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사벨(Isabel). 아프리카 남동부의 작은 나라 ‘말라위’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의 하루 수입은 1.5달러였다. 하루 한 끼 식사만 가능할 정도로 가난했고 제대로 된 집도 없었다. 여동생이 둘 태어났고, 남동생도 하나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항상 굶주렸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똑똑한 편이었지만 영양실조 때문에 허약했고 자주 아팠다. 결국 8살에 학교를 그만뒀다. 셋째 여동생은 6살이 되던 해에 감염병에 걸려 죽었다. 나는 동생이 눈을 감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국을 방문한 파라그 만키카(Parag Mankeekar) 박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리얼라이브즈(RealLives)’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든 인도의 사회적기업가다.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랜덤 인생 살아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나이가 ‘0세’로 설정된 아바타가 생성된다. 출생 국가, 도시, 성별 등은 무작위로 정해진다. 선진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날지, 아프리카 최빈국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날지는 알 수 없다. 유엔(UN)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발표한 100여 개 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게임을 제작했기 때문에 전 세계 각국의 삶을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그 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나 갈등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게임 안에서 자꾸만 벌어진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태어난 경우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로부터 ‘마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기 시작한다. 거절해도 제안은 계속된다.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말이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재난이 잦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피해를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공중보건이 열악한 나라에서 태어나면 두 살에 병에 걸려 죽는다. 현실은 어떨까. 게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게임을 통해서라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자. 그것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파라그 박사가 말했다.
돈 주고 게임을 산 건 처음이었다. 11달러를 결제한 뒤 ‘살아보기’ 버튼을 눌렀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아이로 태어날까 궁금했다. 내 이름은 이사벨. 말라위에서 태어난 나는 늘 배가 고팠고 몸이 아팠다. 내 동생이 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죽었다. 내 나이 열 살. 영양실조로 인한 합병증이 원인이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