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마음을 치료하는 무용수…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춤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트러스트 무용단 김형희 단장

청소년들이
문제 행동하는 건
마음이 아프기 때문

지원금 떨어지면
사비 털고 시간 내
춤 가르쳐 무대 올려

장애인 무용수 있는
유일한 현대무용단

소외된 아이들 위한
‘몸 대안학교’
만드는 게 목표

삶에서 주인공 역할은 단 한 번도 주어진 적 없었다. 김현준(16·가명)군 이야기다.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10대 초반이던 김군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을 닫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마음의 문도 닫았다. 집을 나왔고, 돈이 없어 물건을 훔쳤다. 휴대폰을 훔치다가 걸렸다. 싹싹 빌 부모도 없다 보니 소년원 송치 직전 단계인 ‘6호 처분(수탁 교육기관 생활)’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무대 위 주인공 역할이 주어졌다. 지난해 8월 6호 처분을 받고 머물던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서 이뤄진 김형희(53) 트러스트 무용단 단장과의 춤 수업에서다. 구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발도 선뜻 내딛지 못한 채 흘려보낸 날도 수차례. 4개월 이상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김군이 서서히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역서울284 공연장에서 펼쳐진 ‘들어라! 움직여라! 소리쳐라!’ 공연. 살레시오 친구들 12명과 6명의 트러스트 무용수들, 밴드와 아프리카 공연까지 50명 이상이 참여한 큰 무대에서 김군은 넉넉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박수갈채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지난 2일, 서울 신림동 트러스트 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형희 단장은 “제가 가진 게 춤인데, 해보면 너무 좋은 거라 여기저기 알려주고 같이 추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주선영 기자
지난 2일, 서울 신림동 트러스트 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형희 단장은 “제가 가진 게 춤인데, 해보면 너무 좋은 거라 여기저기 알려주고 같이 추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주선영 기자

“마음을 많이 다친 친구였어요. 늘 혼자 있는 걸 보고 일부러 주인공을 시켰어요. 공연이 끝나고 활짝 웃으면서 와락 안기기에 수사님도 울고 저도 마음이 울컥했죠. 공연하기 전까진 애들이 바뀌는지 아닌지 잘 몰라요. 공연을 하고 나면 차오르는 에너지는 말로 표현을 못 해요. 일부러 가장 좋은 것들을 경험해보게 해요. 멋진 옷 입혀서 스튜디오 가서 프로 무용수처럼 사진도 찍어주고요. 조명 가득한 큰 무대에서 박수도 받게 하고요. 아이들은 경험한 만큼 변합니다. 김군도 자존감을 많이 회복해 이젠 씽긋 잘 웃어요. 친구들이랑도 같이 어울리고요. 응어리졌던 마음이 많이 풀린 거죠.”

김형희 단장의 말이다. 1995년 트러스트 무용단을 만들고 꼬박 20년을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김 단장의 트러스트 무용단은 현대무용 분야에선 명성이 꽤 높다.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작품상’ ‘PAF 올해의 춤작가상’ ‘무용비평가회 선정 올해의 최고 무용가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최우수상’…. 그런 그녀가 5년 전부터 때마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춤을 가르친다.

“러시아 공연을 갔는데, 그때 촬영차 같이 갔던 KBS PD가 마침 영국·미국 다니면서 춤을 통해 청소년들을 변화시킨 사회적기업들을 만나고 왔다며 나보고 ‘사회적기업 하세요’ 하더라고요. 러시아 다녀와서 그 방송을 봤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춤추면서 아이들이 변하고, 다친 마음이 위로받고, 또 먹고살 길도 마련해주고…. 그런데 또 춤은 내가 잘하는 거잖아(웃음). ‘아이들 찾아 만나야겠다’ 했죠.”

아이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은 먹었는데 길을 몰랐다. 무작정 관악구청에 메일을 썼다. 민원 접수 해프닝으로 끝났다. 3일 후 누군가 무용실 연습실로 찾아와 명함을 건넸다.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 관악구 담당자’. 위기 청소년들에게 춤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는 당연히 구청에서 보낸 줄 알았어요. 근데 얘길 해보니 이쪽을 우연히 지나가다 건물에 붙어 있는 무용단 이름을 보고 아이들한테 춤을 가르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들어왔다는 거예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지. 우리 둘 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몰라요.”

센터를 통해 아이들 20여 명과 만났다. ‘위기 청소년’이라는 친구들과의 첫 만남. 괜히 삐죽대는 모습도 예뻤다. 몸 쓰는 법을 알려주니 그 자체로 한 명 한 명 빛이 났다. 매주 만나선 밥도 사고 춤도 가르쳤다.

‘더 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도 춤을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커졌다. 또 다른 우연이 이어졌다.

