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부는 친환경 바람을 타고 전기차 보급이 크게 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선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태양광 산업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친환경 전환의 이면에는 전기·전자폐기물(E-waste) 처리 문제가 있다. 유엔이 지난 2020년 발표한 ‘글로벌 전자 폐기물 모니터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전자 폐기물 발생량은 5360만t으로 5년 만에 21%가량 증가했다. 2030년이면 연간 발생량이 7400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전자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업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전기차 폐배터리의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 탓에 매립이나 소각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자 폐기물을 전문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업들에 관심이 쏠린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달 1조 2000억원을 들여 글로벌 전기·전자폐기물 전문기업 ‘테스(TES)’를 인수했다.
지난 2005년 싱가포르에서 설립된 테스는 수거, 분류, 처리, 재활용 등 전 분야에 걸친 사업을 펼치는 종합 전자 폐기물 기업이다. 북미, 유럽 등 전 세계 21개국에 43개의 처리 시설이 있는 등 넓은 공급망도 강점으로 꼽힌다. 테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4억6500 싱가포르달러(약 4140억원)에 달한다. 폐기물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SK 에코플랜트는 이번 인수로 IT 기기·전기차 배터리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됐다.
국내 대기업이 폐기물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벌이는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폐기물 처리 비용도 매년 상승세다. 지난해 한국기업평가가 발표한 폐기물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폐기물 소각 단가는 2016년 1t당 14만8000원에서 21년 상반기 22만6000원으로 5년 만에 52%가량 상승했다. 매립 단가도 같은 기간 1t당 6만3000원에서 20만9000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영세업체 위주로 구성된 국내 폐기물 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볼트온(Bolt-On)’ 전략으로 대형화를 꾀하고 있다. 볼트온은 연관 업종의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는 경영 전략이다. SK에코플랜트는2020년 11월 종합 환경 폐기물 업체 환경시설관리(전 EMC홀딩스)를 1조원 규모에 지분 100%를 인수한 뒤 지속적으로 지역 거점 폐기물처리 기업을 확보했다. 지난해 1월 경주 지역의 와이에스텍을 인수했고, 6월에는 대구 지역의 삼원이엔티와 충남 지역 폐기물 업체 대원그린에너지, 새한환경을 사들였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의료 폐기물 분야에도 진출했다. 지난 6월 의료 폐기물 소각 기업인 디디에스를 시작으로 도시환경, 이메디원을 잇따라 인수했다. 김성제 포스코기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폐기물 시장은 주로 중소 업체들로 구성돼 있었지만, 경제적 가치를 알아본 대기업들이 폐기물 산업에 뛰어들면서 미국 등과 같이 대형 업체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폐기물 시장 진출은 전 세계적인 ESG 경영 흐름과도 관련이 깊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친환경 행보가 계열사 경영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넷제로를 핵심 경영 전략으로 꼽으면서 오는 2030년까지 탄소 2억t 감축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는 환경사업자로 전환하는 원년이었다”며 “올해는 폐기물 사업을 플라스틱, 전기·전자 폐기물 리사이클링을 영역까지 확장해 나가겠다”고 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내년 기업공개를 목표로 친환경 분야 사업 규모를 계속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