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현장으로 달려간 청년들, 소외계층 위한 기술 개발 나섰다

이큐브랩, ⅛로 압축하는 쓰레기통 출시…루미르, ‘촛불램프’로 필리핀 환경 바꿔
샤디아, 현지인 셀프 촬영하는 앱 제작

“신촌이나 홍대, 이태원 같은 곳에 한밤중에 가보세요. 항상 쓰레기통이 넘쳐나죠. 처음엔 그저 ‘누군가 꾹꾹 밟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권순범(27) 이큐브랩 대표의 말이다. 2011년 설립된 이큐브랩은 “우리 사회에서 방치되고 있는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해보자”며 뭉친 소셜벤처 기업이다. 첫 작품은 태양열을 이용한 쓰레기통 ‘클린큐브’. 사회적기업 컨설팅 동아리에서 만난 이들 4명이 뭉쳐 6개월간 공을 들였다. 태양광 배터리와 모터를 활용, 500㎏의 힘으로 쓰레기를 위에서 눌러 압축해줘 최대 8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권 대표는 “처음 작동시켰을 때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곧 폭발할 것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러 단계의 테스트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했다.

‘샤디아’는 인도 빈민 지역의 교육 환경을 기술로 개선시키고 있다. /샤디아·이큐브랩·루미르 제공
‘샤디아’는 인도 빈민 지역의 교육 환경을 기술로 개선시키고 있다. /샤디아·이큐브랩·루미르 제공

◇직접 현장 뛰어보니 새로운 문제 보여… ‘이큐브랩’ 권순범 대표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만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던 이큐브랩. 하지만 첫 시제품 평가를 위해 환경미화원들을 따라 나섰던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깨달았다.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달을 따라다녔어요. 넘쳐나는 쓰레기통만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분들의 업무 강도가 더 심각하더라고요. 쓰레기 관리가 구닥다리 방식이라는 것도 실감했고요.”

권 대표에 따르면, 북유럽 등의 선진국 쓰레기 처리 산업은 연간 8% 성장을 거두고 있는 거대 시장이다. 일찍이 대규모 민영화가 이뤄진 덕분이다. 환경미화원들의 대우도 일반 대기업 회사원과 비슷할 정도.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시행 초기, 불법 쓰레기 투기가 늘면서 정부에서 공공 쓰레기통 수를 20%로 줄였고 이 과정에서 인력도 대폭 감소되며 환경미화원들의 업무 강도만 크게 늘었다. 쓰레기 처리를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일부 영세업체가 맡고 있어, 인력 충원은 커녕 제대로 된 처우도 힘든 실정이다.

현장의 문제를 파악한 이큐브랩은 사업 범위를 쓰레기 처리 전 과정으로 넓혔다. 쓰레기통에 부착 가능한 센서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쓰레기 양을 측정, 스마트폰으로 다 채워진 쓰레기통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든 쓰레기통을 일일이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막을 수 있어 환경미화원들의 업무를 줄일 수 있다. 또 데이터 값이 중앙에 모여 쓰레기가 많이 생기는 곳과 적게 생기는 곳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효과적인 쓰레기 관리도 가능하다. 이 기술은 세계적인 통신사 ‘보다폰’과의 협약을 통해 날개를 달았다. 값싼 통신비로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 유럽은 물론 일본·중국·캄보디아 등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현재 진행 중인 계약만 150억원 규모다. 지난달 말에는 서울시 마포구, 성북구 등 5개 자치구에서 시범 운영도 시작했다. 권 대표는 “사회문제를 유발시키는 소외된 영역에 적절한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며 “이를 위해 현장 조사와 피드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위)사물인터넷을 통해 쓰레기 등 소외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이큐브랩’. /개발도상국 에너지 문제 대안으로 새로운 기술 개발한 ‘루미르’. /샤디아·이큐브랩·루미르
(위)사물인터넷을 통해 쓰레기 등 소외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이큐브랩’. /개발도상국 에너지 문제 대안으로 새로운 기술 개발한 ‘루미르’. /샤디아·이큐브랩·루미르 제공

◇호랑이는 호랑이굴에서, 현장 문제는 현장에서… ‘루미르’ 박제환 대표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대응하라.”

