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유럽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화려하고 성대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유럽 거리는 간소한 장식으로 꾸며졌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성탄절’을 보낸다는 취지다.
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헝가리 부다페스트 광장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조명이 켜지는 대형 트리가 들어섰다. 자전거 페달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부다페스트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길거리 조명 장식도 최소화했다. 외르시 게르게이 부다페스트 제2구역청장은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광장을 방문해 트리 불을 밝힌다”면서 “지자체 차원의 이러한 노력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트리의 조명을 밝하기 위해 태양광 패널을 활용했다. 8일(현지 시각)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 시장은 베네치아 광장에 세워진 트리 옆에 대형 태양전지판 2개를 설치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구알티에리 시장은 “트리 옆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일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0kg 이상 줄일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경우 총리실이 지속가능한 성탄절 맞이에 선제로 나섰다. 베를린에 있는 올라프 숄츠 총리 사무실 밖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는 매일 저녁 4시부터 8시까지 4시간 동안만 점등된다. 이 트리에는 에너지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LED(발광다이오드) 전등이 4920개 달려 있어 1시간당 287와트의 전기만 소모하지만,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총리관저뿐 아니라 독일의 랜드마크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 Gate) 앞의 크리스마스트리 역시 하루 6시간만 불이 켜진다. 유럽의 전통 행사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조명을 어둡게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 유독 에너지 절약 관련 조치를 쏟아낸 이유는 극심한 에너지 대란 탓이다. 최근 러시아가 EU 국가들에 공급해 온 석유·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의 천연가스 수입량에서 러시아 공급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5%에 이른다.
프랑스에서는 11월 중하순부터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민간에서는 백화점, 명품 브랜드 등이 종이 등 재활용 재료를 활용해 트리를 제작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친환경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담당 부처는 환경부다. 환경부 기후적응과는 폐지·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일정 시간 동안만 조명을 점등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 밖에 과도한 선물 포장재를 최소화하도록 시민을 대상으로 홍보캠페인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김지수 환경부 기후적응과장은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환경부도 친환경 성탄절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다음 주 중으로 이러한 계획이 담긴 홍보물을 각 지자체에 배부해 시민이 친환경 성탄절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