 견제 장치로 작동한다”며 “비영리단체에서 열린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