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위기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이후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17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여섯 가지의 주제 강연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날 ‘선택’을 주제로 인지심리학·수학·서양철학·국어국문학·진화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차례로 공유한다. |
“‘우리는 우리의 선택들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문화사회학자로서 감히 질문을 하나 던지려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청년 세대는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요?”
17일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4세션 강연을 맡은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말했다. 문화사회학에서는 드라마·영화·광고 같은 시대상이 반영된 대중문화 콘텐츠를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최 교수는 “MZ세대는 선택하는 삶을 갈망하면서도,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며 최근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대사를 인용했다.
“‘설령 사소한 거라도 좋아. 선택이라는 걸 하며 살고 싶어.’ 얼마 전 젊은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여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와 궁녀 성덕임의 사랑을 다루고 있죠. 드라마 배경은 신분제 사회지만, 주체적인 여성상과 선택의 자율성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 것이지요. 이 밖에도 MZ세대가 시간 선택권, 여가 선택권 등 ‘선택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MZ세대는 왜 자신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MZ세대 특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MZ세대는 1980~2004년 출생한 세대로 규정된다. 최 교수는 “사회학에서 세대를 말할 때는 ‘생애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시대적 상황을 함께 경험하며 유사한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는 집단이 ‘한 세대’”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MZ세대가 경험한 우리 사회의 주요 사건을 언급했다. 1993년에는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1996년에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1997년에는 초등학교 교과목에 영어가 추가됐으며 1998년 무렵에는 가정용 PC가 보편화됐다. 2005년 호주제 헌법 불일치 선고, 2011년 학생 인권조례 공포 등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MZ세대는 국가 경제가 상당히 발전했을 때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한층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성장했고요. 어릴 때부터 IT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외국어에도 능통하죠. 그래서인지 MZ세대는 쇼핑, 음식, TV 프로그램 등 다양하고 폭넓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고, 선택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최 교수는 “MZ세대가 ‘풍요 속의 빈곤’을 겪는 세대”라고 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경제 성장률은 둔화했고, 계층이동가능성도 축소됐다. 선택이 잘못됐을 때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도 크다. 최 교수는 “MZ세대는 진로·직업 등 중요한 선택을 앞에 두고 늘 힘들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Z세대는 유년시절부터 스스로 내리는 선택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MZ세대는 늘 이런 말을 듣고 컸습니다. 네 적성을 찾아, 너를 찾아, 너의 선택은 너의 것이야. 실제로 MZ세대는 소비 등 일상의 영역에서는 풍요를 넘어 과다할 정도의 선택지가 있는 세대입니다. 다른 세대가 보기엔 부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세대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수없이 많은 선택지 앞에서 매번 흔들리고 헷갈리게 된다. 최 교수는 “MZ세대는 이런 이유로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MBTI뿐 아니라 심리테스트, 각종 성격유형테스트, 사주팔자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몰두한다”고 설명했다.
사회구조적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MZ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 교수는 “MBTI에 열광하게 하는 사회 구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말을 인용했다.
“‘사회학은 우리가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꼭두각시와 달리 고개를 들어 그 줄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꼭두각시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선택은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제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학을 알고 나면 우리가 그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럼 우린 언제까지 꼭두각시여야 할까요. 저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우리는 꼭두각시와 달리 고개를 들어 그 줄을 볼 수 있다’는 부분이요. 우리는 우리를 제한하는 사회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피터 버거는 말합니다.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라고요.”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