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대학병원 보조기실에 종종 갔다. 휠체어를 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척추 휘어짐과 발 모양의 변형을 막는 보조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의족, 의수 등 다양한 보조기 샘플이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무늬로 꾸며진 보조기가 가장 눈을 사로잡았다. 아동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분홍꽃이 가득 그려진 디자인을 선택했었다. 이후 여러 번 보조기를 바꾸면서 그 모양새는 단조로워졌다. 휠체어도 여러 번 바꿨지만 꾸민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더 이상 보조기에 무늬가 들어가지 않았고, 하루 24시간 함께 하는 휠체어와 보조기를 스스로 꾸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과 팀 개굴이 함께 한 ‘휠체어 위의 우리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동 청소년들이 직접 휠체어 스포크가드(휠체어 바퀴살 위에 씌워 손 끼임을 방지하는 얇은 판 형태 부속품), 가드와 어울리는 등받이 디자인을 구상하고 꾸미고, 그 휠체어 모델이 되는 뜻깊은 경험이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하늘색과 체커보드 무늬, 스티커 등을 이용해 나름 ‘힙하게’ 꾸몄다. 두 달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동안 잊고 살던 꾸미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직접 꾸미기를 한 뿌듯함은 덤이다.
이번 프로젝트 이후 내게 가장 큰 변화는 휠체어를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흔히 휠체어는 장애인의 몸 일부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휠체어를 험하게 타서 흠집도 나고 고장도 여러 번 났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꾸미고 난 뒤부터는 애착을 가지게 되어 더 조심해 휠체어를 사용하게 됐다. 더불어 휠체어가 내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평소 옷과 악세서리를 비슷하게 맞춰 코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 그 범주에 휠체어도 포함된 것이다. 만약 여러 개의 스포크가드가 있었다면, 외출할 때마다 매번 옷장에서 옷을 고르듯 가드를 골라 장착하고 나갔을 지도 모른다.
외부에서 느낀 변화도 있다. 휠체어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 달라졌다. 휠체어를 탄 나를 본 과거 비장애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어린 나이에 휠체어를 타다니 불쌍하기도 하지.” “이 휠체어 어디서 샀어요? 얼마예요?” 하지만 ’휠체어 꾸미기‘(휠꾸) 후엔 그런 질문 대신 남녀노소 불문 휠체어가 예쁘다고 말한다. 휠체어를 꾸몄을 뿐인데 이렇게 첫 한 마디가 바뀌다니, 새삼 ‘꾸미기의 중요성’을 느꼈다.
프로젝트 후 정보를 찾아보다가 이지휠스, 야마하와 같이 여러 종류의 디자인 스포크 가드 제작 업체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요자가 많지 않아 가격이 높다. 이지휠스의 경우 개당 가격이 20만원 선으로 선뜻 구입하긴 힘들다. 하지만 ‘휠꾸’의 즐거움과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 변화를 알게 된 이상, 다른 휠체어 사용자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COC(Circle Of Change)’ 사업을 알게 되었다. 청년 디자이너들이 만든 스포크가드를 지역 내 휠체어 이용 아동,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다. 비록 지금은 폐지된 프로젝트지만, 취지와 성과가 매우 좋은 프로젝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개인 휠체어를 꾸미는 것도 물론 의미있지만 개인적으로 사기엔 금액이 부담된다. 그렇다면 병원과 치료 시설에서 사용하는 휠체어를 꾸민다면 타는 이들에겐 즐거움을 선사하고 바라보는 이들에겐 휠체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렇게 여러 종류의 ‘휠꾸’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일상 속의 휠체어들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한다.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