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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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직업 재활 성공 모델… 카페 ‘히즈빈스’

바리스타 54% 이상은 정신장애인… 동기부여·실습 등 7단계 거쳐 채용
직원 1명당 7명의 전문가 상담과 지지 덕분에 평균 근속 기간 3년
“포항서 7호점 열 정도로 성장… 소외된 이웃 돕는 구조 이어갈 것”

2009년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 중앙도서관에 자그마한 커피숍 하나가 들어섰다. 학생들은 첫날부터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줄을 섰다. 바리스타 3명은 손님을 하루 평균 300여명 맞느라 분초를 다퉜다. 90개에 달하는 음료 메뉴를 1분 내로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학생들은 “여기 커피 맛을 한번 보면 다른 곳에 못 간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로부터 6년. 월 최고 매출로 4000만원을 찍을 만큼 인정받은 ‘커피 맛’은 포항에서만 7호점을 오픈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비단 ‘맛’뿐만 아니다.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 연구진은 10평 남짓한 카페를 직접 찾아 장애인 고용 시스템을 벤치마킹해갔고, 미국정신재활협회는 직원들의 변화된 모습을 소식지에 자세히 소개했다. 전문 바리스타의 절반 이상이 정신장애인 커피숍, 카페 ‘히즈빈스’ 이야기다.

히즈빈스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3년 이상이다. 6개월 이상 근속하는 정신장애인이 30%에 불과한 데 반해 놀라운 수치다. 게다가 단순 허드렛일을 하는 다른 장애인 카페와 달리 최대 1년 이상 전문 교육을 통해 정식 바리스타로 고용된다. 10평으로 시작한 커피 전문점이 전 세계 정신장애인의 직업 재활 성공 모델로 인정받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 그 중심엔 청년 임정택(32)이 있었다.

(주)향기내는 사람들의 임정택 대표(뒷줄 오른쪽에서 셋째)와 직원들. 회사의 장애인 고용유지율은 95%에 이른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주)향기내는 사람들의 임정택 대표(뒷줄 오른쪽에서 셋째)와 직원들. 회사의 장애인 고용유지율은 95%에 이른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주)향기내는 사람들의 임정택 대표(뒷줄 오른쪽에서 셋째)와 직원들. 총 직원 60명 가운데 37명이 장애인이다. 회사의 장애인 고용유지율은 85%가 넘는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25세 청년의 ‘맨땅 헤딩’… 삶을 바꾼 정신장애인과의 만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매장 입구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로 카페는 북적거렸다. 지난 12일 밤 9시, 한동대 중앙도서관 3층은 카페 히즈빈스 1호점을 찾은 학생들로 불을 밝혔다. 직원들은 밀려드는 주문에도 노련하게 커피를 추출하고 와플을 구웠다. “저희 선생님들이세요.” 바리스타를 소개하는 임정택 히즈빈스 대표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히즈빈스의 시작을 물었다. 그는 진로와 취업 고민으로 방황하던 25세, 대학생 임정택을 떠올렸다. “졸업은 코앞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처음엔 창업을 해서 ‘한국의 빌게이츠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그러다가 무엇을 위해 창업을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마침 한국 대표로 참가한 ‘아시아 대학생 창업 교류전’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 대학생들이 ’15억 중국 인구 중에서 약 1억명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면서 졸업 후 지역에 들어가서 주민들의 자립을 돕겠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비전이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때부터였다. 임 대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한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품고, 무작정 보육원·양로원·결손 가정·다문화 여성·장애인 등 포항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녔다. 6개월간 100여명을 매일같이 만났다. 하루를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이었다. 능력이 있음에도 기회가 없었고, 세상의 편견 때문에 포기해온 사람들. 임 대표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답을 찾았다. “진로 고민으로 방황하던 저를 잡아준 건 정신장애인 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한 분은 21세 때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오히려 제게 ‘잘하고 있다, 잘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 위로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뚝뚝 흘렀습니다. 그때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이분들이 전문가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회사… 체계적인 교육·승진 시스템이 핵심

2008년 9월 ‘㈜향기내는 사람들’을 설립한 임 대표는 경영학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학을 이중 전공하면서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그에 따른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학력 등 스펙 없이도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술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업 ▲기회가 꾸준히 보장되는 사업 등 3가지 원칙을 모두 충족하는 ‘커피’ 사업이 낙점됐다.

