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재원 인수마을밥상 대표
‘이 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온 생명 기운 깃든 밥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천천히 온 마음으로 먹고 서로 살리는 밥으로 살겠습니다.’
서울 강북구 인수동에 있는 마을공동체 ‘밝은누리’가 운영하는 식당 ‘인수마을밥상’에 걸려 있는 글귀다. 인수마을밥상은 25년 전 육아 품앗이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하던 데서 시작됐다. 부모와 아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이웃 주민들도 함께 어울려 밥을 나누던 중, 2010년 3월 한 청년이 마을밥상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인수동 주민들과 북한산 등산객, 인근 공사장 작업자들에게도 열린 지금의 마을밥상이 됐다.
지난 7월 21일 만난 임재원(47) 인수마을밥상 대표는 “마을밥상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서로 일상을 나누고 안부를 살피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 했다.
연대와 순환, 마을밥상의 운영 비결
인수마을밥상은 평일 점심과 저녁마다 열린다. 한 끼 가격은 5500원. 차림은 현미잡곡밥과 김치를 기본으로 국과 반찬 2종류는 끼니마다 달라진다. 마을밥상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주로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구한다. 농부들로부터 얻은 유기농 제철 채소도 쓰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예전처럼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진 않는다. 각자 챙겨온 그릇에 음식을 담아 집으로 가져간다. 이러한 상황에도 외부 지원금이나 후원 없이 자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달 치 식권을 미리 구매하는 ‘달밥’ 회원제와 급여를 받지 않고 일손을 보태는 ‘지킴이’ 문화 덕분이다. 꾸준히 달밥을 등록하는 사람과 단골 주민을 합쳐 한 끼 평균 80명이 마을밥상을 찾는다. 인건비를 받고 일하는 ‘밥상지기’는 6명이다. 이외에 주 1회 출근 시간을 조정해 같이 점심을 준비하는 지킴이와 월 1회씩 퇴근 후 마감 청소를 돕는 지킴이도 있다. 임재원 대표는 “노동을 돈으로만 환산하지 않고 일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여러 손길이 마을밥상을 지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마을밥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순환’이다. 마을밥상에서 남은 음식물, 이른바 ‘밥상 부산물’을 근처 강북마을텃밭으로 보내 퇴비로 쓰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 퇴비를 활용해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마을밥상에 가져다준다. 주 1회 두부를 납품받을 때는 일회용 포장재 대신 스테인리스 다회용기를 사용한다. 두부 배달 기사에게 빈 다회용기를 전달하면 다음 주에 납품될 두부가 그 통에 담겨 오는 방식이다.
건강한 먹거리, 소비보다 생산이 근본
“쉽게 먹고 쓰고 버리는 사이에 순환이 막혔는데 어디에서 건강한 음식을 구할 수 있을까요? 소비보다 생산이 근본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생산의 바탕은 흙입니다. 흙은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생명을 낳습니다. 작물을 키우는 일뿐 아니라 아이를 기르고 식구를 살리는 ‘농사, 육아, 살림’ 노동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생산의 가치에 눈 뜨니, 모든 생명이 순환으로 이어져야 기후위기도 극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임 대표는 자연의 흐름보다 인간의 욕망이 앞서는 한국의 식(食)문화를 꼬집었다. 그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비의 양이 많아지면서 기후위기가 심각해졌다”면서 “절기마다 밥상에 올라오는 재료가 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데 절기와 상관없이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했다.
임재원 대표는 3년 전 대표직을 맡았다. 20대 때는 영화계에서 조감독을 했다.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나름 애쓰고 살았지만 가부장제와 가족주의를 혼자서 대항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아이들에게 당당히 물려줄 무언가가 남아있을까?’라는 불안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고민 끝에 2013년 마을공동체 밝은누리가 있는 인수동으로 이사 왔고 그렇게 인수마을밥상을 만났다.
“하루 세끼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다가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마주했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고 온 마을에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고 생기를 되찾았거든요. 2014년부터는 밥상지기를 제안받아 마음밥상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차림이 조금 아쉬운 날에도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며 우리의 수고를 고맙게 여겨줬고, 저 역시 수십 명이 먹는 밥을 직접 차릴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서로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마을밥상을 함께 일구다가 어느새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가 됐습니다.”
인수마을밥상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임 대표는 “살림 노동에 전혀 익숙지 않았던 마을 동생이 입대 전 넉 달 동안 마을밥상에서 일하며 깨달은 바를 편지로 전해준 일”을 꼽았다. 현재 그 청년은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마을밥상의 부산물을 흙으로 되돌려주는 일을 꾸준히 맡고 있다.
“밥을 소비하는 문화에 익숙했던 많은 사람이 마을밥상을 통해 밥에 대해 새롭게 경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밥 앞에서 누구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
이수연 청년기자(청세담1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