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고액기부, 프러포즈하듯 이상대 충분히 알고 요청해야”

조 색스턴 nfp시너지 대표

작은 단체들, 기부자 모으려면 타깃·브랜드 가치 명확히 정해야

조 색스턴 nfp시너지 대표
조 색스턴 nfp시너지 대표

“모금시장이 포화됐다는 생각을 버려라. 기부를 끌어낼 방법은 언제나 있다.”

NPO를 위한 연구컨설팅기업인 nfp시너지 조 색스턴(Joe Saxton·사진) 대표의 조언이다. 조 색스턴 대표는 영국 모금 컨설팅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2~3일 한국NPO공동회의가 주최한 ‘2013 나눔문화선진화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고액·유산기부에 대한 비영리단체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듯, 첫날 콘퍼런스에만 500명이 참석했다.

―영국에서의 모금 트렌드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20~25년 전에는 다이렉트TV를 통해 광고했고, 15년 전에는 길거리모금을 통해 매년 60만명이 정기 기부를 하게 됐다. 길거리모금이 흔해지자, 이후엔 방문모금이 등장했다. 전화모금을 거쳐 최근에는 SNS나 문자모금이 많아지고 있다. TV나 인터넷보다 문자모금이 훨씬 더 쉽다. 최근 필리핀 하이옌 태풍피해 모금에서 문자모금으로만 150만파운드(약 26억원)가 모였다.”

―영국 자선단체들은 모금활동을 위한 마케팅·운영비에 몇 % 정도를 사용하는가.(우리나라는 기부금품 모집법상 모금액 대비 최고 15%까지만 쓸 수 있다)

“제한이 없다. 99%를 행정비로 써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기부자는 내가 낸 돈의 100%가 프로그램 사업비로 쓰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행정비가 없는 단체가 정말 좋은 단체인가. 사무실도 없고, 기금을 잘 썼는지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특히 막 시작한 자선단체에 15%만 행정비로 쓰라는 건 너무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15% 룰’ 규제를 하게 되면, 자선단체의 성장을 막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기부자들이 자선단체를 잘 감시하라’고 얘기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컵트러스트(cup trust) 스캔들이 일어났다. 2000만파운드(350억)의 수입 중 5만파운드(8500만)만 자선사업에 쓴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에선 ‘수입의 20% 정도는 무조건 자선사업에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비영리단체의 빈익빈 부익부도 심해지고 있다. 작은 단체는 어떻게 모금해야 하는가.

“영국에서도 160만개에 달하는 자선단체 중 1500~1800개 정도만 크고, 나머지는 매우 작고 어려움을 겪는다. 작은 단체일수록 핵심가치, 브랜드, 타깃층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기부자들을 끌어내지 못한다.”

―한국은 나눔 장려 정책은 보건복지부, 기부금품 모집 관련 법안은 안전행정부, 비영리단체 과세는 기재부와 국세청, 재단설립과 운영은 각 부처·지자체에서 담당하고 있어서 너무 복잡하고 제출 서류도 까다롭다. 영국은 어떤가.

“자선단체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자선청(CC)이고, 자선단체의 세금혜택과 관련한 업무는 영국국세청(HMRC)이 담당한다. 영국에선 지금 자선청과 국세청에 따로따로 등록하지 말고, 하나의 통합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개인 소액기부 시장이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보고, 고액기부나 유산기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 비영리단체의 대표에게 조언한다면.

“시장이 포화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방법은 언제나 있다. 기존 소액기부자 풀(pool)을 활용해서 모금을 늘려야 한다. 유산기부 캠페인을 해서, 사람들에게 유산기부에 대한 정보부터 알려줘야 한다. 기부자들이 모든 자선단체를 신뢰할 필요는 없다. 주고 싶은 단 한 개의 자선단체만 믿으면 된다.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도 아니다. 자산의 단 몇 %만 기부하면 된다. 내 유서에는 2~3곳의 자선단체가 각각 1%씩 가져가도록 돼있다. 그리고 고액기부자에게 ‘우리의 사업을 한번 보라’고 적극 초대해야 한다. 고액기부는 프러포즈와 같다. 상대방을 알기도 전에 무턱대고 프러포즈하지 않듯이, 몇년 동안 연인으로 사귄 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확신이 있을 때 요청하는 것이다. 또 정부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암, 치매환자, 장애인 등 정부가 세금을 통해 해야 할 복지사업을 자선단체들이 잘하고 있는 걸 보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이구나’ 인식하면, 정부는 자선단체를 더 이상 ‘세금 떼가는 곳’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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