“우연히 잡지에서 서울 가정법원 김귀옥 판사 인터뷰 기사를 읽었어요. ‘문제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나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다. 예술로 치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내 생각이랑 똑 같을까 싶었죠. 며칠 지나서 무턱대고 서울가정법원으로 전화했어요, 판사님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전화받은 사람은 ‘판사님 바쁘시다’며 자꾸 끊으라고 하는데, 그럼 제발 통화만 잠깐 하게 해달라고 우겼죠. 결국 통화로 몇 마디 하자마자 바로 ‘만납시다’ 하셔서 선걸음에 택시 타고 가정법원으로 찾아갔어요.”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역서울284 공연장에서 펼쳐진 ‘들어라! 움직여라! 소리쳐라!’ 공연 현장.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어떤 아픔이 있든, 이날만큼은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살레시오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김형희 단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대 공연을 하고 나면,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통하며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벅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트러스트 무용단 제공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역서울284 공연장에서 펼쳐진 ‘들어라! 움직여라! 소리쳐라!’ 공연 현장.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어떤 아픔이 있든, 이날만큼은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살레시오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김형희 단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대 공연을 하고 나면,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통하며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벅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트러스트 무용단 제공

법원에서 만난 김 판사는 책 한 무더기를 안겼다. 김 판사 역시 예술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해줄 이들을 찾고 있던 터였다.

“그때 처음으로 5호, 6호가 뭔지 알았어요. 판사님이 5호 아이들 30시간 봉사활동 중에 무용을 5시간 편성해 주셨죠. 그게 시작이 됐습니다.”

그날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5호 아이들과의 ‘춤 수업’이 시작됐다. “다섯 회는 너무 짧고 아쉬운 거예요. 이 친구들은 수업 다녀가면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제가 ’10분이 늦었니’ ‘열심히 안 했느니’ 온갖 핑계를 대가면서 도장을 안 찍어주고 다음 주, 그 다음 주에도 오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수업에 정 붙이고 재미 붙여 2년이 흘렀다. KBS PD의 주선으로 전국에 6개 있는 6호 기관들과도 연이 닿았다. 그중 가장 가까운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와는 함께 맺은 인연이 올해로 4년째다. 그간 무대에 올린 살레시오 아이들만도 수십 명. 지원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단원들과 함께 나가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비를 털고 시간을 내서 춤을 가르치고 무대를 준비했다.

“돈을 주기도 하고, 우리 집 주민등록에 동거인으로 올려놓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 여자애를 집까지 데려와 같이 살고 스마트폰도 새로 사줬는데, 두 달 만에 말없이 나가버려서 제가 전전긍긍했죠. 아직 2년을 못 채워서 여태껏 휴대폰 요금 내고 있지만요(웃음). 2년쯤 지나 연락이 왔는데, 그 사이 아이를 낳았더라고요. 이럴 때마다 마음이 안 좋기도 하고, 그래도 또다시 연락 오고 만나서 얘기 나눠보면 한 명 한 명 참 마음이 순수하고. 이런 애들이 ‘얼마나 삶이 힘들면 저러나’ 싶죠. 마음이 안타까워요.”

사실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과 만나기 전부터 김 단장의 시선은 소외된 곳을 향했다. 트러스트 무용단은 장애인 무용수가 소속된 유일한 현대무용단이다. 2000년 지인을 통해 뇌병변장애를 가진 분을 소개받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다던 그가 음악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율이 일었다.

“이분이 온몸을 막 꼬아가면서 힘들게 움직이는데, 춤 전공한 친구들이 다들 감동했어요. 우리 무용수들은 일부러 멋있게 보이기 위한 동작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몸 안에서 나오는 움직임 그 자체가 이렇게나 아름답구나, 먹먹하더라고요.”

그 길로 트러스트 무용단의 정식 단원이 됐다. 첫 장애인 무용수가 생긴 뒤로 무용단엔 지금껏 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했다. 지적 장애, 청각 장애, 후천적 시각 장애, 뇌성마비, 지적 장애에 자폐까지.

“춤이라는 게 몸을 이용해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잖아요. 물론 쉽지 않을 때도 많아요. 의사 전달이나 소통이 힘들기도 하고요. 이번에 발달 장애 친구들만 모아 춤 수업을 해보려니 ‘이건 진짜 힘든 일이구나’ 싶더라고요. 무수한 반복도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제가 해야 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도 아니고요.”

김형희 단장은 “언젠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몸 대안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갈 곳 없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며 춤도 배우고, 성숙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

“이 친구들이 기관 밖으로 나와도 갈 곳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거리 돌다 보면 돈이 없으니 결국 똑같은 일이 반복돼 두 번, 세 번씩 다시 들어오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어떤 친구들은 딱 봐도 재능이 뛰어난데, 생활환경이 마땅치 않으니 마음에만 담아두고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마음 같아선 데려다 키우고 싶어요. ‘위기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더 많이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이에요. 사랑이 부족했고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몸을 움직이며 응어리도 치유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픔을 딛고, 다 함께 춤추며 성장하는 공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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