적정 기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폴 폴락(Paul Polak)이 밝힌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의 성공 노하우다. 한국의 폴 폴락을 꿈꾸는 박제환(27) 루미르 대표의 시선 역시 현장에 꽂혀 있다. 박 대표는 지난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소셜벤처대회(GSVC)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해 직접 개발한 ‘촛불램프’를 선보였다. “우연히 필리핀 현지인들의 생활을 한 달 동안 경험했어요. 촛불 하나에 의지해 모든 생활을 하더라고요. 연료 공급에 한 달 월급의 30% 이상이 들어가고, 유독 가스에 목숨을 잃기도 하죠.”

양초를 켠 후 램프를 씌우면 1분도 안돼 백열등처럼 환한 빛을 내는게 촛불램프의 핵심기술이다. 빛은 양초보다 106배나 밝다.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박 대표가 ‘미사일의 열을 음파로 탐지하는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필리핀 현지 NGO ‘캠프(CAMP)’와 파트너십을 맺고, 제품의 피드백도 발 빠르게 흡수했다. “현지에서 사용해 보곤 방 전체를 희미하게 밝히는 것보다는 특정한 곳을 집중적으로 밝게 해달라고 건의했죠. 램프 상단 디자인을 바로 수정했어요. 3~4개월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7개월 만에 제품을 완성했죠.”

‘빛’에 대한 박 대표의 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대학 시절 농사를 짓는 삼촌의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폐스마트폰에 적외선 LED를 달아 ‘폐쇄회로카메라(CCTV)’를 만들기도 했고, 인도 여행 중 하루에도 몇 번씩 정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스위치로 불을 끈 경우와 정전인 상황을 구별할 수 있는 ‘LED 무정전 전원장치'(UPS)를 개발하기도 했다. 모두 현장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을 덧댄 시도다. 박 대표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로 들어가야 하듯 해결하려고 하는 곳이 있다면 책상을 박차고 먼저 그곳에 가보라”라고 조언했다.

◇현지인들이 직접 전하는 현지의 문제 듣는다… 서울대 ‘샤디아’팀

현지의 목소리가 중요해지면서, 현지인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담을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아이시티포디(ICT4D·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Development, 정보통신기기를 통해 개발도상국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프로젝트팀 ‘샤디아’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스토리메이커’가 대표적이다. 샤디아는 2011년부터 매년 인도 빈민 지역을 방문해 기술로 교육 환경을 개선시키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모르는 외국인들이 집에 들어와 캠코더나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일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본인의 모습을 담게 했죠.”

샤디아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하면 ‘학교 가는 길’, ‘공부하는 모습’ 등 여러 개의 개별 미션이 나오고 이를 누르고 촬영하면 영상은 자동적으로 각 카테고리에 저장된다. 별도로 분리한 덕분에 영상이 현지인의 어떤 모습을 담았는지 외부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여러 개의 영상을 하나로 이으면 현지인의 일상 전체를 파악할 수도 있다.

정영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연구원은 “처음 시도에서 14명에게 48시간을 주었는데 평균 88개의 영상을 찍어왔다”며 “몇 년에 걸쳐 인터뷰도 해보고 수 천 장 넘게 현지 사진도 찍어봤지만 현지인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쥐여줬을 때 비로소 빨래하는 모습, 학생이 친구 숙제를 베끼는 모습 등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대 샤디아 팀은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현지에 필요한 교육도구 3점을 전해줬다.

홍성욱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은 “사회적 가치를 기술로 해결할 때 현장 조사는 필수”라며 “돈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기술 개발 시작 단계부터 철저한 현지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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