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위기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이후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17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여섯 가지의 주제 강연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날 ‘선택’을 주제로 인지심리학·수학·서양철학·국어국문학·진화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차례로 공유한다. |
“우리는 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택을 할 때 인간은 결코 자신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재의 상태나 경험에 의해 선택이 좌우되죠.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선택의 함정은 무엇일까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17일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1부 첫 번째 순서로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강단에 올랐다. 김 교수는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좋은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먼저 선택이 어려운 이유로 ‘확률과 가치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예측하거나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선택 앞에 선 인간은 늘 불안하다. 김 교수는 ‘타이어가 신발보다 싸다’는 문구보다 ‘타이어 3개 사면 1개 공짜’가 판매에 더 효과적이라는 예시를 들었다. 그러면서 “사람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선택을 할 때 무언가 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올라가는 독특한 현상이 벌어진다”며 “확실함을 가장한 가짜들이 우리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택 대상의 가치를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낡은 대신 수록된 단어가 많아 두꺼운 사전과, 표지가 새것이고 덜 두꺼운 사전이 있을 때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두 권을 동시에 봤을 때는 ‘두께’를 기준으로 두껍고 낡은 사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사전의 본질은 ‘단어 설명’이라고 했을 때, 단어가 많이 수록될수록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반면 한 권씩 보는 경우, 두께를 정확히 비교할 수 없다. 두께는 당장 판단에 쓸 수 없는 단서다. 이때는 더 명확히 기억나는 표지 상태에 의존해 새것을 고를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는 “나는 과연 중요한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생각나서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한국인은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 ‘우리 집’ 같은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자신이 어떤 ‘우리’ 안에 있느냐에 따라 삶과 선택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선택에는 독특한 괴리가 일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즉 ‘원트(want)’와 좋아하는 것, ‘라이크(like)’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데, 나만 안 가지고 있을 때의 불안함은 강한 ‘원트’를 만들어 낸다”며 “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결과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결과로 나아가기까지 겪을 과정이나 사용될 도구가 선하고 정당한지도 꼭 생각해봐야 한다. 김 교수는 ‘클린머니 더티머니 실험’을 소개했다. 이벤트에서 50만원 상품권에 당첨됐을 때, 상품권을 협찬한 기업이 평판이 나쁜 회사일 경우 사람들은 50만원을 한 번에 다 써버렸다. 반면 평판이 좋은 회사가 협찬한 경우 사람들은 50만원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쓰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보관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나쁜 도구나 과정은 결코 좋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선택의 결과를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김 교수는 “사실은 선택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으면서, 알고 있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그다음 선택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택 후의 자세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선택의 결과가 예상보다 좋든 나쁘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복기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고, 예측보다 잘 되면 일이 얼마든지 좋게 풀릴 수도 있다는 ‘미신’에 빠질 수 있다”며 선택을 돌아보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4차산업 혁명 시대를 살아갈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김 교수는 “항상 익숙하고 친숙한 방식으로만 그림을 그린 화가 렘브란트의 경우 인공지능(AI)이 그의 화풍을 쉽게 따라 했지만, 독창적인 화풍을 끊임없이 개발한 피카소의 그림은 AI가 아직도 그리지 못하고 있다”며 “AI와 메타버스의 세상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를 즐기면서 선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