그러나 당시 25세 청년은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었다. 그는 30년 이상 커피숍을 운영하는 전국의 유명 바리스타에게 전화를 걸어 무작정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다. 한동대 총장, 부총장, 교수님들을 설득해 한동대 건물 안에 10평 남짓한 공간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초기 운영자금이 문제였다. 임 대표는 포스코 본사에 전화를 걸어 매달 사업계획서를 보완해 찾아갔다. 6개월 후, A4 3장짜리 기획안이 38장으로 두꺼워질 때쯤 포스코 담당자는 지원금 5000만원을 건넸다. 부족한 공사 대금은 직접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라가며 메웠다.

면접을 통해 정신장애인 직원 4명을 선발한 임 대표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심사위원이자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포항의 한 유명 바리스타를 교육 강사로 모셨다. ‘커피 맛’이 입소문 나면서 1호점 오픈 1년 반 만에 직원 수가 10명으로 늘었다.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던 분들이 고객들과 이야기하며 커피를 만들고, 신경정신과 의사 분들이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하는 동안 정신분열 증상이 안 나타났습니다. 더 많은 분이 이러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2호, 3호점을 차근차근 준비해갔습니다.”

히즈빈스에 취업한 이들은 모두 3개월 동안 7단계 교육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동기 부여 교육이다. 바리스타를 통해 각자 이루고 싶은 꿈을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다. 이후 직업 서비스 이해 및 예절 교육, 바리스타 이론 교육, 단계별 실습 시험을 거친다. 최종 평가에서 3번 이상 탈락하면 단기 인턴으로 고용된다. 지점이 늘면서 ‘히즈빈스 바리스타 챔피언십’도 개최하고 있다. 지점별로 대표 바리스타가 나와서 대결하는데, 이는 성과급과 승진으로 연결된다. 매년 대표로 선발되기 위해서 직원들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승진 시스템도 체계화했다. 매년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수습·주임·선임·수석 바리스타·매니저로 승격되는 것. 직원들 중엔 매니저를 하다가 창업 준비하는 정신장애인도 있고,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수석 바리스타들도 나타났다.

전문가 그룹의 다각적 지지 시스템… 자립 가능성 높여

히즈빈스의 장애인 바리스타들은 100여가지의 메뉴를 모두 익혀 능숙하게 제조, 서비스까지 책임지고 있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히즈빈스의 장애인 바리스타들은 100여가지의 메뉴를 모두 익혀 능숙하게 제조, 서비스까지 책임지고 있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히즈빈스 카페의 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 이들은 최소 3개월 이상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 /(주)향기내는 사람들 제공

