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
지난달 초 서울에서 블록체인을 주제로 열린 국제 행사의 개회사 무대에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이 섰다. 웹 3.0, 대체불가토큰(NFT), 메타버스 등 관련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블록체인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산업의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였다. 블록체인 전문가도 아닌 국제구호개발 NGO의 수장이 초청된 이유는 뭘까.
“초청장을 받았을 때 곧바로 납득되진 않았어요. 월드비전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모금 활동에 도입하고 있지만, 기술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주최 측에 물었어요. 돌아온 대답이 ‘정부나 기업에서 블록체인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적용에는 주저하는데, 구호단체에서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을 만들고 가상 자산으로 기부도 받는 모습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만난 조명환 회장은 블록체인으로 변화할 모금 시장의 미래에 기대가 컸다. 그는 “블록체인과 가상 자산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장기 트렌드로 봐야 한다”며 “블록체인에 기록된 기부 관련 데이터는 수정이나 삭제가 불가능하고, 기부자들은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을 만들어 직접 캠페인을 기획하고 의사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국제구호개발 NGO 중 블록체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최초 수식어가 많다. 지난 2020년에는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베이크(Vake)’를 구축해 개인이나 단체 구분 없이 누구나 캠페인을 기획하고 참여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올해 9월에는 국내 최초로 NGO와 금융·기술을 융합한 기부펀드 플랫폼 ‘드림버튼’을 구축했다. 후원금으로 펀드를 조성해 수익금을 사용하고, 블록체인 원장에 기록된 후원 내역을 후원자들에게 NFT로 발급하는 방식이다. 같은 달 가상 자산 이더리움으로 기부금을 받고 NFT로 후원 증서를 발급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조명환 회장이 말하는 블록체인과 NGO의 연결고리는 투명성이다. 그는 “NGO의 생명은 기부 투명성에 있고, 기부자들도 이 지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며 “모금 단체의 영원한 숙제인 이 문제를 블록체인이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도 개인이 모금 캠페인을 기획할 수 있지만 막상 기부자들이 주저하게 되는 건 투명성에 대한 우려죠. 진정성이 있어도 보증되지 않으면 모금 문화는 확산하기 어렵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는 개인이나 기관도 블록체인으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모금할 수 있는 플랫폼이 ‘베이크’입니다.”
월드비전은 내년 초에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달게 된다. 사내에서 육성된 ‘베이크’를 오픈 이노베이션 파트너인 ‘캔랩코리아’’위브’와 함께 조인트벤처(JV) 형태로 독립 분사할 예정이다. 국내 NGO로는 최초의 사례다. 조명환 회장은 “어떤 기업이나 단체가 베이크 안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중을 만나 새로운 방식의 캠페인, 모금을 넘어서 사람과 정보의 연결 등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비즈니스 영역에서 효율을 낮추는 수많은 ‘시장에서의 마찰’ (market friction)을 제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모금시장에 적용하는 단계죠. 전통적으로 비영리는 영리에 비해 새로운 기술 도입에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왔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전 세계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여러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융합하면서 사회의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겠습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