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자원봉사자들이 지키는 이태원 분향소… 20대부터 60대까지 한마음으로

아침 최저기온 영하 17도의 한파가 닥친 2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3번 출구 인근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이날도 운영 중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조문객은 한 시간에 10명 남짓으로 줄었지만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유족들의 곁을 지켰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이 희생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최지은 기자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이 희생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최지은 기자

녹사평역 분향소는 지난해 12월 14일 조성됐다. 지난해 10월 29일 참사 직후 정부 주도로 시내 곳곳에 마련됐던 분향소와 별개로, 시민들이 유가족 뜻에 따른 진정한 추모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76개 액자에는 희생자의 영정과 이름이 담겨있다. 동의하지 않은 희생자의 액자에는 흰 국화꽃이 그려졌다.

분향소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 금·토요일에는 24시간 운영한다. 이 시간 내내 자원봉사자와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는다. 이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지킴이’라고 부른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 최소 6명이 한 팀을 이뤄 활동한다.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자원봉사자들은 추모 공간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분향소에 조문객이 한창 몰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질서 유지를 위한 안내를 하고, 금세 수북이 쌓이는 헌화용 꽃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추모객은 줄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분향소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헌화 안내, 향 관리, 분향소 청소 등을 맡아서 하고, 때로 분향소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행인이 있으면 막기도 한다. 무엇보다 조문객 발길이 줄어 쓸쓸할 법한 분향소에서 이들은 존재만으로 유족에게 위로가 된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지킴이’라고 부른다. /최지은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지킴이’라고 부른다. /최지은 기자

지킴이 중에는 온라인 블로그나 카페에서 자원봉사자 모집 글을 보고 참여한 사람도, 지역 주민도 있다. 2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봉사를 신청한 이태원 주민 강학원(34)씨는 “동생 같은 아이들이 희생된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당분간 계속 봉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 인권, 종교 등 다양한 분야 시민단체들은 ‘시민대책회의’를 꾸리고 매일 당번을 정해 분향소 봉사를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 서민영(29)씨는 단체 소속으로 4회 지킴이 활동에 참여했다. 서씨는 “피해자들과 또래다보니 유족들이 날 보면 더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유족분들이 먼저 자녀 사진을 보여주고,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아픔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정한 추모기간도, 특수본 수사도 끝났으니 이태원 사건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제대로 책임진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60대 자원봉사자는 “이태원 참사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분향소는 당분간 계속 운영된다. 다음 달 4일에는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광화문 북광장에서 ‘10.29 이태원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린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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