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도없이 무작정 보급… 노숙인 두 번 울리는 ‘이동식 텐트 프로젝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울시의 ‘홈리스 안겨드림’ 프로젝트
노숙인에 보급한 이동 텐트… 허가 없이 사용하면 불법 점거 취급, 과태료 물어
대다수 제대로 사용 못해
“사용 장소나 보호 규정 없이 성급하게 추진했다” 지적
市관계자 “추위 떠는 노숙인 1명이라도 줄이자는 생각”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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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매서운 한파가 휘몰아칠 때면 노숙인을 위한 대책들이 발표된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노숙인의 안전한 겨울나기를 지원하겠다며 발표한 ‘홈리스(Homeless) 안겨드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동식 셸터(간이 텐트) 500개와 겨울옷 4000여점을 노숙인들에게 기증하는 행사였다. 서울시 디자인정책과가 시민 공모를 받아 이동식 셸터를 개발하고, 삼성물산이 이동식 셸터 비용과 임직원들의 겨울철 의류를 기부하는 민관 협력 사례였다. 새로운 시도였지만, 정작 이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게다가 이번 겨울 이동식 셸터를 배분받은 노숙인 대다수가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현행법상 노숙인이 지하도·육교·도로 등에서 이동식 셸터를 사용하면 불법 점거가 된다. 허가를 받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부과된다(도로법 2조, 38조, 101조 및 시행령). 이동식 셸터는 장소를 불문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민원 발생의 원인이 되거나 오히려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릴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동식 셸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나 보호 규정(조례)을 마련하지 않은 채 디자인 개발 및 지원부터 추진한 서울시 프로젝트의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노숙인 지원 단체 실무자는 “이대로 나눠 줬다가는 노숙인들이 공무원이나 주민들로부터 쫓겨나는 등 봉변을 당할 것이 뻔하다”면서 “이동식 셸터에 비용을 투자하는 대신 정보가 없어 쉼터에 못 오는 노숙인들을 돕는 ‘아웃리치(Outreach)’ 인력을 보강하거나, 자립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타당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보급한 이동식 셸터(간이 텐트).
서울시가 보급한 이동식 셸터(간이 텐트).

반면, 해외에선 노숙인들이 이동식 셸터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규정과 보호 체계부터 마련한다. 미국 오리건주는 비영리 단체와 협력해 멤버십 제도에 기반한 노숙인 야영지(Dignity Villege)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폭력·절도·불법 약물 및 알코올 금지’ ‘지역에서 생산적인 멤버가 되기 위해 일하고, 마을 복지에 기여할 것’ 등 행동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미국 시애틀에선 2002년 인권 변호사들이 법적 공방을 통해 노숙인들이 이동식 셸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Tent city·이하 텐트 시티)와 기준을 마련했다. 시애틀에서는 텐트 시티 총 4개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가 부족한 노숙인 자활 예산을 기업들로부터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급하게 시도한 결과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이동식 셸터를 보급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오랜 기간 검토하고 고민했지만, 일단 추위에 얼어 죽는 노숙인을 1명이라도 줄이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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