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범재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대표
“주거 취약계층은 아파트보다 빌라, 다세대, 연립주택에 살 가능성이 커요. 문제는 장애인이나 고령자입니다. 이분들은 집안에 있는 낮은 문턱도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요. 가장 편하게 지내야 할 주거 공간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범재(61)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대표는 “모두가 편한 사회를 꿈꿔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불편을 나누는 사회가 더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UD)이란 나이·성별·장애 등에 제약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설계를 뜻한다. 그의 바람은 지난 2016년 협동조합을 꾸리면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은 일반 주택조합이나 재건축조합과 같이 소비자로 주택을 분양받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니다. 조합원들은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집을 임대주택으로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장애인과 전문가들이 설계한 ‘UD 주택’
가장 눈여겨볼 점은 조합원의 구성이다. 이범재 대표는 조합 출범 때부터 장애인이나 노인 입주자에게 적절한 의료나 돌봄서비스 제공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이 때문에 조합원을 장애 당사자와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했다. 장애 당사자 그룹으로는 지체장애인 심미경(43) 부장을 포함해 시각장애인, 뇌병변장애인이 있다. 이들은 설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형주택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의견을 내고, 수정 단계에서도 도움을 준다.
“집 안에 단차가 없으면 이동에 불편을 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습식 화장실에 단차를 없애버리면 물이 넘치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단차를 둬야 합니다. 이때 어느 정도 높이면 휠체어 이용자들이 어렵지 않게 넘나들 수 있는지 자문하고 테스트도 합니다. 조합원들이 장애 유형별로 설계 단계에 적용할 의견을 주십니다.”
조합원 중 전문가 그룹에는 건축사, 공인중개사, 회계사, 의사가 있다. 건축사는 조합의 요구가 설계에 잘 반영됐는지 확인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시공됐는지 관리 감독한다. 공인중개사는 사업부지 발굴과 주택 임대를 중개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공인회계사는 조합의 회계와 감사를 담당하며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의료인은 장애인이나 노인 입주자의 건강관리와 재활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등 자문 역할을 맡는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전용 주택’ 아닙니다”
“서울의 경우는 인도와 차도의 단차를 거의 다 없애 놨잖아요. 원래 휠체어를 탑승한 장애인이라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 때문에 생겨난 제도일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 무거운 물건을 가진 사람, 심지어 야쿠르트 아줌마까지 편하게 이용하고 있죠. 도입 당시엔 야쿠르트 아줌마에게도 편의를 제공할 거란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이범재 대표가 유니버설디자인에 거는 기대는 확장성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은 향후 다양한 사용자들이 나타나더라도 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숱한 장점에도 확산이 더딘 이유는 비용 탓이 크다. 주택을 짓는 것은 복잡한 일이다. 설계만 해도 구조 설계, 토목 설계, 전기 설계 등으로 나뉘고, 시공으로 들어가면 더 세분화된다. 많은 인력과 높은 효율이 요구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설계는 시공사들에 낯선 요구로 받아들여지고, 비용·기간 증가로 이어진다.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려면 일반 건축보다 약 10% 정도 더 비용이 듭니다. 시장에 내놓는 값도 비싸지겠죠. 그런데 수요는 거의 없어요. 아직은 특수재화에 속하죠. 그래서 ‘토지 임대부 사회주택’이라는 제도를 활용해서 주택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범재 대표의 목표는 장애인을 넘어 고령층이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는 “요양시설로 입소하는 노인들이 늘어날수록 정부 예산과 공적비용도 커진다”면서 “기존 주택을 배리어프리로 뜯어고치기보다 처음부터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해 주택을 짓는 것의 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누구도 요양시설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자기가 거주했던 곳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유니버설디자인으로 설계된 주택에서는 가능합니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전용 주택이 아닙니다. 개인의 행복도 만족하면서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노하린 청년기자(청세담1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