전체 취업 장애인 중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단 6%(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14). 이에 반해 히즈빈스의 정신장애인 고용률이 54%, 평균 근속 기간이 3년 이상인 것은 기적과 같은 수치다. 임 대표는 “지역의 다양한 전문가가 정신장애인들의 지지자가 되는 네트워크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히즈빈스 1호점을 연 지 몇 달 만에 정신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늘어난 것. ‘우울해지면 집 밖에 나오고 싶지 않다’ ‘레시피가 어렵고 부담돼서 출근 못 하겠다’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 등 반응도 다양했다. 임 대표는 정신장애인 1명당 의사·사회복지사·카페 바리스타 및 매니저·교수·히즈빈스 대표·대학생 서포터스 등 지지자 7명을 매칭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각 지점의 카페 매니저는 매일 퇴근 전 그날 일한 정신장애인의 증상, 업무, 관계 등에 대한 일지를 써서 지지자 7명에게 메일을 보낸다. 메일을 받은 지지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해당 직원에게 실시간 증상에 대한 조언, 상담, 치료 등을 진행한다.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저절로 발동되게 만든 것. 한동대학교와 연계해 매 학기 대학생 30명이 히즈빈스 장애인과 ‘짝꿍’을 맺고, 서포터스로서 장애 인식 개선과 홍보 활동도 한다. 지금까지 대학생 서포터스 150명이 히즈빈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러한 다각적 지지 시스템은 직원 1명당 최소 1년 반까지 운영된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려면 부모의 지지가 필요하듯, 몇십년 만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신장애인 분들께도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 한 명이 지역 안에서 10년, 20년을 자립하며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네트워크가 협력하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임 대표가 다각적 지지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20년 동안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8년 차 바리스타 김철민(가명)씨는 “망상과 싸우며 세상이 무서워 집 밖을 나가질 못했다”면서 “히즈빈스에서 ‘환자’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불리면서 자존감이 높아졌고,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많은 분을 떠올리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어금니를 물고 정신을 차렸다”고 말했다.

히즈빈스 직원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내 문화도 큰 몫을 한다. 박승빈(30) 히즈빈스 1호점 매니저는 “시집을 내는 게 꿈인 한 바리스타를 위해서 직원들이 이분이 20년간 오래된 종이에 써온 시를 모두 모아서 워드로 작성해 시집을 출판했다”면서 “결혼이 오랜 소원이던 한 바리스타는 히즈빈스에서 일하면서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직원들이 플래시몹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해 3개월 뒤 결혼에 골인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 지원금 0원… 돈보다 사람 키우는 CEO

“매장이 7개나 되니 부자인 줄 오해하시더라고요(웃음). 히즈빈스를 설립하면서 직원 월급을 아래부터 채워주자는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 넘게 대표 월급을 받지 못한 때도 있었죠. 우선순위는 항상 우리 바리스타 선생님입니다.” 직원을 우선하는 CEO의 철학 덕분일까. 히즈빈스는 채용 때마다 경쟁률이 5대1을 훌쩍 넘는다.직원들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월급이 오르고, 고용 기회를 기다리는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수익은 모두 매장을 늘리는 데 재투자된다. ‘경영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손대지 못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취업에 앞장서지만, 정작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면 인건비·임차료 등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아직 생각은 없다. “지원금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대신 커피 원두·빵·쿠키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해 마진을 줄이고, 시청·학교 등으로부터 일정 기간 공간을 지원받아 별도 임차료를 줄이며 재정 자립도를 높였다. 현재 히즈빈스 중앙아트홀점과 동빛나루점의 공간은 포항시청의 지원으로 운영 중이다.

기업의 장애인 의무 고용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정신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는 방법도 활용하고 있다. 상시 5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직원의 2.5%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어길 때는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지난해 기업들이 낸 장애인 고용 부담금은 3261억원에 달한다. 임 대표는 직원 수가 1000명에 달하는 세명기독병원이 히즈빈스에 로열티 5%를 제공하는 대신, 해당 병원에 히즈빈스 카페를 오픈하고 장애인 교육 및 관리 운영을 대행해주고 있다. 세명기독병원은 이미지 개선뿐만 아니라 약 2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다. 다음 달에는 부천 예손병원 1층에 첫 경기지역점을 낸다. 부천 시청, 병원, 사회복지기관 등을 누비며 7개월간 다각적 지지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다.

30대 초반에 짊어진 책임이 무겁지 않으냐는 질문에, 임 대표는 “절대 고되지 않다”며 웃음을 보인다. “장애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도움만 받던 분들이 이젠 누군가를 돕는 꿈을 꿉니다. 그럴 때마다 다짐하게 됩니다. 평생 제가 해야 할 사명이라고요. 그래서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죽는 날까지 묵묵히 나가다보면 더 나은 길이 열리지 않겠어요?(웃음)”

포항=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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