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유림·송시현 변호사
“최근 동물권·동물보호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행보도 이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동물을 보호하자는 외침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아니었던 셈이죠. 하지만 여전히 학대받는 동물들은 법의 문턱, 그 뒤편에 서 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법률사무소에서 권유림(41·IBS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송시현(37·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를 만났다. 각자 다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동물’로 연대한다. 권 변호사와 송 변호사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 단체 소속이다.
2014년 동물권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동변을 결성했다. 따로 모집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변호사들은 알음알음 동변을 찾아왔다. 동변 소속 변호사들은 낮에는 각자 업무를 수행하고, 저녁이나 주말에 모여 동물 관련 사건들을 논의하고 해결한다. 현재 11명의 변호사가 동변 소속으로 법률 자문, 연구,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20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발간한 ‘동물을 위한 법률지원 매뉴얼’을 집필했다. 지난해에는 카라·동물자유연대 등과 ‘동물학대 판례평석’을 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을 정리한 신간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발간했다. 10일 출간된 이 책은 약 8년간 동변이 맡은 사건 가운데 11가지를 꼽아 현행 동물보호법의 주소를 알려준다. 송 변호사는 “변화를 이끌어낸 주요 사건을 이 책에서 복기했다”고 말했다.
학대 당한 동물을 변론하는 방법
동변 소속 변호사들의 주 업무는 ‘고발 대리’다. 동물은 고소·고발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제3자인 변호사들이 대신 학대 가해자의 혐의를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을 제출한다. 동변은 2년 전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수족관에 갇혀 폐사한 돌고래를 대신해 동물단체들과 함께 창원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냈다. 최근에는 강원 화천 산천어 축제를 계기로 강원도지사, 화천군 관계자 등을 고발했다. 겨울철 인기 놀거리인 산천어 축제가 일종의 동물학대임을 알린다는 취지다. 송 변호사는 “법원에서 이번 안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걸 안다”면서도 “산천어 등의 어류를 놀이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동물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어필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변은 국내 동물단체들에 법률 자문도 제공한다. 권 변호사는 “동물단체들은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사건의 경우 변호사들에게 자문한다”며 “변호사마다 긴밀한 관계를 맺은 단체가 다르다”고 했다. 송 변호사와 권 변호사는 각각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 비글구조네트워크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이나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다. 송 변호사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개 전기도살’을 꼽았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도축시설에서 매년 개 30여 마리를 380볼트 전류가 흐르는 전기 쇠꼬챙이로 감전시켜 죽인 A씨에게 1심 인천지방법원, 2심 서울고등법원 모두 무죄를 선고했어요. 당시 많은 동물권 단체들과 시민이 분노했고, 동변은 이러한 판결이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죠.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어요.”
권 변호사는 동물단체 케어 유기견 안락사, 서울대 탐지견 불법실험·학대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했다. 국내 최대규모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인 애린원 철거에도 일조했다. 애린원은 보호소 차원에서 중성화를 제때 하지 못해 유기동물 개체가 급증하자 유기견들을 질병과 굶주림에 방치했다. 원장의 기부금 횡령, 토지 불법 점거도 문제였다. 권 변호사는 “해결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린 애린원 사건이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케이스”라며 “1000마리가 넘는 개들의 소유권 문제부터 불법 토지 점거로 인한 보호소 철거까지 담당했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동물보호법
송 변호사는 “동물학대 사건은 기소율이 낮아 소송까지 가는 일이 많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된 건수는 2011년 98건에서 2020년 992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검찰의 기소율은 2011년 47.2%에서 2020년 31.9%로 15.3%p 감소했다. 이마저도 대부분 약식기소로 끝나 2020년 기소된 355건 가운데 정식재판을 받은 건 30건뿐이었다.
허들을 넘어 재판까지 간다고 해도 동물학대 사건의 경우 법정형에 훨씬 못 미치는 선고가 내려진다.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따르면, 동물을 죽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권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개정을 거치며 법정형 기준은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죄질에 부합하는 합당한 판결이 나오지 않는 건 아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길고양이·너구리 등을 살해하고 학대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 사건 주요 피의자 B씨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양형 기준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할 때 양형 기준을 참고한다. 동물학대의 경우 양형 기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형량이 들쑥날쑥하다. 송 변호사는 “어떤 수사기관과 법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판결이 천차만별”이라며 “죄질의 무게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피학대 동물을 직접적으로 구조하거나 보호할 방법이 미흡하다는 것은 동물보호법의 구멍으로 지목된다. 현재 동물은 개인의 자산인 소유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학대 가해자로부터 동물의 소유권을 제한·박탈할 수 없다.
권 변호사와 송 변호사는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보호법은 법의 취지에 맞게 운용돼야 한다”며 “동물권에 대한 국민 인식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앞으로 사회는 동물학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변은 지속적으로 동물권 옹호의 최전선에서 말 없는 이들을 변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