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
“전 세계 시각장애인 인구의 절반이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습니다. 문해율도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점자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보조공학기기 시장도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요. 인도네시아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350만명 정도 되는데 글을 읽고 이해하는 비율은 3%에 불과합니다. 개도국 시각장애인의 교육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탭틸로 키보드’(Taptilo Keyboard)를 개발한 이유죠.”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성동안심상가에서 만난 이경황(43) 오파테크 대표는 탭틸로(Taptilo)와 탭틸로 키보드를 꺼내 들었다. 오파테크는 시각장애인의 점자교육을 돕는 보조공학기기 개발 기업으로 지난 2017년 세계 최초의 스마트 점자 학습기 ‘탭틸로’를 개발했다.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휴대용 기기로 시각장애인 혼자서도 점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런칭 2년 만에 2000대가 팔렸다.
탭틸로 키보드는 탭틸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점자를 입력하면 이를 해석해 일반 문자로 표기한 ‘묵자’로 변환하는 기기다. 오파테크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CTS(혁신적 기술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탭틸로 키보드다. 오파테크는 2020년 CTS를 통해 사업모델 기획 지원(SEED 0)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기술개발 지원(SEED 1)까지 받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맹학교에서 3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2주간 점자 교육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오파테크는 탭틸로 키보드 양산에 집중하면서 본격적인 개도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 맹학교 학생들의 성적 올린 비결은?
-기존 점자교육기기를 보급하면 될텐데 새로운 기기를 개발한 이유가 있나요?
“가격 때문입니다. 탭틸로는 한 대당 1449달러(약 180만원)예요. 탭틸로 키보드는 개도국 시각장애인들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가격을 10%로 줄였어요. 100달러(약 13만원)에 판매할 예정입니다. 무게도 270g으로 탭틸로의 10분 1 수준으로 가볍습니다.”
-무게가 가벼워졌다면 외관에도 차이가 생겼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탭틸로는 점자의 모양(점형)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와 점자 쓰기(점필)를 할 수 있는 파란색 블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에 오돌토돌 올라온 점형을 만져 점자를 읽고, 파란 블록에 있는 점자를 눌러 점필하는 법을 익힐 수 있죠. 탭틸로 키보드는 훨씬 더 간소화됐습니다. 탭틸로가 피아노 건반처럼 생겼다면, 탭틸로 키보드는 노트북 타자판 모양입니다. 점자 표준 규격(2열·3행)에 맞게 타자판에 번호를 매겨 점자를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탭틸로 키보드는 점필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기기네요.
“맞습니다. 탭틸로는 점자를 읽고, 점필하는 법을 익히는 가장 기본적인 점자 학습 기기죠. 탭틸로 키보드는 실제로 점자를 모니터에 입력해 비시각장애인과 소통하고, 간단한 업무까지 할 수 있게 한 기기입니다.”
-학생들이 직접 써본 결과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공립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12주간 탭틸로 키보드를 사용하도록 했죠.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전 평가를 진행했을 때 읽기·쓰기 등을 종합한 평가 점수는 38.2점이었어요. 그런데 12주 동안 탭틸로 키보드를 사용하고 평가를 진행하자 읽기 점수, 쓰기 점수 모두 올라 종합 평균 71.52점으로 집계됐죠. 무려 1.87배 증가한 수준입니다. 탭틸로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읽는 능력도 향상됐다는 거예요.”
-왜 인도네시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나요?
“인도네시아에는 시각장애인 350만명이 있습니다. 국내 시각장애인 수(약 25만명)의 14배에 달하는 수준이죠. 특히 10대 시각장애인 비율은 40%에 이릅니다. 아동·청소년 시각장애인이 많아 점자 교육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양질의 교육을 위한 환경은 구축돼 있지 않죠. 오파테크가 인도네시아의 시각장애인 보조공학기기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TS 삼수생’, 개도국 진출 첫발 떼
-개도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코이카의 CTS를 통해 현지 시장을 조사하고, 로컬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어요. 사실 오파테크는 CTS 삼수생입니다. CTS 사업에 두 번이나 지원했는데 기획안 미흡 등의 이유로 떨어졌어요. 그래서 ‘SEED 0’부터 시작했죠. 개도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고민해볼 수 있었고, 현지 마케팅 방식도 배웠어요. 지난해에는 ‘SEED 1’을 통해 지원비를 받아 탭틸로 키보드를 개발할 수 있었죠.”
-탭틸로는 유럽 국가에서도 잘 팔렸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도국으로 진출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요?
“2017년 탭틸로를 런칭했을 당시 해외에서 많은 러브콜이 왔어요. 미국·영국·독일·포르투갈 등 국가들의 주문이 쇄도하면서 1500대가 팔렸죠. 2018년 매출 1억원을 돌파하고, 2019년에는 5억5000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사업이 계속 확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오파테크의 그래프는 2020년부터 꺾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죠. 탭틸로를 구매하겠다고 나선 국가들이 줄줄이 주문을 취소하거나 연락을 끊었어요. 탭틸로가 대량 보급되는 학교들도 코로나로 문을 닫으면서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개도국 진출로 눈을 돌렸습니다. 오파테크의 원래 목표가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문해율을 1%씩 올리는 기업이 되자는 것이기도 했고요.”
-앞으로의 사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탭틸로 키보드는 3월에 공식 런칭돼 전 세계에 팔릴 예정입니다. 우선은 개도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할 계획이에요. 지금은 인도, 태국 등 동남아 시장과 중국 시장을 메인 타켓으로 설정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탭틸로 키보드에서 더 나아간 기기들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는 게 오파테크의 궁극적인 목표죠. 아울러 소셜벤처가 사회문제 해결과 동시에 비즈니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해보려고 합니다(웃음).”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코이카x더나은미래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