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헌재 대심판정에 등장한 ‘쇠창살 그림’… 어린이 구금하는 출입국관리법 위헌성 공개변론

“외국인보호소에 있었던 아동들이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엔 나무도, 하늘도, 꽃도 없습니다. 쇠창살과 한 방에 가둬진 여러 사람의 모습밖에 없습니다.”(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던 아동들이 그린 그림. 쇠창살에 갇힌 5~6명의 사람과 공용으로 쓰는 변기가 그려져있다. /사단법인 두루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 쇠창살에 갇힌 사람들과 공용 변기 등이 묘사돼 있다. /사단법인 두루

13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대형 스크린에 3장의 그림이 걸렸다. 헌법재판관 9명과 방청석을 메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림으로 쏠렸다. 그림에는 어두운 표정을 한 다섯명의 사람들이 쇠창살 안에 갇혀 있고, 바깥에서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스크린에 이 그림을 띄운 최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이하 외국인보호제도)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 변론을 열었다. 헌법에 위반되는지 살피기에 앞서 참고인들의 진술을 직접 듣겠다는 취지다.

해당 조항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본국으로 즉시 송환할 수 없을 때 보호시설에 머무르게 규정하고 있다. 법 규정에 예외를 두지 않고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보호 대상자로 정하면서 아동·임산부·장애인도 보호시설에 수용될 수 있다는 게 쟁점이다.

외국인보호제도가 헌재 위헌심판에 오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헌법소원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째다. 지난 2012년 김종철 변호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은 ‘청구인이 이미 보호소 밖으로 풀려났다’라는 이유로 각하됐고, 2016년과 2018년에도 모두 합헌 결정이 나왔다.

헌재가 변호인단과 법무부 관계자의 입장을 직접 청취하기 위해 공개 변론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변호인단으로는 이상현·이한재·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가 출석했고, 법무부 측은 서규영·류태경 정부법무공단 국가소송팀 변호사와 김완기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민조사과장이 참고인으로 나섰다.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 위헌제청사건 공개변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 위헌제청사건 공개변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위헌제청 사건의 당사자인 이집트 출신 A씨도 이날 방청석에 앉았다. A씨는 만17살이던 지난 2018년 보호자 없이 홀로 입국해 난민 인정을 받으려고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방문했다. 하지만 ‘어른을 데려와야 한다’는 안내만 받고 끝내 난민 신청을 하지 못했다. 이후 수원출입국·외국인청에 단속돼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화성인외국인보호소로 옮겨진 A씨는 33.1㎡(약 10평) 안팎의 공간에서 성인 남성 25명과 함께 한 달간 지냈다. A씨는 2019년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을 취소하는 소를 제기했고 수원지방법원은 과잉금지원칙 위배, 적법절차 원칙 위반 등의 이유로 위헌제청을 결정했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 첫 진술은 최초록 변호사가 맡았다.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을 문제점으로 짚고, 보호소에 수용된 만4세 아동의 사례를 들어 ‘아동학대’를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하루에 한 번 주어지는 30분 운동 시간 때마다 아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직원에게 매달려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보호소에서 나왔지만, 혼자 악몽을 꾸면서 깨거나 바지에 배변하는 등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무차별적인 외국인보호제도는 명백한 아동학대이자 유엔아동권리협약 위반”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측은 미성년자가 보호소에 가지 않으면 오히려 범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서규영 변호사는 “외국인 미성년자는 주거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보호소에서 내보내지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미성년자는 직장에 다니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10월 2일 기준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외국인 미성년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이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선 “국회에서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아 이 제도가 심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진술을 들은 헌법재판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일 변호사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심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있어 협약도 헌법 심사의 잣대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유엔인권협약이 아동 인권 침해 여부를 가리는 세계의 기준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답했다.

재판관은 법무부 측에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 중 보호소에서 생활하지 않는 경우가 있느냐’고 물었다. 김완기 과장은 “사안에 따라 보호할만한 사정이 없다고 인정되면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호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던 것이 맞느냐’라는 질문엔 “통계상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내부적으로 어떤 경우에 비보호 결정을 하는지 지침이 마련돼 있느냐’라는 물음에도 “일반적인 기준을 정한 지침은 없다”고 했다.

헌재는 ‘최종 선고는 기일을 잡아 다음에 하겠다’며 공개 변론을 마쳤다. 2018년엔 재판관 5명이 위헌의견을 냈지만, 정족수 1명이 부족해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이진성, 김이수, 강일원, 이선애, 유남석 재판관은 “외국인보호제도는 보호기간의 상한이 없어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무기한 보호를 가능하게 해 난민 신청자의 신체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제도는 형사절차상 ‘체포 또는 구속’에 준하기 때문에 적어도 인신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 퇴거 심사를 위해 외국인을 구금할 땐 모두 법관의 영장을 발부받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이 제도에 관해 처음 공개 변론이 열리기도 했고, 2018년에 5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낸 만큼 이번엔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백지원 더나은미래 기자 100g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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