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을 봐야 해요.” 최근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충고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가진 변호사다. 그녀는 지금 일어난 현상 너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사건의 핵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갖고 그 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었다. 그즈음, 바다의 미래에 대한 매우 중요한 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협정은 강대국과 개도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1년을 끌고 왔다. 어떻게 바다를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지킬 것인지 그 ‘핵심’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사람 중에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없기 때문일까.
무역협정이란 국가 간 산업의 개방 또는 보호를 위해 수출입 관세와 시장 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수출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협상국가 내의 보조금도 규제한다. 보조금을 받은 생산농가는 국제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고, 이는 무역질서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년째 타결하지 못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협정 주제는 바로 ‘수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이다.
이런 협정은 매우 전문적이고 실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워 시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무역협정과 관련 우리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몇 장면이 있는데, 2008년 ‘광우병 위험물질이 포함된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그렇다.
당시 협정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물질의 반입을 막을 수 없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는 임의로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먹을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니, 최소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주권자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고,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미국 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에 수출된 미국산 쇠고기는 25만3175t으로, 전년 동기보다 16% 증가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54.3kg로 쌀 소비량 57.7kg만큼 늘었다. 쌀과 육류의 소비량이 뒤바뀌고 있는데, 축산업 종사자 연령은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으로 고령화됐다. 기업화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역협정이 일으킨 변화가 이렇다.
‘무역 주권’은 왜 중요할까? 주권자로서 내리는 지금의 결정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나라의 산업이 조정되고 관련 인력이 재배치되며 마침내 우리 식탁까지 변하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WTO 협상이 벌어지는 바다로 돌아가자.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수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은 선박 연료에 면세혜택을 허용한다. 이는 선박의 항해 능력을 강화하여 남획을 조장하고,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마저 지원하게 된다. 가까운 바다에 물고기가 줄어들면 더 멀고 깊은 곳까지 나가 물고기를 싹쓸이하고, 심지어 다 자라지 않은 물고기까지 잡았다가 쓸모없어 폐기하는 비용까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보조금의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결과는 이렇다.
우리가 의도하는 보조금은 기후위기 시대에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선박을 대체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탄소중립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해양생태계를 보존해 수산자원 증진을 도모해야 한다. 영세하여 경영 한계에 봉착한 어민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기금 조성도 좋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보조금에 기댄 한국 수산업의 기한이 앞으로 4년 남았다. 국민의 안전과 미래의 권리에 큰 영향을 주는 무역협정이 전문가의 손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