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학원도 없던 산골에 무료로 아이 돌봐주는 곳 생겼어요”… 보육 사각지대에 내린 단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생명꿈나무돌봄센터

“가방 빨리 서랍에 정리하고 와. 블록 쌓기 놀이 해야지!”

지난 14일 오후 3시 월악산이 둘러싼 충북 제천 덕산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생명꿈나무돌봄센터’의 문을 연다. 적막하던 센터는 순식간에 25명의 아이가 뛰노는 소리로 시끌시끌해진다.

“자, 오늘은 우리 친구들과 함께 의사 선생님이 사용하는 청진기를 만들려고 해요. 노끈 2개가 있죠? 이 노끈들을 플라스틱 컵 구멍에 넣고 안에서 꽉 묶으면 예쁜 청진기가 된답니다.”

(위)생명꿈나무돌봄센터는 부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야간, 주말, 공휴일 보육 서비스를 편성해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아래)덕산생명꿈나무돌봄센터 앞에 모인 아이들이 줄넘기 활동 시간을 갖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위)생명꿈나무돌봄센터는 부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야간, 주말, 공휴일 보육 서비스를 편성해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아래)덕산생명꿈나무돌봄센터 앞에 모인 아이들이 줄넘기 활동 시간을 갖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이윤희 덕산생명꿈나무돌봄센터장이 나긋한 목소리로 만들기 수업을 시작하자, 50개의 똘망똘망한 눈이 일제히 선생님을 향한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은 뒤 조그만 손을 움직여 청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리가 잘 들려?” “오, 나는 심장 소리 들리는 것 같아.” 몇몇 친구는 청진기를 서로의 가슴에 대고 소리를 듣는 데 열중한다. 인철(5)군은 청진기를 머리에 걸고 “꼬꼬댁 꼬꼬” 닭 흉내를 내며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한 해 2조7360억원의 영·유아 보육료를 집행하는 등 보육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하지만 ‘무상 보육’ ‘초등학교 무상 돌봄교실 확대’ 등의 노력에도 중소 도시나 농어촌 지역은 보육 환경이 턱없이 열악해 보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박민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제공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읍·면 1429곳 중 어린이집이 아예 없는 읍·면은 440곳에 달한다(2012년). 10개 읍·면 중 3곳은 보육 시설이 없는 셈이다. 돌봄 서비스의 질도 불안정하다. 지난 14일 경기도 시흥 시립 어린이집의 교사들이 3세 여아의 귀를 잡아당긴 사실이 적발되는 등 보육 교사들의 자질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류인숙 제천YWCA 사무총장은 “지방의 경우 저소득, 다문화 가정의 보육 수요가 많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이로 인해 아동들은 안전사고나 최악의 경우 성폭행, 살인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0년 4월부터 충북 제천 덕산면과 화산면, 경기 파주와 하남, 강원 동해 등 전국 5개 농·산·어촌 지역에 생명꿈나무돌봄센터를 설립·운영해왔다.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18개 생명보험사가 공동으로 출연한 기금을 활용해 교재 및 교구 구입과 전담 보육사 고용비 등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0원’이다. 부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야간, 주말, 공휴일 보육 서비스를 편성해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지난 4년간 생명꿈나무돌봄센터에서 돌봄을 받은 아이들의 수는 어느덧 9026명이나 된다.

“얼마 전 돌봄센터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댄스 교실을 열었어요. 근데 첫째 아이가 그날 입은 의상이 마음에 든다고 집에 옷을 들고 와서 우리 앞에서 훌라춤을 추더라고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몰라요.” 두 아들 지호(7)·중호(6)군을 돌봄센터에 보내고 있는 임종섭(41)씨의 말이다. 농사일에 매달리느라 양육에 신경 쓰기 힘들었고, 주변에 학원도 없어 아이를 정기적으로 맡길 공간을 찾아 차로 20여분 떨어진 인근 마을의 작은 육아 공동체나 학원,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했던 임씨 부부. 이들에게 돌봄센터는 ‘지역에 찾아온 커다란 선물’이었다. 지호군은 얼마 전부터는 국어 학습지를 돌봄센터에 가져가 보육사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이 동네는 워낙 산골이라 학습지만 배달되고 선생님은 오지 못해요. 궁금한 내용이 있어도 아내나 제가 답해줄 수 없었는데 선생님들이 계셔서 든든하지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보육사들이 만1세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어린이들을 바르게 돌볼 수 있도록 연 4~5회 주기적으로 보육사 교육 및 역량 강화 워크숍도 개최하고 있다. 이윤희 센터장은 “이번 달 초에는 서울로 가서 아이들과 올바르게 상호 작용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시설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신경을 써주는 점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아동들이 소득 수준, 지역에 상관없이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사회의 관심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면서 “재단은 앞으로도 생명보험회사들을 대신해 보육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 강조했다.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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