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력 중 여성 비율 19%. 관리직은 32%, 이사진 50%. 영국 물류회사인 ‘로열 메일(Royal Mail)’의 다양성 보고를 살펴보면, 직위가 높을수록 여성 인력 비율이 높다. 흑인과 아시안 등 소수인종의 비율은 14%. 장애인 비율은 놀랍게도 13%다. 성 소수자(LGBT+) 부문 통계를 보면 트랜스젠더 1%, 레즈비언, 게이 등은 5%다. 연령대로 따지면 50세 이상이 48%나 된다. 이밖에 부양책임을 가진 사람의 통계를 내는 것도 신선하다.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이 28%, 그 밖의 부양책임을 지는 사람은 9%다.
한국 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은 ‘다양성’ 관련하여 여성과 장애인, 연령 정도를 언급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이나 성 소수자 부분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라고 성 소수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감히 드러낼 수 없다. 성 소수자 통계를 내는 것조차 차별적이라 느낄 것이다. 구글코리아 같은 외국계 기업이 성 소수자 지지모임을 만들고 퀴어 행사를 공개 지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 소수자 이슈를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구글코리아 임원이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인종 다양성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일민족은 허구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순혈주의를,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을 낳는다. 글로벌 기업이 된 대기업이라면 다양한 나라의 구성원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직원 비율을 공개하는 기업은 없고, 실제 외국인 직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비율은 알려졌듯이 최하위권이다. 최근 딜로이트 글로벌이 밝힌 조사결과에서 한국의 여성 임원비율은 세계 72개국 중 네 번째로 낮았다. 중동국가를 제외하고는 꼴찌다.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세계 평균이 19.7%였는데 한국은 4.2%에 불과했다. 최근 여성 이사를 1인 이상 두도록 법률상 의무화되었지만 2조 이상 상장기업에만 적용된다. 여성 이사를 두는 건 쉽지만 관리직 중 여성 비율을 높이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장애인 비율은 어떠한가? 한국은 장애인 고용의무를 법률로 부과하고 있는데(민간기업의 경우 3.1%) 이를 지키는 기업은 많지 않다. 위반하는 기업이 내는 고용부담금 총액은 지난해 7000억원을 넘었다. 그나마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도 자회사(장애인 표준사업장)를 만들어 따로 장애인을 고용한다.
다양성, 형평성과 포용성(Diversity, Equity & Inclusion)은 ESG의 핵심 주제다.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살펴본 것처럼 한국 기업의 DE&I는 점수는 최하위권이다.
다양성은 ‘다름의 존재’를 말한다. 성별, 인종, 민족, 연령, 종교, 장애, 성적 지향과 정체성, 사회경제적 지위, 학력과 학교, 결혼 여부 등에서 다양성이 존재하여야 한다. 특히 과소대표된 소수자의 존재는 다양성의 핵심적 징표이다.
형평성은 ‘차별을 금지하고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실질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절차와 시스템의 공정이 요구된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은 ‘형식적 평등’을, 오른쪽은 ‘실질적 평등’을 보여주고 있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높은 받침대를 제공하면 과일을 딸 수 있다. 장애인도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면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 아이를 돌볼 책임이 엄마에게만 주어지지 않는다면 출산한 여성도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
포용성은 ‘다양한 사람이 완전히 섞이는 것’을 말한다. 포용성은 다양한 사람이 배제되거나(exclusion), 형식으로 통합되는 것(integration)이 아니라,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환영받고 존중받으며 소속감을 가지는 것(inclusion)을 말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DE&I 보고서를 별도로 발간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 중에는 없다. 지속가능 보고서에서 다양성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도 소수다. 획일주의와 순혈주의가 지배하는 조직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수 없다. 구글은 2005년부터 다양성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2009년에는 DE&I에 대한 전사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들은 다양성과 관련해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다. 아마존, 3M 등은 다양성 지지를 위한 직원모임을 운영해 포용적 기업문화를 위해 노력한다. 한국 기업들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고 싶다. DE&I는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다. DE&I가 바로 경쟁력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