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당신이 마신 커피 한잔 덕에… 네팔의 아이들은 학교로 향합니다

네팔 커피협동조합 사무국장 먼두 타파

마을 최초의 공정무역 커피 농부로
자녀들 학교 보내도록 커피 재배 가르쳐
17일 세계 빈곤퇴치의 날 맞아
현대홈쇼핑서 직접 재배한 커피 판매

미상_사진_사회적경제_먼두타파_2014 “나마스떼~. 저는 네팔에서 온 커피 농부입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반짝이는 연두색 전통 의상을 입은 먼두 타파(Mandu Thapa·29)씨가 현대홈쇼핑 생방송 촬영 무대에 올랐다. 나직한 말투가 스튜디오 안을 울렸다. 그녀는 “여러분이 드시는 커피 한 잔으로 네팔 농부의 자녀들이 학교에 가게 됐다”면서 감사 인사를 먼저 전했다.

이날 방송은 공정무역 재단법인인 아름다운커피와 현대홈쇼핑이 ‘세계 빈곤퇴치의날(10월 17일)’을 맞아 특별히 마련한 자리였다. 공정무역커피 생산자가 홈쇼핑에 출연해 직접 제품을 판매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 그 덕분에 4만5000원 상당의 아름다운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은 1시간 만에 무려 623세트(2600만원 상당)가 판매됐다.

“제가 재배한 커피를 한국 분들이 직접 드시는 걸 보니 너무 신기해요.” 방송을 마친 먼두 타파씨의 양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많이 판매한 것도 좋지만, 네팔 사람들의 삶에 커피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릴 수 있어서 흡족하다”고 했다. 먼두 타파씨는 네팔 북부 산간 지역에 위치한 신두팔촉 지역 최초의 커피 농부이자, 네팔에서 마을 최초로 커피협동조합을 구성한 청년 여성이다.

“네팔의 커피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커피를 즐기는 소수의 부자들, 커피 맛도 모른 채 원두를 생산하는 농부들입니다. 저 역시 커피 맛도 몰랐고, 심지어 커피나무를 구별조차 못하는 농부였습니다.”

17세 때 결혼해 신두팔촉 마을에 오게 된 그녀는 시아버지가 가꾸던 텃밭에서 처음으로 커피나무를 접했다. 옥수수, 포도 등과 함께 커피나무 5그루를 키우던 먼두 타파씨는 2005년, 당시 마을에 들어온 스위스 국제개발 NGO ‘헬베타스(Helvetas)’를 만나 커피 생산에 눈을 뜨게 됐다. 당시 네팔은 옥수수·쌀 등의 작물 재배로는 겨우 자급자족할 뿐, 농사를 통해 별도의 수익을 얻기 어려웠다.

반면, 커피는 재배 방법을 익히면 생산을 늘려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환금(換金)성 작물이었던 것. 그녀는 이듬해 아예 NGO 헬베타스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마을 주민에게 커피 생산, 병해충 관리, 유기비료 제작, 공정무역 등 관련 교육을 진행했다. 2006년엔 최하층으로 분류돼 외부 사람들과 말조차 섞지 못하는 산가초 마을에 들어가 3년 동안 커피 재배법을 가르쳤고, 소득이 생긴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1 커피를 생산하기까지는 총 3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네팔 커피 농부들은 커피를 판매한 돈으로 옷을 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2 지난 17일, 네팔 신두팔촉 지역의 먼두 타파 커피협동조합 사무국장이 현대홈쇼핑 방송에 출연해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을 판매하는 모습. /아름다운커피 제공
1 커피를 생산하기까지는 총 3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네팔 커피 농부들은 커피를 판매한 돈으로 옷을 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2 지난 17일, 네팔 신두팔촉 지역의 먼두 타파 커피협동조합 사무국장이 현대홈쇼핑 방송에 출연해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을 판매하는 모습. /아름다운커피 제공

커피 생산은 늘었지만 거래에는 늘 어려움이 많았다. “커피를 팔아도 평균 6개월~1년이 지나서야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간 상인들이 우리가 생산한 커피를 가져가 판매한 뒤 금액의 일부를 나중에 주는 구조이다 보니, 거래가 불안정하죠. 아예 비용을 떼먹고 돌아오지 않는 상인들도 많습니다. 2005년엔 유명 커피회사랑 거래했는데 품질이 좋지 않다면서 가격을 후려치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했죠.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생산자들도 피해를 봤다고 하더군요. 네팔엔 교통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옆 마을의 정보도 교류가 안 돼요. 중간 상인들이 ‘옆 마을에서 25루피에 샀는데, 여기선 26루피에 거래하겠다’며 속이는 등, 열심히 재배해도 손에 쥐는 돈이 적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입니다.”

먼두 타파씨가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신두팔촉 지역 2100가구를 일일이 찾아가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의 개념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커피는 수확까지 3년이 걸리는 작물이라, ‘과연 돈이 되겠느냐’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간 상인들에게 피해를 본 이들 역시 공정한 거래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조합 이름으로 가격을 정하고 거래처를 찾으면, 공정한 가격에 커피를 팔 수 있음을 설득했다. 2100가구 중 580가구가 협동조합에 가입했고, 마침 거래처를 찾던 아름다운커피와 2012년 연결됐다.

“기존 중간 상인들에게 1㎏당 15루피(150원)에 팔았는데, 아름다운커피는 그보다 4배 많은 60루피에 구매해갑니다. 생계비를 고려해 최저보장가격을 보장하고, 협동조합과 마을을 위한 기금, 유기농 원두에 대한 프리미엄까지 붙여주는 것이죠. 아름다운커피가 세계 유기농 인증기관을 연계해준 덕분에 벌써 345가구가 유기농 인증을 받았습니다. 커피를 판매한 즉시 현금으로 주기 때문에 커피 농사를 계획적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커피 맛도, 풍미도 갈수록 좋아지더군요. 농부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옷을 사는 등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지난 7월엔 아름다운커피와 해피머니의 후원으로 마을에 커피중앙가공시설을 지었다. 커피 열매를 커피 생두로 만드는 과정을 단축, 가공하는 시설이다. 커피 열매를 팔면 ㎏당 60루피(600원)이지만, 가공 후 생두를 팔면 ㎏당 700루피(7000원)를 받을 수 있다. 중앙가공시설을 짓기 전 부지가 없어 커피협동조합이 어려움을 겪자, 먼두 타파씨의 시아버지는 본인 소유 땅을 싼값에 내놓기도 했다.

그녀는 “네팔은 일하는 여성을 마을에서 대놓고 험담할 정도로 남아 선호가 강한 나라”라면서, “내가 결혼 후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시부모님이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며 응원해주신 덕분”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먼두 타파씨에게 한국 독자를 향해 한마디를 부탁했다.

“여러분이 드시는 공정무역 커피 한 잔이 네팔 농부들의 삶이자 희망입니다.”

정유진 기자
정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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