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외 기업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 경영을 본격 도입하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ESG 경영을 통해 잠재 리스크를 파악하는 동시에 재무 지표를 뛰어넘는 무형 자산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기업들은 ESG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자료를 쏟아내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ESG 경영은 단기 성과를 낼 수 없는 장기전과 같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기업별로 쏟아내는 ESG 이슈를 중간 점검하기 위해 국내 주요 그룹사 10곳의 ESG 경영 현황을 살펴봤다. /편집자 |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2021년 상장기업 ESG 평가’에서 현대차그룹은 평가 대상인 계열사 12곳 모두 통합등급 A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현대차는 환경(E) 부문에서 A, 사회(S) 부문에서 A+, 지배구조(G) 부문에서 A를 받아 통합 ‘A등급’을 받았다. 기아는 환경 A+, 사회 A+, 지배구조 A를 받아 그룹사 내에서 유일하게 통합등급 A+를 획득했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기존과는 다른 사회적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이 확산함에 따라 변화를 미리 준비한 기업만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시대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라며 ESG 경영을 주문했다.
친환경차 양산에 폐배터리 활용까지
현대차그룹은 본격적인 친환경차 시대를 대비한 제품·기술 개발에 일찍부터 많은 공을 들여왔다. 지난 1990년 현대차가 쏘나타 기반의 ‘전기자동차 1호’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세계 최초 LPi 하이브리드 모델 아반떼 LPi&포르테 Lpi를 양산했다. 지난 2015년에는 전기차(EV),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수소전기차(FCEV)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기반의 전기차와 파생 전기차를 포함해 2025년까지 연간 56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부터는 우선 유럽, 중국, 미국 등 핵심시장에서 단계적으로 전기차로의 라인업 변경을 추진하며,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의 경우에도 점진적으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할 예정이다.
기아 역시 2030년 연간 160만대의 환경차를 판매하고, 전체 판매 중 환경차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기아는 내연 기관 차종 기반의 파생 전기차만을 출시해 왔지만 올해 출시되는 전용 전기차 CV를 시작으로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새롭게 직면하는 폐배터리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정밀 진단검사를 통해 잔존차기가 70~80% 수준일 경우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폐배터리 기반 ESS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사 성장이 그룹사 성장으로
협력사와의 상생협력도 현대차그룹의 강점이다. 지난해 발발한 코로나19 사태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짙어지는 추세지만, 현대차그룹은 올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건설·현대글로비스 등에 부품과 원자재, 소모품 등을 납품하는 3000여 곳의 협력사를 대상으로 납품대급 조기 지급을 진행했다. 협력사들은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예정된 지급일보다 최대 37일 일찍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그룹 계열사들은 매년 설·추석 전 협력사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납품대금을 선지급해왔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도 각각 1조1087억원, 1조8767억원의 대금을 조기 집행한 바 있다.
협력사의 성장이 그룹사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는 협력사 평균 거래 기간으로 확인된다. 현대차·기아와 협력사의 2019년 기준 평균 거래 기간은 33년이다. 이 가운데 12.2년 이상 거래 협력사가 전체의 97%에 달한다. 현대차가 설립된 1967년부터 지금까지 40년 이상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협력사도 75개사에 이른다.
이와 함께 현대차·기아는 전 세계 주요 지역에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1·2차 협력사들의 해외 동반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1997년 34개사에 불과했던 해외 동반진출 협력사는 746곳이다.
투명 경영으로 거버넌스 강화
현대차·기아는 경영활동의 투명한 공개를 통해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기아는 지난해 10월 한국경영인증원이 주관한 ‘2020 글로벌스탠더드경영대상’ 시상식에서 미래 전략과 ESG 성과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지난 20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지속가능경영대상 보고서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10월 적극적인 미래 경영전략 제시, 투자자들과의 소통 강화 노력, 주주 중시 경영 실천 등을 인정받아 한국IR협회가 주관한 ‘2020 한국IR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대차는 2019년 2월, 같은 해 12월에 이어 지난해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CEO 인베스터 데이’를 진행했다. 기업의 중장기 미래 전략과 수익성 목표, 투자 계획 등을 주요 투자자에게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자리다. 이 밖에 지배구조헌장 개정, 거버넌스 관련 자문기관과의 협의 등 적극적인 ESG 개선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전자투표제 도입을 통한 주주 의결권 강화, 두 차례에 걸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 만족도 제고에도 나섰다.
지난해 2월부터 현대차그룹 전 상장 계열사가 도입한 전자투표제도는 대표적인 ‘주주 친화 경영’으로 꼽힌다. 전자투표제도는 해당 기업이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 명부와 주주총회 의안을 등록하면 주주들이 주총장에 가지 않고 인터넷 전자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주주총회 참석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유도함으로써 주주 권익을 향상시켰다.
올해 1월에 열린 2020년 4분기 경영실적 발표부터는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도입해 투자자의 신뢰 구축과 투명성 제고 노력도 강화했다. 현대차는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통해 2021년 자동차 부문 매출액 성장률 목표를 전년 대비 14~15%, 영업이익률 목표를 4~5%로 제시했다. 미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올해 설비투자(CAPEX)에 4조5000억원, R&D 투자에 3조5000억원, 전략투자에 9000억원 등 총 8조9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