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숨은 영웅을 찾아서] ③ 내 인생을 바꾼 건 아이들… 그들이 또다른 삶 돌보길

숨은 영웅을 찾아서(3) 최연수 한빛청소년대안센터장

학원강사였던 23년전 청소년 문제 매달려 중퇴생들, 무조건 학교로 돌려보내기보다 고민 들어주고 꿈 찾을 수 있도록 도왔죠 지금까지 센터 거쳐간 아이들 800여명… 법대 진학·경찰시험 합격 후 후배 돕기도

“중·고등학생 여덟 명이 본드와 가스를 마신 채 뒹굴고 있더군요. 개수대에는 먹다 남은 라면 냄비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집을 나갔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장기간 지방 출장이 잦다보니 동네 형들이 그 애의 집을 아지트로 삼은 것이었죠.” 최연수(52)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센터장이 처음 이 길에 들어선 건 20여년 전 맞닥뜨린 충격적인 현장 때문이다. 중간·기말고사만 되면 극성 엄마들이 돈봉투를 들고 와서 “문제 좀 찍어달라”고 하던 학원 강사 일에 회의를 느낄 무렵이었다. 최 센터장은 YMCA 송파청소년독서실에서 영어·수학을 가르치는 야간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다 익혀갈 즈음, 한 학생이 3일 나오다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학생을 찾아나선 거여동 판자촌, 그곳은 ‘별세계’였다.

“삶의 터전인 마을이 학교가 되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서로 보듬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최연수 센터장의 다음 목표인 마을학교는 마을이 함께 키운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조철희 더퍼스트 기자
“삶의 터전인 마을이 학교가 되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서로 보듬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최연수 센터장의 다음 목표인 마을학교는 마을이 함께 키운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조철희 더퍼스트 기자

이후 그는 매주 청소년 아지트 예닐곱 군데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먹였다. 아이들은 그를 ‘빵아저씨’라고 불렀다. 생업이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등교를 거부하는 ‘동네 짱’들을 모아 축구팀도 만들었다. 그러기를 2년, 1995년 아예 5평짜리 방 한 칸을 빌려 ‘한빛길거리상담소’라고 이름붙였다. “처음에는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3번 과외를 하면서 운영비를 충당했는데, 과외를 갔다 오면 난리가 나 있었어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책 사이에 꽁초를 끼워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한가득 쌓였죠. 주민들 항의가 거세져 문단속을 하자 유리창까지 깨고 들어오더군요. 기름보일러 안에 석유가 떨어져서 안 넣으니까 테이블 위에 이불을 깔고 자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먹이고 재우니까 처음 돌보던 그룹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본드며 가스를 들이마시는 후배들을 저 대신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의하던 동네 분들도 달라졌어요. 문 열어놓으면 쌀도 놓여 있고, 라면도 툭 던져져 있었어요. 90년대 후반부터 먹을거리가 안 떨어졌습니다.” ◇싸움꾼 일진이 경찰시험에 합격하기도 갈수록 중퇴생이 늘었다. 최 센터장은 상담소를 아예 ‘한빛청소년대안센터’로 키우고 본격적으로 복학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절망했다. 신학기에 중퇴생 30명을 복학시켰더니 5월이 될 무렵 24명이 학교를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힘든 가정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무작정 학교로 돌려보내는 게 능사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2001년, 강남 사랑의교회 청년 20여 명과 힘을 합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랑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교육봉사 선생님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겨울에는 8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여름에는 캠프를 떠나 공부와 삶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했지요. 지금까지 800명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2013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4만4000여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했다. 서울에서만 8000명이 넘는다. 최연수 센터장은 “교과 교육이 전부는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하고 전문성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라며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꿈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3년 전인 2012년 청소년이 꿈을 설계할 수 있게 돕는 ‘한빛청소년 휴카페’를 개설했다. 마을 내 당구장·카페·화원·교회 등과 협업해 전문가에게 배우는 직업 체험 동아리 활동도 한다. “가게 사장님 한 분, 한 분을 찾아가 ‘우리 지역 아이들이니 함께 키우자’고 설득했어요. 생업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입니까. 아이들이 시간 때우러 당구장에 가면 ‘당구 500 치는 사장 아저씨’지만, 동아리 수업을 진행하면 선생님이 되는 걸요.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보다 다양한 진로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역 주민에게는 또 다른 자아 실현의 기회와 유대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마을학교입니다.” 꿈을 가진 청소년들은 열매를 맺는다. 한빛의 고문변호사가 돼 최 센터장을 돕고 싶다던 아이는 법과대에 진학했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던 일진은 지난해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10여년 전 폭주족으로 뛰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됐던 아이는 자동차 정비회사 과장이 됐다. 춤에 빠져 가출했던 중학생 소년은 뮤지컬 배우가 돼 내년부터 한빛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을 예정이다. 동대문에 옷가게를 낸 제자는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기부하고, 가락시장에 식료품점을 운영 중인 제자는 매년 간식거리를 책임진다. 최 센터장은 “방황하는 아이들도 2~3년만 집중적으로 돌봐주고 꿈을 설계해주면, 20대 중반 이후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고 했다. 그는 요즘 한빛을 거쳐간 아이들의 결혼 준비도 돕고 있다. 주례 부탁이 워낙 많아 최 센터장을 주례석에 세우려면 예비부부가 함께 하루 2시간씩, 6회기 동안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좋은 부모로 성장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주문이다. 그는 “지난해 딸내미 한 명을 혼주석에서 시집보냈다”고 껄껄 웃었다.

