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닌 나를 위한 ‘액션’이에요.”
윤수빈(23)씨의 환경운동은 지극히 개인적인 계기로 시작됐다. 지난해 4월, 대학병원 암연구소에 인턴으로 출근하면서부터다. 윤씨는 “실험에 쓰이는 물품 대부분 멸균 제품이라 포장 폐기물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실험 도구도 거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온다”면서 “의료기관에서는 별도의 분리배출 없이 모두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데, 이런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커뮤니티 활동을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주 활동 공간은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Vake)’다. 베이크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커뮤니티를 조직하거나 이를 위한 모금 활동도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플랫폼이다. 이곳에서는 ‘액션’으로 불리는 개방형 캠페인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윤씨는 지난 1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액션 ‘나를 위한 환경보호, 플라스팁’을 개설했다. 구성원은 32명. 오프라인 모임은 갖지 않는다. 행동 수칙은 느슨한 편이다. 일상에서 얻은 플라스틱 빨대나 의약품통 등을 모아 수거함으로 보내는데, 날짜를 정하거나 한 장소에 모으진 않는다. 전국 수거함을 찾아 각자 수행하는 식이다. 친환경 제품 사용 후기를 공유하거나 작은 실천 인증하고, 커뮤니티 내에서 소규모 스터디 모임을 따로 열기도 한다. 윤씨는 “환경보호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크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얼마나 효과적인 활동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혁신의 첫 단추, 뜻 맞는 사람 찾기
베이크는 사용자의 활용도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블로그처럼 개별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고, 구성원 간 투표를 진행하거나 오픈채팅방을 열 수 있다. 기능은 다양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윤수빈씨는 베이크에서 ‘플라스팁’ 액션을 벌이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따로 운영한다. 베이크가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교류 공간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일반 대중을 베이크로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윤씨는 “처음 베이크를 접하게 된 것도 인스타그램 추천 덕분”이라며 “관심은 있어도 뜻 맞는 사람을 찾다가 시작도 못 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게 된다면 행동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의약품통과 일회용 렌즈통을 모으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활동은 아니다. 영양제 용기나 알약이 담긴 약통, 일회용 렌즈 용기 등을 수거해 얻은 데이터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소규모 활동으로 유의미한 탄소배출량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요즘 시대의 트렌드라는 걸 형성할 수는 있다”라며 “기업들은 항상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게 유행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환경보호 활동이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가 되면 기업들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뜻 맞는 사람이 모이면 모금의 폭발력도 커진다. 현재 월드비전은 베이크상에서 기업이나 기관이 참여형 펀딩 캠페인을 기획하고 개설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에는 자영업자나 브랜드 사업자들이 고객들의 소비를 기부로 연결하는 ‘기부라벨’을 진행하고 있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동시에 기부에 동참하는 방식이다. 이은희 월드비전 베이크 프로젝트리더는 “블록체인 기반의 베이크는 모금 과정과 기금 사용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모금 플랫폼과 차별점이 있다”라며 “커뮤니티 개설을 넘어 모금을 위한 액션도 손쉽게 열 수 있도록 베이크를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소소한 소모임부터 대규모 커뮤니티까지
베이크에선 단순 커뮤니티 모임부터 수백명이 참여하는 액션도 가능하다. 최지웅(32)씨는 지금까지 5개의 액션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 2020년 베타테스트로 대중에게 첫선을 보일 때부터 베이크에서 활동해왔다. 현재는 소셜섹터 활동가들의 축구 모임 ‘FC SET PEACE’에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모여 축구 경기를 갖는 모임으로 47명이 모였다. 장애인단체, 환경단체, 사회적기업 등 소셜섹터에서 일하거나 활동가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사람들로 구성됐다. 최씨는 “초기엔 국제개발협력 분야 관계자들의 모임으로 출발했는데, 더 많은 사람을 유입시켜 네트워킹하자는 취지로 소셜섹터 활동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면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유행인 습관 형성 플랫폼의 핵심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 찾기다. 베이크는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공간이라 습관 만들기 액션을 꾸리기 쉬운 편이다. 최씨는 “운동이나 집정리 등 생활 습관 만드는 활동이 인기인데 환경운동도 마찬가지로 습관이 무척 중요한 요소”라며 “혼자 하면 절대 못할 10주간 미션도 여러 사람이 같이하면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 사례는 지난해 8월 1일부터 10주간 진행된 시한부 액션 ‘지구를 지키는 오늘의 실천’이다. 매주 ▲기후행동 ▲제로웨이스트 ▲채식지향 등 세 가지 주제에 따른 행동 미션이 각각 올라오고, 참여자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발성으로 이뤄진 이 액션에는 총 59명이 참여했고, 2개월여 기간에 수백개의 인증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업무에서 확장한 액션도 있다. 최씨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서 해외봉사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KCOC는 국제구호개발 NGO의 신청을 받아 해외봉사단을 세계 각국에 파견하고 있는데, 그간 수백명에 이르는 단원과 소통할 수 있는 적합한 플랫폼이 마땅찮았다”면서 “코로나 이후 재개된 ‘2021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사업을 액션으로 개설해 200여 단원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