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비영리 MZ 활동가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

‘하루에 전화 50통 맛봐야 했던 사회공헌 담당자 썰’ ‘뜻밖에 반응이 좋았던 비영리사업 홍보 팁’ ‘격무에도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운동’….

‘D.MZ(뎀지)’에서는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주니어 활동가라면 누구든 귀가 솔깃할 이야기들이 오간다. D.MZ는 다음세대재단이 주최하는 MZ세대 공익활동가 모임이다. 비영리 영역의 20·30대 활동가들이 일과 일상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무장 해제’ 될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 비영리의 업무, 워라밸, 인간관계 등 다른 업계 사람에게는 부연 설명이 길어질까 봐 꺼내지 못했던 고민을 나누다 보면,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속 깊은 얘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이자 소중한 동료가 된다.

서울 종로구 동락가에서 열린 '가을밤의 D.MZ' 참가자들. D.MZ는 비영리 조직의 20·30대 주니어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다음세대재단
서울 종로구 동락가에서 열린 ‘가을밤의 D.MZ’ 참가자들. D.MZ는 비영리 조직의 20·30대 주니어 활동가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다음세대재단

D.MZ 공식 모임은 지난 8월 처음 열렸다. 이후 4개월 동안 정규 모임 ‘여름밤의 D.MZ’와 ‘가을밤의 D.MZ’를 비롯해 여러 번의 소모임을 진행했다. 종종 직무별, 연차별 번개(즉석 모임)도 한다. 반응은 뜨겁다. 지난 20일 연 연말파티는 모집 시작 2시간만에 마감될 정도로 신청이 폭주했다. 이수경(26) 다음세대재단 매니저는 “네트워킹에 대한 주니어들의 갈증이 컸던 것 같다”며 “이들이 D.MZ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고 함께 성장하다 보면 비영리 생태계도 튼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난 우리가 통하는 이유

D.MZ에는 ‘비영리’라는 큰 공통점 아래 소속도, 직무도, 활동 영역도 다른 주니어 활동가들이 모인다. 사회복지사, 마케터, 사업 담당자, 디자이너 등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다. 소속도 5인 이하 소규모 조직부터 비교적 규모가 큰 조직까지 다양하다. 이수경 매니저는 “저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비영리 업계에 있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통하는 게 많다”고 했다. “모임을 할 때마다 깜짝 놀라요. 누군가 A만 말해도 나머지가 Z까지 알아듣는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같은 보람을 느끼니까요.”

다음세대재단은 비영리 업계를 떠나는 20·30대 활동가가 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재단은 문제의 원인을 ‘소통 부재’에서 찾았다. 작은 조직은 특히 또래 동료가 적어 주니어가 할 법한 고민을 온전히 나눌 상대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비영리 업계에 중간관리자급 이상의 모임은 꽤 있었지만 주니어 모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니어 활동가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유용했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응원하는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비영리 생태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D.MZ 모임 참가자들이 쓴 한 줄 후기. /다음세대재단
D.MZ 모임 참가자들이 쓴 한 줄 후기. /다음세대재단

실제로 많은 활동가가 업무에 지쳐 있는 상태에서 D.MZ를 찾는다. 정규 모임에서는 활동가 12명이 4주 동안 주 1회 만나 비영리에서 일하는 이유, 활동의 원동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업무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에선 “행정 업무만 반복하다가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느낌과 멀어졌을 때 번아웃이 왔다”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 모든 일을 개척하면서 배워야 할 때 막막하고 힘들었다” “코로나19 처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외부 상황으로 업무가 힘들 때 무력감이 컸다” 등의 의견이 큰 공감을 얻었다. 지난 가을 정규 모임에 참여했던 최승혜(28) 브라이언임팩트 디렉터는 “20·30대 활동가들은 어떤 걸 고민하는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같이 걸어갈 활동가들이 건강하게 일을 지속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지친 5년차, ‘초심’을 찾다

번아웃을 극복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과 유용한 사이트·프로그램을 공유하다보면 다시 힘내서 일할 동력을 찾기도 한다. 올해 5년차인 조유리(31)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주임은 D.MZ에 참여하면서 초심을 떠올렸다. “올해 초에 새 직장으로 이직하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제가 벌써 비영리업계 5년차인데 여전히 많이 부족한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D.MZ에서 열정 있는 동료들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초년생 때의 마음이 생각났어요. 성장과 변화를 만드는 비영리 업계에서 일하는 게 설레고 뿌듯하던 마음이요. 덕분에 방황의 시기도 끝낼 수 있었어요.”

지난 20일 D.MZ 번개 모임 '비영리 활동가들의 연말파티ㄱㄱ(고고)'가 열렸다. 올 한 해 가장 뿌듯했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을 나누고, 2023년 목표를 공유했다. /다음세대재단
지난 20일 D.MZ 번개 모임 ‘비영리 활동가들의 연말파티’가 열렸다. 올 한 해 가장 뿌듯했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을 나누고, 2023년 목표를 공유했다. /다음세대재단

모임이 끝나도 네트워킹은 자발적으로 이어진다. 현재 후속 모임으로 독서모임, 연극·뮤지컬 모임, 연차소진 모임 등이 형성됐다. 종종 번개 모임도 추진된다. 주제는 다양하다. ‘연말파티’ ‘경력 3년 이하 활동가들 맛집 탐방’ ‘소규모 조직 활동가들의 접선’ ‘홍보담당자들 접선 고고’ 등 지난 4달 동안 벌써 6번의 번개가 열렸다. 조형준(33) 사회복지사는 “정규 활동은 끝났지만 일상 소식을 전하고, 가끔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같은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세대재단은 올해 사업 평가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사업을 발전, 진행할 예정이다. 이수경 매니저는 “외로운 주니어 활동가들이 든든한 동료 활동가들을 만나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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