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위기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이후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17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여섯 가지의 주제 강연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날 ‘선택’을 주제로 인지심리학·수학·서양철학·국어국문학·진화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차례로 공유한다. |
“언어는 ‘생각을 담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언어라는 도구가 우리의 생각을 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을 바꿔야 할까요? 아니면 언어를 바꿔야 할까요?”
‘제2회 미래지식 포럼’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어가 소수자의 관점을 소외하거나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 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매가 짧은 옷을 흔히 ‘반팔’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팔 길이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는 거죠. 선천적으로 팔이 짧거나 사고로 팔이 짧아진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팔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차별하고 있던 겁니다. 반팔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면 같은 의미의 ‘반소매’라는 단어를 대신 선택할 수 있겠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에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 교수는 ‘언어 감수성’을 지목했다. 언어의 감수성은 일상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차별, 불평등, 반인권, 비민주적인 요소를 감시해내는 민감성을 의미한다. 신 교수는 “언어의 감수성이란 렌즈를 통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들을 바라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적인 요소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고 했다.
단어뿐만 아니라 문법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어의 문법을 들여다보면 불평등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하는 고유한 장치가 있다. 바로 ‘높임법’이다. 신 교수는 “우리는 높임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윗사람-아랫사람’ ‘높은 사람-낮은 사람’처럼 사람의 관계를 위-아래로 인식하게 된다”며 “이러한 언어 선택을 통해 사람 사이에 서열이 있다고 각인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국말에서 존댓말과 반말을 선택하게 하는 가장 큰 기준은 ‘연령’이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외국과 달리 나이를 서열이자 권력으로 생각한다”며 “존댓말과 반말을 매일같이 사용하면서 연령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됐다”고 했다.
100년 전 불평등을 일으키는 언어 선택에 반기를 든 세 사람이 있었다. 어린이운동을 주도했던 박승빈(1880~1943), 김기전(1894~1948), 방정환(1899~1931)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린이 상호 간 경어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어른이 아이에게도 경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박승빈 선생님은 1921년 말의 평등을 이뤄야 한다며 교육 책임자들에게 건의서를 제출했고, 김기전 선생님과 방정환 선생님은 1923년 첫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에게 경어쓰기 운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 분의 노력은 ‘우리의 언어가 과연 평등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습득된 언어가 바뀌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류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언어 선택 기준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언어는 금과옥조도, 신성불가침의 성역도 아니다”라며 “나부터 시작되는 문제제기는 사용자들의 합의로 이어져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의 가치를 담은 언어를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습관이기 때문에 바꾸기 위해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옳지 않은 언어를 물려줘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새로운 언어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