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 활용법] 이곳에선 누구나 캠페인 기획자가 된다

누구나 캠페인 기획자가 되는 시대다. 과거 기관이나 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캠페인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개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관건은 참여 유치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활동이라도 뜻이 같은 사람들에게 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특히 모금은 메시지 도달 이후에도 후원 동기를 부여해 기부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이른바 ‘사회혁신 고관여층’이 한데 모여 각자 캠페인을 기획하고 개설하고 참여할 수는 없을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가입했다는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 ‘베이크(Vake)’에서는 이러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20년 6월 베타 서비스로 첫선을 보인 베이크에서 열린 캠페인은 91개, 참여 인원은 5098명에 이른다. 월드비전 주도로 탈중앙화 자율 조직(DAO) 기반 기술 스타트업 위브컬렉티브, 블록체인 기술 기업 캔랩 등이 참여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결실이다.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 이용자들은 활동 성과에 따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인증 배지를 받을 수 있다. /월드비전 제공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 이용자들은 활동 성과에 따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인증 배지를 받을 수 있다. /월드비전 제공

혁신가들의 소셜 놀이터

베이크에서는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도 쉽게 캠페인을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다. 즉 개방형 캠페인이다. 베이크상에서는 이를 ‘액션’이라고 부른다. 캠페인 제안자는 ‘액션 메이커’다.

액션의 형태는 액션 메이커의 기획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모금은 물론 재능 기부, 자원봉사, 환경 보호 활동 등 일상에서 사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활동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으는 활동 중심으로 액션을 꾸려갈 수 있고,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모금하고 기금 집행에 기부자들을 참여시킬 수도 있다. 액션 개설 이후 이뤄지는 과정은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기록되고 공유된다.

베이크 브랜딩·디자인을 맡은 이송이 위브컬렉티브 대표는 “액션 주제들과 함께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UN SDGs)에 명시된 17과제도 함께 달리기 때문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서 “내 주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못 하겠고, 그렇다고 법인을 만들어 활동할 수도 없을 때는 직접 액션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반드시 사회문제 해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꼭 기부로 연결되지 않아도 된다. 사회 변화를 위한 준비 과정도 액션으로 만들면 된다. 지난 2월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의 사회적 가치를 공부하기 위한 독서 모임이 액션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기간은 열흘. 독서 인증과 관련 정보를 공유한 이 액션에는 64명이 참여했다.

이은희 월드비전 베이크 프로젝트리더는 “종전에 없던 형태의 플랫폼이라 한마디로 딱 정의하기 어렵지만, 혁신가들이 참여하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소셜 놀이터’라고 볼 수 있다”면서 “특정 액션에 참여하지 않아도 ‘둘러보기’ 기능을 통해 다양한 활동들을 엿보면서 기획력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권한 분산이다. 플랫폼은 월드비전 주도로 구축됐지만,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다른 비영리단체와 기업들도 액션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개발도상국에 봉사단을 파견하는 ‘월드프렌즈코리아 NGO 봉사단’ 활동을 액션으로 개설해 그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지난 2020년 10월 플라스틱 사용 실태 조사 ‘플라스틱 리서치 2020′을 베이크상에 열어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소비자 조사와 그 결과에 대한 활동을 공유했다. 이송이 대표는 “특정 기관을 위한 형태의 플랫폼은 확산하기 어렵고 글로벌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액션을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액션을 개설하고 액션에 대한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기부자에서 참여자로

베이크 형태의 플랫폼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네이버해피빈이나 카카오같이가치처럼 모금 기능을 갖춘 동시에 커뮤니티 기능이 있고, 온라인 카페나 소셜미디어에서 확보할 수 없는 투명성도 블록체인으로 잡았다.

시작은 5년 전 기부 시장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월드비전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화두는 다양성과 투명성이었다. 2010년대 들어 MZ세대의 기부 시장 유입이 본격화하면서 기부자들의 요구도 다양해졌다. 이들은 재정적 기부와 더불어 후원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투명성 이슈도 전통적인 재정적 측면을 넘어 모금 단체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으로 번졌다. 이은희 프로젝트리더는 “기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개인 기부자들이 단체의 후원금 모금과 집행 전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하면서 모금 단체에서도 이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왔다”면서 “문제 정의는 했는데 과연 이걸 확인하는 실험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베이크 탄생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개인 주도의 네트워크 실험이 열렸다. 2018년 ‘오가닉 네트워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단체가 아닌 개인이 모금을 진행하고, 집행하는 과정을 서비스 안에서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유할 기회를 제공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시 7개 액션을 통해 연결된 참여자 수는 1500명에 이르렀다. 이은희 프로젝트리더는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프로젝트에 권한과 역할을 갖는 DAO 방식의 모금과 사업 운영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원칙을 세웠다. 경계가 없고, 모두가 주체여야 하고, 투명해야 했다. 이를 디지털 상에 구현하려면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했다. 베이크 기술 파트를 담당하는 이은영 캔랩 이사는 “기술의 선한 영향력을 뜻하는 ‘테크포굿(Tech for good)’ 관점으로 보면 세계적으로도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많이 생기고 있다”면서 “베이크도 아직은 초기 단계라 운영의 주체가 존재하지만 앞으로 사용자들이 운영하는 구조로 단계를 밟아갈 것”이라고 했다.

월드비전은 올해 베이크 프로젝트를 사내 벤처 성격의 별도 조직으로 만들었다. 전담 인력과 별도 예산도 내렸다. 비영리단체에서는 첫 시도다. 지금까지 투입된 자원만 7억원이 넘는다. 이은희 프로젝트리더는 “사회 혁신가들이 점차 많아지면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라고 할 때 떠오르는 특정 이미지도 옅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회 변화를 위한 액션은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닌 남녀노소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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