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조선소 직원들의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
이제는 문화로 정착
경남 거제는 한때 ‘오토바이의 도시’로 불렸다. 출퇴근 시간이면 거리에 오토바이 수천 대가 쏟아져 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지역 경제의 양대 축인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직원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군데군데 좁은 길이 나오는 데다가 넓은 조선소 안에서 건물 사이를 오가려면 기동성 좋은 오토바이가 제격이었다. 하지만 매연이 증가하면서 조선소 인근 공기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조선소 근처에만 가면 기침이 나온다”는 불평도 나왔다.
거리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출퇴근 시간 조선소 앞에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삼성중공업 직원들과 거제시자원봉사센터가 자발적으로 기획한 ‘안녕! 초록 자전거길 캠페인’이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코로나19가 덮친 지난 3년.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진행한 ‘안녕캠페인’이 전국 곳곳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이어진 안녕캠페인은 시민이 주도적으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아내 직접 행동하며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거제 조선소 직원들의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을 비롯해 전국에서 총 180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참여한 시민은 77만5966명, 협력한 기관·단체는 3483개에 달한다.
지역 주민 20명이 시작한 캠페인, 3800명이 응답했다
“캠페인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어요.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어떡하나 부담도 컸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어요.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마치고 나니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삼성중공업에 다니는 전유현(50)씨는 거제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안녕! 초록 자전거길 캠페인’을 진행했다. 평소에도 여러 사내 봉사단에 참여할 정도로 공익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캠페인을 기획한 건 처음이었다.
“어느 날 쓰레기 줍는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봉사하던 사람들이 자꾸 기침을 했어요. 오토바이 매연 때문에 공기가 너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퇴근할 때 자전거를 타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마침 거제시자원봉사센터에서 ‘안녕캠페인’을 한다고 하길래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죠.”
전유현씨를 비롯한 삼성중공업 직원 20여 명이 주축이 돼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는 문화를 퍼뜨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동료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겠다’는 서명을 받기로 했다. 각 부서를 돌면서 자전거를 왜 타야 하는지, 환경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명했다. 한 달 만에 직원 400명의 서명을 받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했다. 더 많은 직원이 ‘캠페이너’로 합류했다. 조선소 출입구 4곳으로 각자 흩어져 퇴근 시간에 맞춰 피켓을 들고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외쳤다. 전유현씨는 “모두가 문제라고 느꼈지만 해결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면서 “게다가 같은 작업복을 입은 동료들이 ‘바꿔보자’고 이야기하니 공감대가 더 빠르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협력 범위는 더 넓어졌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거제 시민들을 위한 ‘자전거 타기 강습’도 마련됐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자전거 수업을 할 수 있는 넓은 장소를, 거제시체육회는 강사와 자전거 보험료를 지원했다. 지역 농협에서는 자전거, 헬멧 등 장비를 제공했다.
대우조선해양 직원들도 거제시자원봉사센터에 캠페인을 같이 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자원봉사센터에서는 학생이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도 환경 교육, 페스티벌 등을 진행하며 자전거 타기를 독려했다. 총 26곳의 비영리단체와 공공기관, 기업, 학교가 캠페인에 참여했다.
올해 캠페인의 참여 인원만 3768명. 캠페인 기간은 끝났지만 지금도 자전거 출퇴근은 계속되고 있다. 최혜선 거제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이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활동을 했다”면서 “이번에는 주민이 직접 캠페인을 만들다 보니 더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었고 봉사 활동의 효과와 파급력도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이 만든 180개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
안녕캠페인은 자원봉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기획됐다. 조봉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팀장은 “자원봉사는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활동, 자원봉사자는 ‘동원’되는 사람이라는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사회 활동으로서 자원봉사를 알리기 위해 ‘주도성’ ‘협력성’ ‘변화 지향성’ 등 세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안녕캠페인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3년간 진행된 180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기후변화, 쓰레기 무단 투기, 일회용품 사용 증가 등 환경 관련 프로젝트가 가장 많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절과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됐다. 조봉실 팀장은 “시민들이 평소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역사회 이슈를 이웃과 함께 해결해보면서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느끼기를 바랐다”면서 “이런 경험을 한 시민들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녕캠페인 3년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전국 51개 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된 캠페인의 환경적·사회적·경제적 임팩트를 분석 중이다. 자원봉사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지난해 개발한 ‘V-ESG(자원봉사 사회성과 측정 지표)’ 지표를 통해 임팩트를 수치화해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플로깅을 했다면, 몇 ㎞를 뛰면서 몇 ㎏의 쓰레기를 주웠는지 측정해 이로 인해 줄어든 온실가스의 양을 계산하는 식이다. 자원봉사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모여 얼마나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숫자로 입증할 수 있다.
자원봉사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안녕캠페인 대표 사례 세 가지를 분석한 결과 평균 SROI(사회적투자수익률)는 226%였다. 자원봉사 사업이 투입 예산의 2배가 넘는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거제시 ‘안녕! 초록 자전거길 캠페인’의 SROI는 363%였다. 투입 예산(500만원)의 3배가 넘는 경제적 가치가 창출됐다.
윤순화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사무처장은 “제도나 법, 정책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나서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안녕캠페인이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앞으로도 지역 단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