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어필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피부색과 종교, 국적, 언어, 나이도 제각각이다. 그간의 사연도 현재 처한 상황도 갖가지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국경을 넘어 한국땅을 밟은 난민이라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어필의 여정은 ‘외길’이었어요.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당장 필요한 법률적인 지원을 제공해왔어요. 가끔 ‘내가 지금 하는 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가치를 꾸준히 고집했어요.”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정신영 변호사가 말했다. 그는 어필 설립 첫 해인 2011년부터 지금까지 난민을 향한 혐오와 싸우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한다. 특히 한국에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을 제정하는데 기여했고, 2016년에는 난민에 생계비를 지급하지 않는 문제를 두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어필에 도움받은 난민과 이주민들은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어필은 지난달 10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수여하는 ‘제10회 변호사 대상’ 단체 부문을 받았다.
亞 최초 난민법 제정 10년, 어필의 10년
국내에 이주민·난민을 전담하는 변호사 단체는 어필이 유일하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드물다. 어필의 시작은 2011년. 난민법 제정 준비로 분주하던 시기다. 당시만 해도 전업 공익변호사도 손에 꼽았다. 개별적으로 공익 활동하는 변호사는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이주민·난민을 전담하는 단체는 없었다. 그해 1월 어필을 설립한 김종철 변호사는 2005년 사법연수원에서 난민 지원단체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난민들의 얘기에 매료돼 그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결심했다. 2010년 말에는 공익변호사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다니던 법무법인을 그만두고, 어필을 꾸렸다.
어필의 활동이 본격화된 건 난민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1년 12월 29일부터다. 전수연 변호사는 “난민법 제정 전에는 출입국관리법에 있는 난민 관련 조항들만으로 판단해야 했는데, 난민의 특수한 형편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난민법 제정은 어필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그 시작이었고, 이주민들이 차별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도약”이라고 했다.
이 때부터 어필은 난민 관한 새로운 소송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난민심사 불회부 취소’가 있다. 난민신청 절차는 ‘난민신청 회부’와 ‘난민인정 심사’로 나뉜다. 법무부가 발표한 ‘2021년 7월 통계월보’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1641건의 난민신청 중 심사에 회부된 사례는 687건(41.8%)에 불과하다. 회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난민신청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 지난 2014년 어필은 난민심사를 신청했다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심사불회부 결정을 받은 아프리카 출신 A씨의 불회부 결정이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을 최초로 이끌어냈다. 이 밖에도 공항에서 이주민들의 변호인 조력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소송에서 승소했다.
난민에게 한국 국경은 여전히 ‘높은 벽’
어필을 거쳐 간 난민과 이주민은 한해 180명 정도 된다. 4~5명의 변호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김세진 변호사는 “변호사 수에 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 물리적으로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면서 “안타까운 케이스여도 소송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필은 지난해 4분기에 124명의 이주민을 지원했다. 이주민들은 어필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구글폼을 통해 지원을 요청한다. 전수연 변호사는 “구글폼을 보고 이주민들이 적어준 박해 이유 등이 충분히 난민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무리가 돼도 웬만하면 지원을 맡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현재는 구글폼을 임시로 3개월 정도 닫아놓은 상태다. 변호사들의 일정이 이미 다른 사건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이 최대한으로 난민을 지원해도 난민인정률은 1% 수준에 불과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0~2020년 11년간 한국은 5만218건의 난민 지위 여부를 결정했다. 이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한 사례는 655건으로 평균 1.3%에 불과했다. 이를 연도별로 따져보면 2016년 98명, 2017년 121명, 2018년 133명으로 해마다 조금씩 상승해오다 2019년에는 다시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2019년의 난민인정률은 0.5%에 그쳤다. 2020년 난민인정률도 0.8%에 불과해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어필의 구성원은 12명이다. 변호사 4명을 포함해 행정 직원과 캠페이너 등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설립자인 김종철 변호사는 지난달 24일을 마지막으로 어필과 이별했다. 제2의 여정을 위해 지난 일들을 정리한다는 뜻에서다. 김세진(44) 변호사는 “김 변호사님은 삶에 있어서나 성품에 있어서나 본이 되는 사람”이라며 “그가 단체와 함께하지 않아도 어필의 고유한 가치와 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어필은 개인·단체 후원을 통해서 운영된다. 기업 후원은 받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이해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활동하기 위해서다. 어필이 공개한 지난해 모금액은 약 8억3200만원이었다. 정신영 변호사는 “10년 넘게 비영리로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후원자들의 관심과 지지 덕분”이라고 했다. 그사이 응원군도 많이 늘었다. 2013년 11월 기준 개인 후원자는 350명, 단체는 18곳이었다. 그로부터 약 7년 이상 지난 2021년 3월 기준 개인 후원자는 1021명, 단체 29곳이 됐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필의 가치를 계속해서 추구할 거예요. 불합리한 제도를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함께 열심히 일해서 조금이라도 평화로운 세상에 기여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난민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색안경이 벗겨지고, 차별이란 먹구름이 걷히게 된다면, ‘우리 몫의 기여’는 다 한 거죠.”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