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밥이 된다. 이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짠맛 나는 반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밥 문화는 그랬다. 그런데 약간만 눈을 돌려보면 전혀 다른 밥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흰밥만 먹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밥은 주식이지 요리 재료가 될 수는 없다는 우리의 믿음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탈리아의 리소토는 쌀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페인의 부리토에는 쌀 요리가 들어가고, 중국과 태국에서 볶음밥은 우리의 흰밥처럼 자연스럽다.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쌀 요리인 졸로프는 국민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 세네갈의 체부젠은 종교로까지 격상돼 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했다가는 외교적 마찰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는 점점 더 많은 쌀을 먹고 있다. 1960년대 2억t 정도에 불과하던 쌀 소비량은 2020년에는 5억t까지 늘어났다. 특히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쌀 소비량의 증가가 가파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90년 120㎏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밀과 육류의 섭취는 크게 늘어났다. 쌀을 적게 먹게 된 건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습관도 따라 변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밥과 여러 반찬을 곁들여 먹는 기존 방식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 식용밀 수입량은 250만t으로 그해 국내 쌀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양이다. 점점 더 많은 청년이 밥보다 빵을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선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6%에 불과하다. 국가는 식량안보를 위해 쌀 생산량을 지금 수준에서라도 유지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식량자급률은 낮아지고 쌀은 과잉이 되는 딜레마적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금년은 기후가 좋아 쌀 생산량이 10% 정도 늘어나면서 쌀 가격 폭락마저 우려되고 있다. 농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은 쌀이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회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이다. 의외로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쌀을 다시 친근하게 만들면 된다. 1인 가구와 밀키트 시대에 적합하게 밥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흰밥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비빔밥의 민족이기도 하다. 밥을 김밥이나 부리토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도록 원-디시(one-dish) 요리로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밥 문화가 가능하려면 새로운 품종의 쌀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쌀 연구는 더 좋은 품종의 단립종 쌀을 개발하는 데 집중됐다. 이미 밥맛은 충분히 훌륭한데도 말이다. 쌀에 대한 이런 인식에 반기를 든 혁신가들도 나타나고 있다. 세종대 진중현 교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것은 물론 해외 유명 쌀 품종의 특성을 이어받은 인디카 쌀 품종을 개발하고 해남의 농업법인과 협력하여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 내년이면 시장에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장립종 쌀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통일벼 이후 사라졌던 장립종 쌀이 30년 만에 돌아오게 된다.
쌀 시장의 변화를 이끌 새로운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다양한 쌀 품종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농식품 스타트업들이 만들어지면서 변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공공이 중심이 된 쌀 공급망은 양적 공급에는 뛰어나지만 시장의 다양성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내 쌀 시장 규모는 무려 8조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쌀을 식량안보와 탄소중립, 그리고 농가 소득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쌀의 입지는 점점 더 축소되었다. 쌀을 다시 우리 삶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쌀의 변신을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