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집권 초기 국제사회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이슬람 전통 질서를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전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은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7일(현지 시각) 아프간 권선징악부는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이나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여성은 중요한 일이 없다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칼리드 하나피 탈레반 권선징악부 장관 대행은 “우리는 우리의 자매들이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부르카는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여성 복장으로,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모두 감싸고 눈 부위만 망사로 뚫어 놓은 형태다. 여성이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으면 집안의 남성 가장이 처벌을 받게 된다. 정부 관계자가 집에 방문해 한 차례 경고하고, 그럼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남성 가장이 투옥되거나 공직에서 파면된다. 직업을 가진 소수의 여성도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해고된다.
탈레반이 여성 복장과 관련된 전국 포고령을 발표한 건 처음이다. 지난해 8월 정권을 잡고 국제 사회로부터 지지와 정당성을 얻기 위해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여성을 억압하고 이슬람 전통 질서를 강화하는 시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해더 바 휴먼라이츠워치(HRW) 선임연구원은 “점점 강화되는 탈레반 정부의 여성 인권 탄압에 심각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할 시기가 한참 지났다”며 국제 사회가 탈레반에 압력을 가하는 데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CS)도 성명을 내고 “탈레반이 국제사회로부터 얻고자 하는 합법성과 지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행동과 선언한 약속을 뒷받침하는 능력에 달렸다”며 탈레반 성명을 비난하고 이를 번복하라고 요구했다. 유엔 아프간지원단도 “이번 결정은 지난 10년 동안 이뤄진 논의와 협상에서 탈레반이 아프간 여성과 소녀의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모순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탄압이 1차 집권기(1996~2001년) 만큼 위력을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국제사회뿐 아니라 아프간 내에서도 탈레반 억압에 대한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실비아 레디골로 이탈리아 NGO 팡게아 대변인은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까지 자유롭게 살아온 아프간 여성들이 새 법령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들은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 몇 달 만에 잃었다”며 “(지금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카불의 여성 운동가 샤바나 샤브디즈(24)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해도 (부르카로) 나를 가리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자들은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다”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여성의 기본 인권”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탈레반 정부는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 72km 이상 장거리 여행을 금지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된 상태다. 지난 3월에는 중·고등학교 여학생 등교를 전면 허용하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어기고 무기한 등교 연기로 말을 바꿨다. 이로 인해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 해당 법령은 탈레반 지도부 내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