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희망 허브] 불협화음만 내던 우리,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2014 하트포르테 페스티벌
발달장애 청소년 160명 1년여 연습, 합창·난타·클래식연주 등 공연 선보여
“입 닫고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들 한목소리 내는 것 보며 감동”

지난 17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트포르테 페스티벌’에선 서울, 충청, 경기 지역 10개 복지관에서 온 발달장애 청소년 160명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지난 17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트포르테 페스티벌’에선 서울, 충청, 경기 지역 10개 복지관에서 온 발달장애 청소년 160명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난타를 처음 배울 때 우람이는 무조건 빨리만 치려고 했죠. 천천히 속도를 맞추라고 하면 자존심 상하고, 화를 내던 아이였어요.”

관객들 시선이 한곳에 꽂힌 모습을 바라보던 박명옥(44·종로장애인복지관 음악 강사)씨가 대견한 듯 말했다. 아이 12명은 ‘더블유(W)’자 형태로 펼쳐 서 있고, 제 앞엔 모두 키 반만 한 북이 놓여 있었다. 음악과 함께 서서히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이들은 그룹 퀸(Queen)의 노래 ‘위윌록유(We will rock you)’의 박자에 맞춰 ‘둥둥 탁! 둥둥 탁!’ 북을 내리쳤다. 검정 반짝이 옷으로 멋을 낸 권우람(가명·11)군은 의상만큼 과감했다. 신이 났는지 북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박자를 놓쳐버린 우람이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얼굴을 찡그린 채 북채를 몇 초간 허공에 잡아두더니, 이내 다시 친구들의 박자를 찾아 속도에 맞게 북을 쳤다. ‘하트포르테’ 활동 1년 만에 발달장애를 가진 우람이는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어머니 장미옥(가명·38)씨는 “엄마 없인 한 발짝도 안 움직이던 아이가 난타 수업을 받고 나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며 “음악을 통해 어울릴 줄 아는 아이가 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트포르테 페스티벌’은 우람군 같은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자신의 변화를 뽐내는 자리였다. 총 10팀, 160여 청소년이 그간의 노력을 무대 위에 올렸다. 합창을 하거나, 클래식 연주를 하거나, 사물놀이 혹은 난타 공연을 선보이는 등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같았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최영민(30) 수시아청소년합창단(대전장애인재활협회) 지휘자는 “입술을 닫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들이 내 눈을 응시하며,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임종승(28) 종로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발달장애 친구들은 제각기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 소통이 힘든데, (말이 필요 없는) 음악을 통해 함께 같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하트하트재단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하트포르테’ 사업은 지난 20년간 발달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던 재단의 역량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이 만나 빚어진 사업이다. 2006년 창단한 발달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보여준 가능성이 큰 밑거름이 됐다. 김진아 하트하트재단 복지사업부 부장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하나의 작은 사회 속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이 배려하고, 인내하고, 협동하는 모습과 그 덕분에 가족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발달장애 청소년들로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장애인복지관과 협력해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차적으로 서울·경기·강원·충청 지역 장애인복지관 23곳의 발달장애 청소년과 가족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합창·우쿨렐레·카혼·난타·사물놀이 등 그룹 음악 활동을 위한 악기와 강사비를 지원했다. 참가 학생들은 매주 1~2회 복지관에서 정기 연습을 하며 음악적 기량도 쌓고, 사회성도 쌓았다.

‘하트포르테’ 프로그램은 8세부터 24세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발달장애인들이 우쿨렐레, 사물놀이, 클래식악기, 난타 등 다양한 음악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
‘하트포르테’ 프로그램은 8세부터 24세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발달장애인들이 우쿨렐레, 사물놀이, 클래식악기, 난타 등 다양한 음악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임종승 사회복지사는 “연습 초기에는 엉뚱한 말과 돌발행동을 하며 교육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활동이 거듭되면서 이 같은 문제행동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학부모 장미옥씨는 “활동 중에 칭찬을 많이 들었는지 스스로 자존감이 생겨 매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달 초, 17개 기관 참가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업 효과 평가(5점 척도)를 보면 상호작용(2.6643점→2.9917점), 협동성(2.7792점→3.0313점), 자주성(2.7172점→2.9831점), 조망수용능력(2.8946점→2.9917점) 등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사회성이 모든 부문에서 고르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변화는 가족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수시아청소년합창단에서 활동하는 김정윤(가명·17)양의 어머니 김윤희(가명·57)씨는 “아이가 장애에 사춘기까지 더해져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는데, 노래를 시작한 이후 조잘조잘 말도 많아지고 매사에 밝은 아이가 됐다”며 “독선적이었던 아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가족 간의 관계도 훨씬 돈독해졌다”고 했다.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를 겪는 청소년들 못지않게, 그들을 키우는 부모 역시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고 우울증을 겪는 경우도 많은데, 자녀들이 느끼는 작은 성취감은 고스란히 부모들의 내적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하트하트재단은 내년부터 이들의 외부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김미옥 교수는 “장애인 문화복지 저변 확대와 보급에 유리한 ‘하트포르테’와 발달장애인의 성공 모델을 만들며 장애 인식 개선에 역할을 하는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두 축으로 함께 진행된다면, 앞으로 여러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11월 7일 ‘위드콘서트’ 공연

오는 11월 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하트하트재단 ‘하트리사이틀홀’에서 제8회 ‘위드콘서트’가 열린다. ‘위드콘서트’는 하트하트재단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성을 향상하고 음악적인 기량을 쌓아온 발달장애 연주자들이 펼치는 무대로, 대중에게 발달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기 위해 기획됐다.

발달장애 연주자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수준 높은 연주를 선보일 이번 공연에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유명 음악가들도 함께할 예정. 그동안 피아니스트 조재혁, 첼리스트 이숙정, 플루티스트 박지은 등을 비롯하여 뛰어난 음악가들이 ‘위드콘서트’의 무대를 빛냈는데, 특히 발달장애 연주자와 비장애 연주자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는 관객들에게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의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공연 중간에 토크 시간도 펼쳐진다. 관객들이 발달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들을 바로 이해시키고자 마련된 토크 시간을 통해 발달장애 연주자들이 장애를 딛고 연습하는 과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미래의 계획 등을 진솔하게 들어볼 수 있다.

▲문의: 하트하트재단(02-430-2000)

최태욱 기자

정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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