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위기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이후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17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여섯 가지의 주제 강연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날 ‘선택’을 주제로 인지심리학·수학·서양철학·국어국문학·진화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차례로 공유한다. |
“병원으로 위독한 환자가 실려왔습니다.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그런데 환자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극빈자입니다. 당신이 의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17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제2회 미래지식 포럼’의 마지막 여섯 번째 세션에서 ‘정의(正義)’를 키워드로 강연에 나섰다. 서양 고전학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와 정의로운 선택을 그리스 역사에서 찾는다. 그는 “책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뿌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궤변론자인 트리시마코스와 논쟁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트리시마코스는 정의를 ‘강자의 이익’으로 봤다. 정의는 법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입법 권한을 위임받는 정치인은 사회적 강자고 법은 곧 이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논리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반문한다. “의사는 의술에서 강자지만, 고장 난 자동차를 정비해야 하거나 선박을 이용해 여행할 때는 정비사, 항해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이 각자 제 몫을 다하면 누가 이익을 보겠는가.”
김 교수는 개개인이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정의’라고 개념 지었다. 그는 “입법자가 입법자로서, 의사가 의사로서, 통치자가 통치자로서 각자 맡은 바를 다 하는 공동체에선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다”면서 “개인이 특정 분야에는 강자일 수 있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약자가 돼 강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칼리폴리스(kallipolis)’, 즉 ‘아름다운 나라’는 각자의 역할에 맞는 최선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다른 사람의 최선이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정의로운 공동체입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치자·수호자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김 교수는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국가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플라톤은 지혜·용기·절제·정의의 덕을 갖춘 사람들이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지혜가 뛰어난 철학자가 그 사회를 통치하는 국가를 이상향으로 삼았다”면서 “플라톤은 작지만 강한 ‘모범적인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고대 그리스의 변론사 이소크라테스는 국가를 작게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크게 뭉친 후 그 세력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강한 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내세웠다.
이소크라테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2세에게 자신의 국가상을 제시했고, 이는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실현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10여 년의 원정을 통해서 페르시아 전역 그리고 인도 서부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리스 중심의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낸 것이죠.”
김 교수는 2022년의 우리가 어떤 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플라톤은 작고 강한 ‘모범적인 나라’를 추구했습니다. 한편 이소크라테스는 세계화를 주도하는 ‘강한 나라’를 지향했죠. 여러분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나요? 우리는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이상향을 둘 다 고려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개인의 미래를,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범적이면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