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새벽 6시쯤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했다. SPC그룹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빵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배합기에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졌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2주마다 주간과 야간을 바꾸어 12시간씩 일했다. 회사는 사건 다음 날 사고 난 기계에 흰 천을 덮어놓고 작업을 하게 했다. 장례식장 빈소에는 크림빵 두 상자를 보냈다.
그녀는 시간당 14센트를 받았다. 나이키 인도네시아 하청공장에서 일했다. 1992년 미국 잡지에 그녀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150달러짜리 신발을 만드는 그녀는 맨발로 미국 시급의 50분의 1을 받고 일했다. 나이키는 항변했다. 신발생산을 위탁한 별개의 회사라고, 그래서 근로조건에 관여할 수 없다고. 게다가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을 상회하고 다른 곳보다는 조건이 좋다고도 했다. 원가를 절감해 최대이윤을 얻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면 나이키의 항변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열두살이었다. 1996년 미국 ‘라이프’지에는 그가 나이키 축구공에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렸다. 그는 시급 6센트, 일당 60센트를 받았다. 나이키가 아동노동에 연루되었다는 거센 비난이 일어났다. 나이키는 여전히 억울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 항변했다.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하여 생산하는 OEM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 나이키의 주가는 13% 하락했고,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노동착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듬해인 1997년, 나이키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나이키 CEO는 1998년 5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나이키 제품은 노예 임금, 초과근로 강제, 자의적 학대와 동의어가 되었다. 나는 소비자가 학대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사고 싶지 않다고 믿는다.” 이후 나이키는 노동인권을 향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이키 생산 노동자의 최소연령을 올리고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모든 공장에서 미국의 청정 공기표준을 채택하고, 노동자 교육복지정책을 펼 것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발 제조의 요소까지 변경했다. 1998년 나이키는 기업책임부서(Corporate Responsibility department)를 설립했고, 1999년 공정노동협회(Fair Labor Association)에 창립 멤버로 가입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문제가 있는 하청공장을 대상으로 약 600건의 공장 감사를 실시했다. 2005년에는 나이키가 계약을 맺고 있는 전체 공장의 상세 정보를 공개했다(Nike Manufacturing Map). 업계 최초의 일이었다. 인권침해의 오명을 쓴 나이키는 이제 인권경영을 실천하는 선구적인 기업이 되었다.
국제사회는 UN 차원의 대응을 시작했다. 2000년 ‘다국적기업을 위한 OECD 가이드라인’에 인권이 포함되었다. 2005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2011년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이 유엔 인권이사회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s). 이행원칙에서는 보호, 존중, 구제라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하였다. 국가는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으며,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실사의 개념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국제규범은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연성규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SG가 국제적인 흐름이 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을 법제화하고, 인권실사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차례로 만들어졌다(2017년 프랑스 실사의무화법, 2019년 네덜란드 아동노동실사법, 2021년 노르웨이 투명성법, 독일 공급망 기업실사법, 2022년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 일본 공급망 인권존중지침). 외국에서 시작된 의무화의 물결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강행법은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을, 법무부가 기업과 인권 길라잡이를 만들었다.
한국기업들도 인권경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대부분 인권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을 내재화한 기업은 많지 않다. 인권부서를 두고 있는 회사도 드물다. 인권전문가를 영입해 인권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인권실사는 아직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인권영향평가도 마찬가지다. 영향평가를 하더라도 아동노동, 강제노동, 결사의 자유 등 중요사항만 체크리스트로 확인하는 수준이다. 인권단체 또는 인권실사 전문법인을 통한 평가를 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인권의 관점에서 공급망을 선택하고, 관리하고, 지원하는 경우도 적다. 인권경영보고서를 내는 회사는 한두 곳에 불과하다. 사회공헌활동은 많지만 지역사회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려는 참여나 기부는 거의 찾기 어렵다.
기업은 사람으로 구성되고 사람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고, 사람의 권리는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엔 사람이 몰리고 로열티를 가지게 된다. 사람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근로자도 떠나고 소비자도 외면하게 된다. 인권은 이제 통상문제가 되고, 투자자 및 소비자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되고 있다. 치열하게 인권을 고민하고, 진심으로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기업이 많아지길 바란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