한빛이 운영 중인 캠핑카 상담소 ‘유레카’는 33명의 봉사자와 함께 지난해 5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현대자동차·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한빛이 운영 중인 캠핑카 상담소 ‘유레카’는 33명의 봉사자와 함께 지난해 5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현대자동차·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한빛이 운영 중인 캠핑카 상담소 ‘유레카’는 33명의 봉사자와 함께 지난해 5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현대자동차·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한빛이 운영 중인 캠핑카 상담소 ‘유레카’는 33명의 봉사자와 함께 지난해 5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현대자동차·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갈 곳 없는 센터를 위해 십시일반 모인 ‘기적’ 최 센터장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잠깐 발을 담근 게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줄 몰랐다”며 “밑 빠진 독 같던 아이들에게 20년간 물을 부어보니, 그 독이 콩나물시루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마다 주변에서 이어진 도움의 손길 또한 그를 버티게 한 힘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캠핑카 이동상담소 ‘유레카’ 역시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4년 전, 검정고시를 마친 아이들 15명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캠핑카 두 대를 빌려 바다 여행을 갔어요.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차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에 캠핑카 상담소를 생각했지요. 그해에 구청에 제안서를 썼는데 바로 거절당했어요. ‘언젠가는 꼭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는데, 지난해 현대자동차 ‘함께 움직이는 세상 공모사업’에 당첨돼 350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1800만원이 모자랐는데, 3개월 동안 주변 분들이 십시일반 그 돈을 모아주셨어요.” 2013년 한빛은 20년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무려 6차례나 이사를 했는데, 또다시 공간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곤 보증금 4000만원뿐이었다. “20여 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이젠 정말 그만하라는 뜻인가 싶어 잠도 오지 않더군요. ‘국가가 해야 하는데, 내가 왜 20년 동안 이 일을 했나’ 원망도 들었습니다. 새벽에 홀로 거실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는데 불현듯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400여 명이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을 하나하나 보며 ‘한빛이 이사를 가니 기도해 달라’고 문자를 썼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계좌에 차곡차곡 후원금이 쌓이더니 이사를 갈 때쯤 기적처럼 이전비용이 마련됐습니다.” 최 센터장의 다음 비전은 ‘마을학교’다. 어린 시절, 최 센터장이 살던 전남 나주의 시골 정자나무 밑에는 늘 마을의 어르신이 앉아 있었다. 한쪽 호주머니에는 아이들의 코를 닦아줄 손수건, 다른 쪽 주머니에는 십리사탕을 넣고선 아이들이 인사할 때마다 “훌륭한 어른이 돼야 한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이다. “요즘은 길에서 흡연하는 아이들을 보면 고개를 돌리는 어른들이 많지요. 아이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담배를 계속 피우고요. 제 어린 시절 정자나무 어르신 같은 분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마을은 회복돼야 합니다.” 그는 “아이들은 제 덕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이들 덕에 인생이 바뀐 것은 저 자신”이라며 “마을이 학교가 되면 주민 모두 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보람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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