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풍월을 읊는 시대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 있으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는 뜻이다. ‘ESG’라는 단어는 약 3~4년 전부터 많이 사용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누구나 웬만큼 ESG 관련 풍월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투자자와 기업으로부터 시작된 ‘ESG 경영’ 열풍은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G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도 많아졌고, ESG 전략 컨설팅을 필요로 하거나 ESG 보고서 발간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ESG를 투자자의 용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를 투자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과연 ESG는 투자자 관점의 용어인가? 그렇다면 공공과 비영리는 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ESG와 유사한 지속가능경영·기업시민과 같은 단어도 있는데 굳이 ESG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ESG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 됐지만, 위와 같은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전문가들이 말하는 ESG 항목과 실행방안 등에서 다루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면 ESG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ESG 분야에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먼저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자.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ESG가 처음 등장한 2004년으로 거슬러가 보자.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9개국 20여개 금융기관을 초청해 변화하는 세상에 금융시장이 연결돼야 한다며 ESG를 강조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의 제목은 ‘Who Cares Wins Initiative’였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2008년까지 계속됐다. 2005년 주제는 ‘장기적 가치를 위한 투자’, 이듬해에는 ‘ESG 가치동인 및 기업과 투자자 간 연결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됐다. ESG를 고려한 투자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증명하려는 논의였다. 이 중 ESG 개념을 본격적으로 설명한 2004년 이니셔티브 보고서에는 유엔이 투자자와 함께 ESG를 강조한 명확한 이유가 설명돼 있다. 점점 세계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상에서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이슈를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기업이 성공적으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ESG 경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규제 조치를 예상하거나 새로운 시장에 접근함으로써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그들이 운영하는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특히 ESG 이슈는 기업의 평판과 브랜드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모든 행위자가 ESG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하고, ESG 경영을 하는 것이 마치 ‘좋은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처럼 규범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창의성과 깊은 고민을 통해 실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때 유심히 살펴볼 단어가 있다. 바로 ‘동시에’다. 즉 ESG 이슈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주주가치, 바로 ‘투자자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유엔이 1972년부터 국제회의의 주제로 삼은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ESG는 투자자만의 용어라고 말하기는 다소 어렵다. ESG는 10년 이상의 장기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자와,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지속가능발전을 꿈꾸는 유엔의 공동의 용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올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기관인 블랙록은 ESG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를 “환경론자여서가 아니라 자본가이기 때문이고, 고객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에는 “올해 주주총회시 ESG 관련 이슈에 대해 작년보다 더 많은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ESG 경영이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기업을 규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동안 ESG를 강조해온 투자자가 보여온 행보와는 결이 다르다며 “투자자가 변심했다” “드디어 속내를 드러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당황하는 눈치다.

투자자는 변심하지도, 속내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ESG 용어가 처음 등장했던 2004년부터 투자자는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투자자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ESG 경영을 강조했다. 우리가 놓쳤던 것은 유엔이 강조한 ESG 경영의 또 하나의 목적인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과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는 것, 우리는 ESG 경영의 두 가지 목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불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투자자가 원했던 것은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었고, 유엔은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더 높은 우선순위였음을.

요즘 ESG 경영을 선언하고 추진하는 기업과 기관이 많다. 하지만 이들 조직은 ESG 경영을 강조한 주체가 누구였는지, 왜 강조했는지, 무엇을 강조했는지, 지속가능경영과 기업시민이라는 단어 대신 투자자와 유엔은 ESG를 사용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상태로 여기저기 ESG를 붙여 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ESG 풍월을 읊는 수준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 ‘풍월’은 ‘얻어들은 짧은 지식’을 뜻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깊이가 매우 얕아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수준의 짧은 지식으로 우리 조직을 경영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개의 강의를 듣고, 몇 번의 강의를 하고 마치 잘 안다고 착각하는 서당개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제라도 ESG 경영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조직과 개인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참고문헌
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 (200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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