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플라스틱에 ‘영원한 재생’이 허락된다면…

투명 페트병으로 페트병 원료 생산
‘보틀 투 보틀’ 100% 순환 체계 가능
유럽·미국·일본 등 활발하게 쓰여
국내는 ‘식품용기 관련 기준’이 장벽

세계에서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인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페트병 원료의 50%를 재생 원료로 대체하기로 했다. 프랑스 생수 업체 에비앙은 이보다 앞선 2025년부터 페트병을 100% 재활용 원료로 생산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처럼 생수나 음료를 담았던 페트병을 잘게 부수고 세척해 다시 페트병 생산 원료로 활용하는 것을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이라고 한다.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보틀 투 보틀에 집중하는 이유는 100% 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 페트병은 옷이나 가방 등의 의류나 다른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추가적 재활용 없이 폐기되고 만다.

지난 2020년 7월 에비앙에서 출시한 무라벨 생수병. 재활용 페트병을 활용해 만들었다. /에비앙 제공
지난 2020년 7월 에비앙에서 출시한 무라벨 생수병. 재활용 페트병을 활용해 만들었다. /에비앙 제공

투명 페트병은 재활용 용도에 따라 ▲섬유용 ▲시트용 ▲병제조용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섬유용 재활용은 재생 원료 품질에 따라 단섬유와 장섬유로 나뉜다. 오염이 있고 품질이 낮은 단섬유는 노끈이나 솜 등으로 활용되고 품질이 좋은 장섬유는 옷이나 신발·가방으로 쓰인다. 최근 여러 의류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들은 장섬유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옷이나 가방 등으로 재활용한 경우에는 재생 원료를 만들어내기 어려워 재활용되지 않고 결국 쓰레기가 된다. 재활용은 맞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은 셈이다.

시트용은 흔히 판페트라고 불리는 포장재에 사용된다. 판페트는 계란이나 과일 포장에 사용되는 혼합 플라스틱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이긴 하지만 복합 재질로 만들어져 역시 재활용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병제조용은 보틀 투 보틀 방식의 재활용을 의미한다. 오염이 적은 투명한 페트병을 만들어 내면 또다시 고품질의 재생 원료를 생산할 수 있어 얼마든지 반복 재활용할 수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전체적인 자원 순환 구조를 봤을 때 한번 재활용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용도로 반복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보틀 투 보틀 방식의 재활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식약처의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과 규격’ 기준에 따라, 재활용 페트병을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포장 용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트병에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담겼을 우려가 있고, 재활용 공정상 오염 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지난 2020년부터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100% 순환 체계를 이룰 수 없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의 ‘페트병 재생원료 식품용기 사용방안 마련 연구용역’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페트병 재생 원료는 주로 섬유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2018년 기준 페트병 재생 원료 생산량 약 20만2000t 가운데 약 57%는 섬유용으로 재활용됐다. 시트용은 18%, 수출이나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기타는 25%를 차지했다.

반면 보틀 투 보틀 재활용을 시행 중인 유럽연합(EU)은 한 해 페트병 재생 원료를 100만t 생산하며, 이 가운데 병 제조용으로 28%를 쓴다. 미국의 경우 생산량 71만4000t 중 21%, 일본은 33만4000t 중 26%를 페트병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재활용 업체가 재생 원료에 오염 물질이 완전히 제거됐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유럽은 2002년부터 ‘챌린지 테스트’ 제도를 통해 페트병 재생 원료의 오염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6년부터 식품 포장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설정했다. 일본도 2012년 ‘식품용 기구 및 용기 포장에서의 재생 플라스틱 재료의 사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했다.

제도를 기반으로 한 목표도 명확하게 제시된 상태다.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모든 음료 페트병에 재생 원료를 25% 이상 사용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당장 올해부터 재생 원료 의무 사용 비율을 15%로 정했다. 이를 2025년 25%, 2030년 30%로 올릴 계획이다.

플라스틱에 ‘영원한 재생’이 허락된다면…

보틀 투 보틀 재활용을 늘리려는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우리 정부도 ‘식품용기 사용 재생 원료 관련 기준’을 만들어 지난달 행정 예고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투명 페트병의 선별 체계를 구축하고 재생 원료 의무 사용 목표 등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발의된 ‘자원순환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은 현재 국회를 계류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선 등 큰 정치 일정이 끝나야 법안 마련에 속도가 붙을 것 같다”며 “제도 마련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은 관련 제도 마련을 기다리는 중이다. 생수 브랜드 삼다수를 생산·판매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보틀 투 보틀 재활용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지만, 구체적인 법령과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아직까지 상용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재활용 산업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영세 재활용 업체와 재생 원료를 재가공하는 포장재 업체들에 대한 지원도 필수적이다. 이수호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 사업본부장은 “포장재 생산 업체에서 페트병으로 만든 재생 원료를 구매하려면 단가가 기존 원료보다 약 28% 높다”며 “중간 수요처를 위한 경제적인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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