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CEO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방송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퀴즈를 내는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약 1년 전 이 프로그램에서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미생’편이 방영된 적이 있다. 신입사원부터, 대리, 부장, 대표 등 다양한 직급의 직장인들이 출연해 회사생활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각 출연자는 회사에서 많이 쓰는 말을 꼽기도 했다. 사원은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대리는 ‘넵’ ‘감사합니다’ ‘해 볼게요’라는 말을 선택했다. 팀장과 부장은 ‘확인했니?’ ‘의견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대표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라’는 말과 ‘오너십’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각 기업의 경영진은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가치,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CEO들은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했을까?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답이 있다. 윤지혜, 이종화는 지난 8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긴 CEO 인사말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2013년부터 3년 단위로 조사한 결과, 새롭게 등장한 단어로 2013년에는 공유, 원칙, 생산, 만족, 국민 등이 나타났고, 2016년에는 기회, 인류, 윤리경영, 우수, 따뜻 등의 이슈 키워드가 나타났다. 가장 최근인 2019년에는 디지털, 지속가능성, 파트너, 전기, 수소 등이 보고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개념이 사회공헌뿐 아니라 환경, 기후변화, 지배구조, 상생적 협력 등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CEO들의 관심은 사회적 흐름과 요구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자본시장연구원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 주요 기업 6500개사 중 경영진 보상 계획에 CSR과 ESG 요소인 환경과 사회지표를 반영하는 기업의 비중이 2020년 기준 18.7%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9.3% 대비 2배 높아졌다. 실제로 이미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경영진 보상에 CSR 요소를 반영하고 있으며, SK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 국내기업도 CSR과 ESG 성과를 통해 경영진을 평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이기에 기업의 주요 경영진 평가에 포함되는 것일까?

CSR의 개념을 정립한 하워드 보웬(1953년)은 사회의 목적과 가치관에 부합하도록 기업이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기업의 의무라고 했다. 데이비스(1973년) 또한 기업이 이윤추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캐럴(1983)은 기업의 경제적 이윤 추구 활동이 사회의 법과 윤리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윤리적·자선적 책임까지 포함한 활동으로 정의했다. 즉 기업의 이익과 사회 전체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규범을 정하고 그에 따른 의사결정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 CSR이라고 했다.

연구자들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CEO 메시지에 포함된 약 6200여개 단어를 추출했다. 이 중 빈도수가 높은 100개를 뽑았더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경영, 사회, 성장, 가치, 글로벌 등이었다. 기업의 비전 및 사회적 책임에 대한 CEO의 경영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환경, 책임, 안전, 혁신 등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책임의식을 표현한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이 밖에 친환경, 신뢰, 상생, 투명 등 친환경과 거버넌스 변화와 관련된 단어도 있었다. 이를 연도별로 분석해보면 2013년에는 추진·협력·제품, 2016년에는 안전·노력·발전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했고, 2019년에는 변화·혁신·미래 등의 키워드 사용빈도가 높았다.

CEO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안에서 많이 언급하는 말은 기업의 경영 환경과 사회의 요구에 따라 바뀌고 있다. 경영진은 보고서에서 강조한 가치를 기업의 핵심가치로 정해 잘 구현하고 있을까?

최근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앞으로 공공기관 및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속가능보고서가 기업의 합리적 워싱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말하는 내용과 실제가 다르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곧 맞이할 2022년, CEO들은 지속가능한 세상과 조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할까? 책임지는 경영자들이 약속하는 단어, 벌써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윤지혜, 이종화(2021),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한 CSR 키워드 트렌드 분석”,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 2021(8), pp 1981-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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