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임직원이 2만명에 이르고 매출액은 1110억 달러가 넘었고 6년 연속 포춘지가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한 엔론(Enron Corporation)이 2001년 12월 파산했다. 엔론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한 회계부정으로 기업의 부실한 재정상태를 치밀하게 감춤으로써 투자자와 사회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되었다. 엔론 사태 7개월 후 미국의 또 다른 거대 통신기업인 월드컴(MCI WorldCom)이 분식회계와 사기 영업을 반복하다 결국 파산했다. 그리고 2008년 9월에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신용과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상품이 금융기관의 부실관리와 실적에만 관심을 갖던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부적절하게 판매되면서 리먼 브라더스는 물론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09년 8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가족 4명이 탄 렉서스 브랜드 차량이 시속 200km 정도로 달리다 가드레일에 추돌하여 탑승자 모두가 사망한 사건이 생겼다. 당시 도요타 일부 모델에서 급발진 및 액셀러레이터 이상반응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회사는 운전자의 조작 미숙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매트와 페달 불량의 원인이 밝혀지자 도요타는 부랴부랴 대규모 리콜 계획을 발표했다. 일명 ‘페달 게이트’로 알려진 도요타의 리콜 사태로 세계 자동차 판매량 1~2위를 다투던 도요타의 신용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요타는 페달을 생산한 미국업체가 문제라며 협력업체에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려다가 신뢰를 잃었을 뿐 아니라 회사 내부적으로 결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8년간 은폐하고 묵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건 20일 만에 자산가치가 약 40조원 가까이 하락했다.
2015년에는 폭스바겐을 포함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희대의 사기 스캔들을 일으켰다. 유럽의 경우 상대적으로 배출 가스 규제가 약하다 보니 유럽의 자동차회사는 디젤을 자동차의 연료로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1997년 온실가스와 관련된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유럽도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유로 III’로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했다. 이러한 규제에 따라 독일 자동차 회사는 강화된 유로 기준에 적합한 매연 저감 장치를 개발하고 디젤 차량에 적용했다. 그리고 ‘클린디젤’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승용차에는 디젤을 연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을 정했던 미국과 한국도 2000년대 중반에 디젤 승용차의 판매를 허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폭스바겐 그룹이 경비절감을 위해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저감장치 대신 주행상황에 따라 배기 부품을 껐다 켰다 하는 소프트웨어 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절감한 부품 금액의 100배에 가까운 벌금을 물게 됐다. 마틴 빈터콘 회장은 그 해 폭스바겐 CEO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와 같은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고려대학교 강지인 박사는 그의 연구에서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지배구조란 조직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즉 조직이 재무적인 성과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위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작동하는 시스템이 바로 ‘지배구조’이다. 강지인 박사는 기업 지배구조의 실패가 1997년 한국 및 아시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해 두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첫 번째, 주주의 권리와 보호를 강화하는 ‘주주 모델’이 한국의 재벌과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갖고 있는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주주 모델이란 ▲감사 기능의 강화 ▲소액주주 보호 관련 법 ▲지주회사 법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투자자의 역할 확대 등을 통해 ‘정의로운 주주’가 기업을 이끌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주주 모델 이외에 ‘이해관계자 모델’이 주목받고 있으나, 올바른 주주 모델이 작동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선행 조건이다. 두 번째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지배구조가 좋아진다고 제안한다. 특히 기업 내부적으로 주도하는 불법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은 단기적인 이익 대신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만약 기업이 법이나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는 막대한 벌금과 엄격한 처벌을 통해 법의 존엄성을 반드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앞서 예를 든 여러 기업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기업이 야기한 회계 부정, 관리 부실, 도덕적 해이, 품질 불량, 원가 절감을 위한 조직적 은폐 등 이 모든 것은 인재(人災)에 해당한다.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목하자면, 기업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진과 이사회의 책임이 크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은 공공 및 지자체, 민간기업이 많다. 이중 건강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싶은 조직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배구조가 단순히 권한만이 아닌, 권한에 따른 책임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조직의 의사결정권자가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지 확인해보면 우리 조직의 지배구조 수준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과 조직이 많아지길 기대하는가?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리고 그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리더가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Jiin Kang (2010), “A Legal Analysis on Problems in Corporate Governance”, Department of Law Graduate School Korea University, pp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