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재밌는 성교육’을 합니다”

[인터뷰] 성문화연구소 ‘라라스쿨’

성교육 ‘사각지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성문화연구소 ‘라라스쿨’의 구성원이다. ‘성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 하에 연령,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나 양질의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라라스쿨은 유네스코가 규정한 ‘포괄적 성교육’을 지향한다. 기존의 성교육이 성별의 생물학적 특징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포괄적 성교육은 모든 사람이 주체성을 갖고 평등에 기반한 성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기반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성교육과 배리어프리 성교육 교구를 개발한다.

성문화연구소 ‘라라스쿨‘은 ‘성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 하에 연령,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나 양질의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7월 11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라라스쿨 구성원들을 만났다. /최다희 청년기자
성문화연구소 ‘라라스쿨‘은 ‘성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 하에 연령,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나 양질의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7월 11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라라스쿨 구성원들을 만났다. /최다희 청년기자

지난 7월 11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성문화연구소 ‘라라스쿨’ 구성원을 만났다. 이수지(30)·노하연(31) 공동대표와 콘텐츠팀의 고지선(28)·손세희(23)씨, 업무지원팀의 이은솔(34)씨가 모였다.

성교육은 ‘평생 교육’

-라라스쿨을 창립한 계기는?

이수지=노하연 공동대표와 성교육 강사로 일하다 만났다. 강사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성교육이 청소년에게 집중돼 있다고 느꼈다. 그마저도 청소년기의 발달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생애주기에 따라 즐겁게 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노하연=성교육이라고 말하면 흔히 10대 청소년을 떠올린다. 성교육은 전 생애에 걸쳐서 이뤄져야 한다. 라라스쿨은 2017년엔 유아동 성교육을 주력으로 했지만, 이후 성인으로까지 교육 대상을 확대하면서 터부시 됐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했다. 갱년기 여성이 이 시기 자신의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돌볼 수 있도록 돕는 ‘완경파티’, 평등하고 건강한 성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섹스 살롱’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존 성교육에서 어떤 점이 터부시 됐나?

이수지=남성 신체에 비해 여성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터부시 됐다고 생각한다. 보건 교과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음순’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여성 성기는 단순하지 않다. 기존의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을 중심으로 내부 성기인 포궁(자궁)만을 다뤄온 경향이 있다. 난소, 포궁, 질구까지 부분이 꼼꼼히 다뤄지지 않으니 여성들 스스로도 몸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라라스쿨의 포괄적 성교육은 무엇인가?

이수지=라라스쿨 성교육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가진 성적 권리를 어떻게 잘 행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단순히 성기가 어떻게 생겼고 성관계가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타인의 경계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성 건강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을 성적 권리를 갖춘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하게 된다.

노하연=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도 중요한 주제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학생이 입어야 할 브래지어 색상까지 정해놓았다. 속옷이 교복에 비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 문득 ‘그냥 교복을 어두운 색으로 만들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이런 질문을 공유한다. 내 주변에 어떤 성차별이 있는지, 성적 권리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지. 질문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자신의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장애 성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나?

이수지=장애인 학교 혹은 장애인 기관에서 오히려 성교육을 더 많이 한다. 따로 마련된 예산이나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성교육에서는 장애인 행동을 통제하거나 금지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라라스쿨에서는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교구와 활동지를 개발하는 데 신경을 썼다. 특수학교 학생들의 발달 유형과 장애 유형은 천차만별이다. 이에 같은 내용이더라도 소근육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활동지 내용을 달리 구성했다. 장애 성교육은 5~10회에 걸쳐 진행된다. 교육 초반엔 장애인에게 어떤 성적 권리가 있는지, 그 권리를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번은 경계성 지능장애를 지닌 수강생이 지금까지는 장애인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한 성교육만 주로 들어왔는데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해주는 성교육을 받아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는 후기를 전달해줬다.

라라스쿨 구성원들은 “우리는 재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며 “‘재미없었다’라는 다섯 음절의 후기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재밌어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교육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다희 청년기자
라라스쿨 구성원들은 “우리는 재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며 “‘재미없었다’라는 다섯 음절의 후기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재밌어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교육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다희 청년기자

시각장애인이 ‘포궁’을 배우는 법

-배리어프리 교구를 직접 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하연=현장에서 특수 성교육 교구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다. 통합 교구의 경우 4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라라스쿨에서는 교구 가격을 70만원대로 정했다. 교구 판매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다. 그러나 특수학급 교사가 쉽게 교구를 구입해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또 수도권에 비해 성교육 접근성이 낮은 지방이나 도서 산간 지역으로의 보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직접 개발했다.

-현장 반응은 어떤가?

고지선=시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쉬는 시간이 끝나 교실로 돌아왔는데 한 아동이 분리된 교구를 조립해 포궁을 완성한 뒤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교구 덕분에 입체적인 성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온라인 수업에서 만났던 친구도 기억이 난다. 사춘기를 주제로 성교육을 진행했는데 수업이 끝난 뒤 “덕분에 사춘기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런 교육 꼭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육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이수지=학생들 만족도는 매우 높다. 그런데 교사나 양육자 분들이 “아이들이 이런 거 알아도 괜찮나?” 염려한다. 부모 세대가 오늘날과 같은 성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교육 전에 “수업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도 있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주체성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이런 거 알게 됐다가 임신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교육은 문제를 가속화 하는 게 아니다. 당장 사회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늘 해결책으로 성교육이 제시되지 않는가. 좋은 성교육은 발달 단계에 맞춰 자연스럽게 생기는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삶 속에서 필요한 지식을 적절히 채워준다. 라라스쿨은 양육자 교육을 통해 가정에서도 포괄적 성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

노하연=우리는 재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재미없었다’라는 다섯 음절의 후기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재밌어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교육을 하려고 한다.

이수지=돈도 많이 벌고 싶다(웃음). 라라스쿨에 열여섯 명의 위촉강사가 있는데 대부분 경력단절여성이다. 라라스쿨을 만나 육아와 출산으로 중단됐던 경력을 다시 이어나가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분들이 강사 일을 부업이 아닌 생업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라라스쿨의 사업을 더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최다희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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