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CSR 전략과 ESG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CSR과 ESG의 본질은 같다. 기업이 법적, 윤리적,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기업을 둘러싼 사회 및 이해관계자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CSR이라면, 이를 측정하는 지표가 바로 ESG다.

ESG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CSR 가이드라인은 이미 존재했다.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인 ISO26000, 2006년 농구화 제조사 앤드원의 바트 훌라한이 설립한 B-Lab에서 좋은 기업으로 인증하는 B-Corp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ESG는 이러한 기존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투자자 관점에서 친환경 경영, 사회 책임 경영, 올바른 지배구조의 투명경영 등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측정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애플, 아마존, 구글 등 플랫폼 기반의 거대기업의 무형적 비재무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기업의 평판, 브랜드, 인적자본, CEO의 역량 등 기업의 무형적 가치는 재무적 가치와 같은 글로벌 표준이 부족했다. 기업의 재무적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로서 매출, 영업이익 등 글로벌 표준화된 회계기준과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연간보고서 형태로 의무 공시되는데, 비재무적 가치는 체계적인 측정 및 공시 시스템이 부족했다. 따라서 블랙록이나 모건스탠리, 연기금과 같은 거대 금융자본과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환경, 노동인권, 안전보건, 공급망 관리, 지역사회 관계 등 비재무적 가치가 측정 가능하게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재무적 가치의 중요성 확대와 기관투자자의 필요성이 코로나19·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CSR과 지속가능경영의 측정 지표인 ESG 브랜드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이러한 ESG 측정 지표를 잘 활용하면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낼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표 측정 대응을 넘어서 ESG를 내재화하고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와 기회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과 평가는 CSR, 지속가능경영, TBL, ESG의 형태로 사회 트렌드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CSR은 기업이 경제적, 법적·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1991년 캐롤 교수의 피라미드 모형에서 시작됐다. 지속가능경영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고려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영활동이다. 1994년 영국의 존 엘킹턴이 제시한 ‘TBL(Triple Bottom Line)’은 지속가능경영의 3대 기본 축인 경제, 사회. 환경이 균형 있게 상향평준화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ESG는 2006년 체결된 UN PRI(사회책임투자원칙)와 2007년 록펠러재단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투자방식인 임팩트 투자의 개념을 기반으로 투자자의 관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경영을 측정하고, 기업이 사회책임경영을 잘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지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는 GRI 등 국제표준과 DJSI 등 평가지표를 기반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공시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투자자 관점의 ESG 등장과 함께 MSCI, DJSI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게 정리해 의무적으로 공시될 예정이다.

이렇게 발전해온 ESG를 지속가능경영이나 CSR의 가이드라인으로 삼고자 한다면, 우선 이사회 산하 최고의사결정기구에 CSR 또는 ESG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가치사슬에서 ESG 관련부문의 임원협의체, ESG 전담조직, 실무협의회 등 ESG 추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추진 체계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ESG 의제를 심의, 논의, 의결토록 구성해야 한다. 특히 실무협의회는 친환경 제품 개발(R&D), 공급망 관리(구매), 윤리·준법 경영(법무), 임직원·조직문화(인사·교육·노무), 안전·환경(안전환경팀), 신사업기회발굴(신사업팀) 등 ESG 활동 기반의 중장기 과제별 대표 부서로 구성해 기업의 ESG 방향성을 공유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우리 기업이 채택하고자 하는 ESG 평가 기준을 선택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MSCI ESG 평가 기준이 있다. MSCI 평가 기준은 매년 전 세계 8500여개 상장기업을 업종별로 나눠 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와 관련한 경영 현황을 평가하고 있다. 총 10가지 테마와 37개의 키 이슈로 구성돼 있다. 10개의 테마는 세부적으로 환경(E) 분야의 ▲기후변화 ▲천연자본 ▲오염·폐기물 ▲환경적 기회, 사회(S) 분야의 ▲인적자본 ▲제품 책임 ▲이해관계 상충 ▲기회 균등, 거버넌스 분야(G)의 ▲지배구조 ▲기업행동 등으로 구성된다.

ESG공시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기업은 정보 취합을 위한 전사적 업무분장, 공시범위 확대 검토, 전사 IT 시스템 통합, ESG 데이터 관리 체계화, 사내 전문 인력 육성 등이 필요하다. 특히 EU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 규제·표준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ESG 정보 공시는 단발성 대응이 아닌 체계적 대응 준비가 필수적이다.

정보공시 커버리지는 연결재무제표와 같은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다. 글로벌 전 사업장의 정보와 협력사의 ESG 정보까지 공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ESG 전용 IT 시스템을 구축해 대외공시 데이터 모니터링 및 공시 데이터의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외부 컨설팅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ESG 정보공시 규제, 표준 모니터링 및 대응 역량 보유한 사내 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거대 기업의 등장으로 기업의 규모와 영향력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역할 또한 주주 중심의 이익 창출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의 사회적 가치 창출로 변화하고 있다. 투자자는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밀레니얼 중심의 고객 또한 착한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이 증대된 기업이 스스로 진화할 때 지속가능한 우리의 미래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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