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동기획
[이것이 사회적경제다]
③허약노인 의료·영양 중재 사업
지난달 26일 오후, 권오선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정다운의료사협’) 조합원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박맹년(90)씨의 집을 찾았다. 박씨는 정다운의료사협이 추진하는 ‘허약노인 의료·영양 중재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줄 도시락을 11월 초부터 매일 제공받고 있다. 박씨는 “혼자 제대로 된 밥을 해 먹기 어려워 끼니를 대충 때우곤 했는데 따뜻한 밥과 다양한 반찬들을 챙겨줘 고맙다”고 말했다.
허약노인은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노화나 영양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을 의미한다. 청소, 장보기 등 일상 활동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허약 상태를 방치할 경우 앓고 있던 가벼운 질병들이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다운의료사협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여러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함께 허약노인의 영양 관리를 위한 의료중재 사업 모델을 만들어 지역의 어르신들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0월 관악구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중에서 서비스 대상자 30명을 선정했다. 조계성 정다운우리의원 원장은 “영양과 의료 서비스를 병행하는 통합 돌봄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허약노인의 질병 예방하는 ‘밥상 처방전’
대상자로 선정된 허약노인 30명은 영양 상태를 개선해줄 도시락을 7주간 제공받는다. 도시락은 사회적기업 ‘CSC푸드’에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도시락 메뉴는 CSC푸드의 영양사와 정다운의료사협의 의사, 약사 등이 어르신들의 식생활과 체중 등을 분석해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줄 수 있는 식단으로 구성했다. 매주 화요일에는 지역 주민에게 수공예·요리 수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공감협동조합이 토스트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최윤정 정다운의료사협 연구원은 “어르신들의 영양 상태를 고려했을 뿐 아니라 의견을 반영해 메뉴를 조정하고 있어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허약노인 중에서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21명의 어르신은 ‘건강생활처방전’이라는 특별한 처방전을 받았다. 처방전에는 ‘체중 감량을 위해 저녁 식사 때 신선한 채소 한 접시 듬뿍 드세요’ ‘탄수화물(떡·밥·빵·면·감자·고구마 등) 줄이고 단백질(생선·계란·살코기·두부 등) 늘리세요’ 등의 식단 처방과 ‘계단 이용하기’ ‘교회에서 친구 사귀기’ 등의 생활 습관 처방이 함께 담겼다. 조계성 원장은 “정다운의료사협의 의사, 간호사, 약사들과 CSC푸드의 영양사들이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체크해 부족한 성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식단을 적었기 때문에 21개의 처방전 내용이 모두 다르다”면서 “체계적인 식단 조절을 통해 노인분들의 허약 상태를 상당 부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올바른 약 복용, 독거노인들에겐 어려운 일
식사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약을 바르게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인 약물 대사 능력이 떨어져 약물 상호작용에 취약해지지만 이런 내용을 정확히 알고 약을 복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다운의료사협은 필요 이상의 약과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조사된 다제고위험군 어르신 15명에 대해 약물 관리 서비스를 진행했다. 약사들이 직접 대상자들을 방문해 불필요한 약을 수거하고 복용이 필요한 약에는 약통에 복용 시간을 표시해줬다. 최윤정 연구원은 “한 어르신의 집에서는 관절약, 혈압약, 각종 영양제 등 30여 개의 약이 쏟아져 나왔다”면서 “함께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약도 발견됐고 복용 기간이 지난 약도 많았다”고 했다.
대상자 전체를 대상으로도 병원·약국 이용 방법과 올바른 약 복용법을 알려주는 집단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교육에서는 증상에 따라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기존에 먹던 약과 겹치거나 충돌하지 않게 약을 처방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했다. 최 연구원은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교육 같지만 아픈 곳이 생겨도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독거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정다운의료사협은 시범 사업이 끝난 뒤 허약노인을 대상으로 채혈을 진행해 서비스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를 분석할 예정이다. 조계성 원장은 “의료사협은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협동해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면서 “영양과 의료를 병행하는 통합 돌봄 서비스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사회적경제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